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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그리고 세지마류조....친일분자 | 반민족반인륜범죄처벌특별위원회
사법정의국민연대 기사입력  2006/07/07 [19:16]
한국..그리고 세지마류조....친일분자 | 반민족반인륜범죄처벌특별위원회 2005.04.17 00:16
대단군(conservparty) http://cafe.naver.com/conservparty/47 이 게시물의 주소를 복사합니다

일본 천황제 신권주의에 물든
전범출신 일본우익인사들의 박정희나 그 아류에 대한 친근감은 무엇에 연유하는가?
그 해답은 아주 간단하다. 박정희나 그 아류는 일제 식민지 시대의 걸작품이기 때문이다.

일본우익의 박정희 찬양의 속셈

만주 괴뢰국의 소위였던 오카모토미노루(岡本實) 박정희는
(그의딸 오카모또 근혜는 대구에서 한나라당의 국회의원임, 박정희의 형은 1953년 박정희와 함께 사회주의 활동을하다가 잡혀 현재의 근혜의 지역구에서 총살당함) 일제가 정성을 들여서 만든 사무라이에 가까운 사무라이 보조원이다. 그래서 박정희가 1961년 쿠테타로 정권을 장악했다는 보도가 있은 직후 만주에 근거를 두었던 일본의 우익들은 {오카모또 소위가 서울을 장악했다! 만세!!} 라며 환호했다고 한다.

1961년 군사정권 수립이래
기시 노부시게,사도오에이자크, 고다마요시오, 세지마류조…등으로 얽히는 이른바 한국통인맥은 일제당시때부터 지금까지도 大東亞共榮券의 꿈을 가지고 사는 인간들이다. 일본의 패전후에도 위와같은 황국사관의 맹신자(전쟁범죄관련자)들이 일본의 지배세력으로 그대로 연면하게 이어오고 있다.

패전후 맥아더의 민주개혁이 군벌과 재벌을 해체하고 전쟁범죄자들을 처리했다고 하지만 ,
실상은 1950년 기점으로 해서 미국은 일본 전범출신인 국수 지배세력과 야합의 단계로 들어갔다. 1949년 공산정권을 수립한 중국에 대응한다는 명분을 내건 미국의 극동정책은 일제의 군국주의의 범죄자들을 필요로하게 되어 야합을 하게 된 것이다.

1900년대의 영국이
러시아의 남진을 저지하기 위해 일제를 극동 헌병 보조원으로 앞세우던 일이나 같다고 할까...(1904년 일제는 러일전쟁을 일으켜 1905년 승리한 후 만주 괴뢰국을 세우게됨)

1960년대 베트남 전쟁에서 미국이 패배하자
미국의 로스토우 의원이 제창한 사회주의 주변국의 경제적 성장 필요성을 역설한 로스토우 정책으로 한국 대만 홍콩 싱가폴등은 미국에 관세 특혜를 받아 고도 경제성장을 이루게됨, (그 당시는 물건만 만들면 미국시장에서 팔릴 수 밖에 없었음)

즉 박정희의 탁월한 지도력이 아니라
극동외교에서 미국이 패권을 잡기위한 정책에 의해 의도된 경제성장이었던 것임,
당시의 대량 유포된 달러와 함께 미국은 국제깡패로써 세계 제일의 패권국으로 발돋음하게 됨, (1973년도까지는 북한이 남한보다 경제성장력과 국민소득이 높았음 )

나카소네의 막후 실력자이며
한일회담에서 한국 군사정부와의 이권 흥정의 배후로 등장한 전 관동군 참모 세지마류조 중좌(중령)는
박정희가 죽은 후 전두환과 노태우 시대에도 {큰형님}이고 선생님 노릇을 했다. 이런 사실은 세지마의 회상록을.(「幾山河」. 産?新聞、1995年) 보면 잘 알 수 있다.


일본 친한파와 한국 친일파의 유착

그런데 더욱 기가 막힌 것은
1979년 10.26사태로 독재자 오카모토미노루(岡本實) 박정희가 피살된후
전두환 일당의 신군부가 일본 정부측과 세지마에게 비밀접촉을 하면서 정권을 장악하고 유지하는데 막대한 지원을 받았다는 점이다. 이 사실은 연세대학 국제연구소 박선원교수의 논문에서 밝혀졌다.(한국일보 2000년 5월18일자 1면 기타해설 기사 참조) 물론 이러한 박교수의 연구성과가 박교수의 지적대로 {미국에게 면죄부를 주거나 감정적인 일본 책임론 }을 제기하는 것이 되어서는 안된다.

문제는
친일파 부류가 기득권층으로서 우리 사회의 실세가 되어
(즉 오카모토 근혜의 대구 지역구의 국회의원 으로 한나라당의 부총재로 군림한다든가,,,
일본오사카에서 중학교까지 나와 자민련의 왕노릇을 하는 기회주의자 김종필, 그리고, 신현확, 김정렬, 김창룡,최경록, 백선엽,채병덕,원용덕, 이응준, 등등.. ) 해방 이래 지금에 이르기까지 50여년을 지배해 오고 있다는 점이다.
백범 김구 선생 암살등 애국자나 혁신 정치가의 제거에는
조봉암에 이르기까지 항상 친일파인 일제 경찰 ,헌병보조원 군인 관료 출신들의 그림자가 어른거리고 있다.

일제의 지배하에서 혜택을 본 부류나 그 아류 후예가
일본의 구지배층 세력과 야합해 한국을 지배해오고 있다는 점은 통분해야 할 일이다.

철저한 친일파 박정희 정권이래
일본의 친한파라며 드나드는 보수정객, 정상배(한국에서는 삼성 이병철전회장과, 롯데의 신격호 회장의 경우 ) 상인과 브로커, 우익테러리스트와 암흑가의 배후들(한국에서 전경환의 군사깡패들은 유도대생들을 끌고 다니다 1986년 서초동 서진 룸싸롱 살인사건까지 서슴없이 저지름)

그들은 누구인가?!
1975년 반공주의자 박정희는 일본의 우익깡패 고다마요시오에게 수교 훈장을 주고있다.
이것 하나만 봐도 박정희나 그와 친교를 맺고 있는 부류가 바로 어떤 자들인지 알 수 있지 않은가?

이 나라 정치인들이
진정으로 국민을 생각하고 진정한 민주주의를 추구한다면
전범 출신들의 후신인 일본 우익세력들과의 교류가 아닌 진실한 (일본의)민주인사나 민주단체와 교류해야 할 것이며 그들이 "친한파"로 불리워져야 하며 그것이 통설이 되는 세상이 되었을 때에야 비로소 민주적이고 참된 한일관계가 되는 것이 아닐까?

일제시대에 일본 본토에서 군수관으로 일했던 전국무총리인 신현확이
일본군인이었던 박정희를 기념하는 박정희기념사업회 회장을 맡고 있는 데
박정희와 똑같이 천황에게 목숨바칠 것을 맹세했던 신현확이 현재의 일본우익과 무관할까?

http://www.youthink.co.kr/html/boardshow.asp?table=0040020001&num=14&page=1
 
 
박정희-전두환-노태우로 이어지는 한국 군사정권의 전임 대통령들은 모두 일본우익의 거두 세지마 류조(瀨島龍三)의 충복이었다
특히 그가 주목받는 것은 박정희의 자문역으로 활약했고 수출주도형 종합상사체제의 개발 드라이브를 박정희에게 직접 제시하고 지도했기 때문이다. 뿐만 아니라 전두환에게는 민심수렴을 위한 ‘올림픽유치’를, 노태우에게는 대통령제의 문제점에 관한 대책강구(내각제)를 조언했다.”

박정희-전두환-노태우로 이어지는 한국 군사정권의 전임 대통령들은 모두 일본우익의 거두 세지마 류조(瀨島龍三)의 충복이었다.

한상범 동국대 명예교수(전 의문사진상규명위원장)는 21일 가진 데일리서프라이즈와의 인터뷰에서 이런 사실을 공개하고 한국의 보수우익을 ‘부패기득권’으로 규정했다.

한 교수는 △세지마 류조와 한국의 친일수구 부류와의 관계와 △제국주의에 대한 세지마의 변호를 조목조목 지적하고, 주일한국대사가 세지마 앞에서 앉지도 못하고 부동자세로 있었다는 충격적인 일화를 밝히기도 했다.

박정희 ‘수출종합상사’ 전두환 ‘올림픽’은 스승 세지마의 조언

세지마 류조가 모델이 된 야마사키 도요코(山崎豊子)의 소설 ‘불모지대(不毛地帶)’는 한국에서 몇 출판사에서 발간된 인기물로 한 때는 한국기업의 우경엘리트와 군부일각에서 필독 참고서처럼 읽혔다.

세지마 류조의 회상록(産經新聞, 1995년, 419쪽 이하)에 따르면 세지마는 수출주도형 종합상사체제의 개발 드라이브를 박정희 전 대통령에게 직접 제시하는 등 박 전 대통령의 자문지도역으로 활약했다.

박 전 대통령의 뒤를 이은 전두환·노태우정권도 세지마의 제자를 자청했다. 모 재벌총수의 주선으로 세지마를 만난 전임 대통령들은 국가정책의 기본사항에 대한 구체적인 조언을 구해왔으며 전두환의 경우 12·12쿠데타를 앞두고 일본대사에게 미리 보고하기도 했다(영국 웨릭대학 학위논문, 2002 국제정치논총(박선원, ‘냉전기 한일협력의 국제정치-1980년 신군부등장과 일본의 정치적 영향력’ 국제정치논총 제42집 3호 2002년 한국국제정치학회).

세지마는
소설 불모지대의 모델이기도 한 세지마 류조의 행태를 밝힌 책. ⓒ2005 데일리서프라이즈 민원기 기자

5·18광주민주화운동에 대한 민심 수습을 위해 전두환 전 대통령에게는 ‘올림픽유치’를 제안했고, 노태우 전 대통령에게는 대통령제의 문제점을 지적하고 일본식의 내각제를 제안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노태우, 일본가요 열창으로 세지마의 칭찬 받아

이 중에서도 노태우 씨의 경우는 대통령 퇴임 후 처신과 공적 과업에 대해 직접으로 지도를 청했으며 세지마의 방한 시 술좌석에서 일본의 인기 여가수 미소라 히바리의 노래를 열창해 칭찬을 받기도 하는 등 ‘한심한 수준’의 충복노릇을 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한국의 친일·수구·기득권 부류는 1965년 한일국교 이후 공공연하게 일본수구 극우와 유착관계를 가지기 시작해 지금까지 연대·유착·협조관계를 넘어 예속적인 인적·물적 관계를 이어왔다.

특히 일제 국수주의 교육과 제국대학간판 그늘에서 잔뼈가 굵어온 친일파들의 일본숭배는 일본사회의 산업발전뿐 아니라 문화나 정신 전반에 영향을 받아 사실상 90%는 정신적 문화적으로 일본 극우와 닮은꼴이 되어 있다는 것.

한 교수는 “친일파 부류가 일본제국의 정신과 업적(?)을 숭상하고 찬양하고 추종하는 심정과 자세는 결코 어느 특정인에 한정되는 우연한 일이 아니다”라며 한승조 씨를 비롯한 부류들을 꼽고, “문제는 일제잔재청산 개혁에 대한 우리 기성세대의 지체와 망설임이 치명상이 되고 있는 것을 반성하고 재출발해야 한다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세지마, ‘한국 식민지는 잘된 일’

세지마는 기본적으로 일제의 한국 식민지화에 대해 ‘잘된 일’로 평가하는 일본의 극우주의자. 그는 국가정책의 방향과 구상을 밝힌 그의 저서 ‘우리 일본에 대한 제안(提案)-조국재생(祖國再生) (PHP연구소(硏究所)간 1997년)’에서 이런 견해를 밝히고 있다.

세지마에 따르면 한국의 식민지화는 당시의 국제정세로 볼 때 당연한 조치라는 것이다. 그리고 이런 견해는 한국의 박종규(박정희 경호실장), 한승조(박정희 추종 교수) 등을
세지마류조의 회고록에 박정희와 전두환 두 전 대통령과의 관계가 언급되어있다. ⓒ2005 데일리서프라이즈 민원기 기자

비롯한 대부분의 친일파와 그 아류가 취하고 있는 입장에서 반영되고 있다(같은 책, 94쪽 이하).

한 교수는 “일본의 아시아정책은 미국과의 동맹을 기본 틀로 해야 한다는 것이 세지마의 주장”이라고 말하고, “이런 입장은 오카사키히사히코와 같은 지정학적 전략론과도 일치하는 우익 극우의 공통된 입장”이라며 오카사키히사히코의 저서 ‘전략적 사고(戰略的思考)란 무엇인가(中央公論新書)’를 증거로 제시했다. 재미있는 것은 세지마가 미국과 러시아를 가상의 적으로 꼽아 여전히 아시아 제패를 노리는 군국주의자의 건재함을 드러냈다는 것이다.

이런 세지마는 한국의 전경련은 자문위원으로 모셔서 예우하고 있었으며 한 교수와도 관련된 일화가 있다. 한 교수는 세지마가 1990년대에 전경련 초청으로 내한했을 때 이 문제를 제기해 전경련 측에 대해 해명을 요구했고 이는 당시 대한매일(현 서울신문)에도 기사로 보도됐지만 전경련 측은 “정치와 무관하다”며 답변을 회피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는 “세지마를 비롯한 일본 극우수구의 입김이 한국 곳곳에 배어 있다”고 지적하고, “1961년부터 노태우에 이르기까지 친일파 군인의 지배 속에서 30여년 동안 친일명사(?)가 이 나라를 주름잡으며 더럽히고 망쳐놓았다”며 안타까움을 감추지 못했다.

보수의 뜻도 모르면서 무슨 보수우익

“보수의 본래 의미라고 할 수 있는 서양 사회과학의 정의에 따르면 이들은 보수주의자라고 할 수 없다. 근대 보수주의의 사상적 원조라 할 수 있는 에드먼드 버크에 의하면 보수할 것은 전통을 중심개념으로 해서 사회관이나 인간관, 진보관 등에서 인간 이성과 합리주의의 한계를 강조한다.”

한 교수는 “한국의 자칭 보수우익의 정체는 사실상 진정한 보수와 거리가 멀다”며 ‘사이비 보수우익’으로 폄하했다. 또 한국의 보수우익을 서양의 사회과학의 정의와 비교하며 “보수주의자도 아니다”라고 신랄한 비난을 날렸다.

그는 ‘보수우익을 자처해 온 부류’에
한상범 전 위원장이 세지마류조의 행태를 언급한 책자를 가리키며 얘기하고 있다. ⓒ2005 데일리서프라이즈 민원기 기자

대해 △주로 친일파 및 그 아류와 추종자로 민족주의자가 외세의존의 부류라는 것 △이들은 진정한 보수주의자가 아니며 그들이 보수한 것은 구부패기득권 △자유 민주주의를 자처하면서도 사상과 양심의 자유를 원천적으로 거부 △참된 의미의 자유주의는 반공이 아니라는 점 등을 지적했다.

한 교수는 “한국의 보수우익은 매카시즘에 매몰돼 반대파에 대한 압살·모략·비방으로 일관했으며 관용성이 결여됐다”며 “보수우익을 자처할 수 없는 세력”으로 규정했다.

세지마 류조 앞에선 주일한국대사도 서서 부동자세

일본의 인명사전에 수록된 ‘일본 군국주의의 신화적 인물’ 세지마 류조의 프로필을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산세이도, 콘사이스 일본인명사전 참조).

1911년 출생. 육군사관학교 우등졸업, 육군대학 수석졸업. 1939년 다이홍에이(일본 최고통수부)부원 2차 세계대전 등 작전기획 참여담당. 1945년 만주관동군 참모(중좌) 박정희 등 만군 하급장교인 한국인 일제군인의 최고상관이 됨. 이 관계는 한국군 군대의 일제군 출신 모두의 장로로 그가 예우되게 됨. ㅊ아무개는 일군출신으로 예비역 예편으로 박정희 밑에서 주일한국대사가 되었는데 세지마 앞에서는 앉지도 못하고 부동자세로 그의 말을 경청하는 정도였음.

일본제국주의의가 패전하자 세지마는 소련군 포로가 되어 시베리아 억류. 일본 전범재판 당시에는 소련군 측 증인으로 출석 증언. 그 일에 대해선 소련 정보기관과의 석연치 않은 설이 분분하다(호사카 마사야스(保阪正康), 세지마류조 참모(參謀)의 소화사(昭和史), 문예춘추사, 2000年, 23쪽 및 63쪽 이하 참조). 시베리아에서 귀국 후 1958년 이토추상사 취직. 1972년 부사장, 1978년 회장, 1981년 상담역. 그는 제국군대의 전략 전술을 기업경영에 적용해 성공한 사례로 인정되고 있음.

나카소네 수상시절 임시행정개혁추진심의회 회장으로 활약. 나카소네 수상(1982년-1987년)의 정책참모이고 일본 우익 군국주의 수구의 장로격.
이기호(actsky@dailyseop.com)기자

http://news.naver.com/news/read.php?mode=LSD&office_id=124&article_id=0000002511&section_id=100&menu_id=100
 
[인터뷰] 한상범 전 의문사진상규명위원장 “한승조 망언, 친일파 최후 발악...전두환도 쿠데타 일본에 미리 알렸다”
[데일리 서프라이즈 2005-04-12 18:39]    
한상범 제2기 의문사진상규명위원장(동국대 명예교수) ⓒ 2005 데일리서프라이즈 민원기 기자

‘꿩 잡는 게 매.’

한상범 제2기 의문사진상규명위원장(동국대 명예교수)이 한승조 전 자유시민연대 공동대표(전 고려대 명예교수)의 논리에 대해 조목조목 반박하고 나섰다.

최근 ‘살아있는 헌법이야기(삼인)’를 발간해 언론의 관심을 받았던 한 교수는 7일 오전 시내 한 대형서점에서 데일리서프라이즈와 가진 인터뷰에서 “한승조의 주장은 현재 진행중인 과거청산에 의도적으로 방해하려는 친일파의 반발”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또 박정희를 비롯해 전두환, 노태우 전 대통령과 세지마 류조(瀨島龍三)와의 관계를 공개하고, “옛날 만주시절 상전에게 충복노릇을 하면서 굴욕밀실외교를 자행하고 그들의 지도에 따랐다”고 밝혀 눈길을 모았다.

이외에도 한 교수는 한승조 씨의 주장을 △한국의 일본식민지화 찬성론 △일본의 한국여성 성노예제도의 변호·옹호의 망발 △식민지 근대화론이라는 일제강점 찬양론 △친일파 비판은 빨갱이란 매카시즘의 논법 등으로 요약하고 이에 대해 조목조목 반박했다.

정론에 자주 등장하는 논객과 기본 논조에 대해 한 교수는 “이시하라신타로(石原愼太郞) 현 동경도(東京都)지사와 극우수구 군국주의와 반한(反韓) 반중국(反中國)의 배외주의 논조”라고 지적했다. 한 전 대표의 글을 실어 이번 파장을 야기한 일본우익 잡지 ‘정론’에 대해서는 “일본의 보수신문인 산케이신문이 발간하고 있으며 산케이신문은 최근 역사왜곡의 선봉에 서있는 후쇼사(扶桑社)가 배후에 있다”며 이들의 유착관계를 지적하기도 했다.

한승조, 일찍부터 친일파 박정희 찬양

한 교수는 한승조 씨에 대해 “일찍부터 친일파 박정희를 찬양해온 것은 알려진 사실”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일제 친일파가 해방 후 미군정시기를 거쳐서 지금에 이르기까지 지배해 온 친일파 세상에서 우리는 살아 왔다”며 “그동안 친일파를 비판하고 그 죄상을 말하면 대개는 ‘빨갱이’로 몰렸다”고 지적했다.

“김구 선생의 우국활동을 말살하기 위해 빨갱이로 몰아서 죽인 것은 누구인가? 반민족행위처벌법을 무산·좌초시키고 친일청산을 외친 사람들을 빨갱이로 몰아 제거한 것은 누구인가? 조봉암 선생이 이승만정권의 ‘북진(무력)통일’에 맞서 평화통일을 주장하자 ‘국시위반’이라고 몰아붙이고 결국 빨갱이몰이로 죽인 것은 친일부류다.”

한 교수는 “1950년 6·25전쟁이 발발하자 친일파는 자기들의 자행해 온 죄상 때문에 겁을 집어먹고 빨갱이로 낙인찍어 감시하던 ‘보도연맹원’ 수십만을 집단학살했다”며 “그러한 무법적 폭거인 살인에 대해서조차도 ‘반공’이라고 정당화하고 있는 것이 지금까지 실정”이라고 개탄했다.

박정희는 ‘충복’ 전두환·노태우는 ‘충실한 제자’

박정희 전 대통령에 대한 한 교수의 지적은 여전히 예리했다. 그는 “박정희는 기시노부스게(岸信介)로부터 세지마 류조에 이르기까지 옛날 만주시절 상전에게 충복노릇을 하면서 굴욕밀실외교를 자행하고 그들의 지도에 따랐다”고 지적했다.

박정희의 뒤를 이은 군사정권의 후예 전두환, 노태우 전 대통령에 대한 지적도 잊지 않았다. 그는 “전두환과 노태우도 세지마의 충실한 제자였다”며 한국의 과거정권의 암담했던 실태를 고발하기도 했다. 산케이신문이 발간한 세지마 류조의 ‘회상록’에 등장하는 내용이다.

한 교수는 이외에도 전두환 전 대통령이 1979년 12·12 쿠데타에 앞서 일본대사에게 미리 보고했다는 점을 공개해 눈길을 모았다.

이에 대한 근거는 박선원 씨가 영국 웨릭대학에 제출한 학위논문과 국내 2002년 국제정치 논총(박선원, ‘냉전기 한일협력의 국제정치-1980년 신군부등장과 일본의 정치적 영향력’ 국제정치논총 제42집 3호 2002년 한국국제정치학회)에서도 소개되고 있다.

겁먹은 친일파 수구언론의 마지막 카드는 ‘미친 척’

“한승조 같은 파렴치한 논의가 얼굴에 철판을 깔고 버젓이 등장하는 이유”에 대해 한 교수는 제대로 된 일제청산 없이 친일파가 기득권을 잡아온 한국현대사의 아픔을 지적했다.

“해방 후에도 일제하에 매국행각을 한 친일파가 60년을 이 땅의 실권을 장악해 왔다. 그들 친일파는 우리의 눈과 귀, 입을 막고 바보로 순치시켜왔다. 그런데 친일파가 지금 사정을 보니 속이 터질 지경으로 안타까운 것이다. 국민이 일제잔재청산에 나서고 있는 것이 못마땅하다. 아니 겁부터 난다. 예전 같으면 ‘빨갱이 놈들’하고 한마디 매카시즘의 콧바람을 내면 찍소리도 못했을 텐데 그렇지 않은 것이다. 그들로서는 미치고 환장할 노릇이다. 무지렁이 백성이 몰라도 크게 모르고(?) 겁 없이 날뛰고 있어서 속 터져 죽을 일이다.”

그는 “수구 친일언론은 교묘하게 친일파 찬양의 온갖 선전무드를 조성하는 우민정책을 써오고 있다”며 “수구 언론기관을 동원해서 친일파의 국가발전기여론을 외쳐대고 이승만과 박정희의 냄새나는 추악한 행실에 분칠을 해서 소란을 떨지만 약발이 안 듣는다”고 지적했다.

한 교수는 “한승조가 일찍부터 친일파 박정희를 찬양해 온 것은 다들 알고 있다”며 이번 사건에 대해서는 “마지막 카드를 미친 척하고 들이댄 것”이라고 일갈했다.

‘한국의 일본식민지화 찬양’은 박정희 측근 박종규의 논리

“러일전쟁에서 일본이 승리해 한국이 일본제국의 식민지가 된 것은 천만다행”이라는 한승조 씨의 논조에 대해 한 교수는 “박정희 시대에 이시하라 신타로를 만난 박정희의 측근인 박종규가 똑같은 말을 했다”며 1990년 발간된 이시하라 신타로(石原愼太郞)의 ‘현대사의 분수령(文藝春秋社 文春文庫, 237)을 근거로 제시했다.

1990년에 이 책을 접한 한 교수는 “결국 친일파의 민족의식의 빈곤과 국제정세분석의 유치함을 세삼 확인했다”며 혹평을 가했다.

그는 “러일전쟁 당시에 일본은 영국과 영일동맹으로 지원받고 미국의 후원 아래 극동의 영미제국의 헌병보조원으로 대리전쟁을 한 것”이라며 “한승조식 논리라면 1917년 10월 혁명의 전주곡인 1905년 혁명을 일본첩보부가 지원했으니 일본 육군첩보부는 빨갱이를 도운 이적행위라는 논법이 성립된다”고 지적했다.

“정치학을 하지 않아도 역사를 제대로 보는 이라면 1904년대에 일본이 영미 제국주의국가의 양해 없이 한국식민지화가 가능할 수 없었고 영미제국주의의 일본비호는 러일전쟁에서 일본제국의 영미굴종 예속의 대가였다. 그리고 러시아가 일본에 승리했다고 해도 영미제국주의가 러시아남진을 저지하는 실세로 버티고 있어서 러시아 식민지가 된다는 엉뚱한 가상은 통할 수 없다는 것은 상식이다.”

‘정신대 옹호 망발’은 오선화가 먼저

한 교수는 일본제국군대의 정신대를 변명한 최초의 한국 사람에 대해 “일본에서 일본제국의 침략을 미화 정당화하며 일본극우 군국주의자들을 기쁘게 한 대가로 명사가 되어서 활약하며 몇 권의 책까지 내고 있는 오선화란 젊은 여인이 있다”고 소개했다. 오 씨는 전쟁 중 강간에 대해 1950년 한국전 당시 미군의 경우를 들어 ‘전쟁 중 강간불가피론’을 전개하며 일본제국군대의 성노예제도를 변호한 것으로 알려졌다.

한 교수는 “이 철없는 이는 일본제국군대가 성노예제도를 여인의 강제연행으로부터 관리유지에 이르기까지 제국정부군대의 권한으로 한 것을 간과하고 있다”고 꼬집고, “한국전 당시에 미군이 여인을 강간하고 매춘공연이 있었지만 이는 미8군에서 관리한 것이 아니고 한국정부가 제도운영을 한 것도 아니다”라며 판이한 배경을 지적했다.

그는 “특히 미군의 경우 전시강간은 군법위반으로 처벌했다”며 “이런 사정을 덮어둔 채 모두 하나로 뭉쳐 몰아쳐서 일제의 만행을 변명할 순 없다”고 강조했다.

한 교수는 “물론 한승조는 오선화의 수준까지는 아니지만 그의 심정은 일본제국군대를 심정적으로 편들고 있다”고 지적하고, “백주에 처녀를 잡아다가 공창에 수용하는 만행을 국가감독 하에 자행하고 사과·사죄도 안하고 물론 배상책임도 없다고 오리발을 내미는데 그것을 국민을 보호할 정부가 묵인하고 봐줄 수는 없다”며 소리를 높였다.

‘식민지 근대화 일제강점 찬양론’은 안병직이 선배

한 교수는 “일제의 식민지인 덕분에 우리가 이만큼이라도 되지 않았는가 하는 그럴듯한 일제침략 수긍론도 한승조의 독점상품은 아니다”라며 안병직 교수를 소개했다.

안 교수에 대해 한 교수는 “처음엔 정신이 좀 올바른 것 같더니 3년간 일본생활 이후에 변질됐다”며 역사인식의 부족을 꼽고, “최근 가수 조영남 식으로 조선인의 자질이 부족하다”고 지적했다.

그는 “친일파가 대개 그 상품을 팔아먹으면서 일본의 수구우익 군국주의 및 국수주의 세력의 귀여움을 받아오고 있다”며 “그런 이의 역사관과 역사의식의 빈곤을 개탄하는 것보다 중요한 것은 기성세대가 역사에 대한 올바른 인식을 할 분위기를 조성해 주지 못한 책임을 통감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전두환정권 시절 일본의 대학에서 박정희에 대한 평가를 두고 일본의 우익교수와 논쟁을 벌였던 한 교수는 “일본 우익교수나 일본의 우익인사의 주장은 박정희가 일본의 교육을 받은 일제충복이었기 때문에 잘했다는 것”이라며 “박정희의 후속 전두환 시절에 군부친일파의 문제를 마음대로 비판할 수 없기 때문에 조심했지만 결코 용납할 수 없는 주장이기 때문에 상당한 시간을 끌면서 논쟁했다”고 당시 상황을 회상했다.

‘친일파 비판하면 빨갱이’는 오카사키 히사히코의 작품

한 교수는 국가보안법을 일제시대의 치안유지법과 비교해 ‘한국판 치안유지법’으로 비유했다. 해방 이후 지금까지 100년간 친일파가 사용하는 논법이 똑같다는 것. 일제 당시에는 민족자주 일제반대를 치안유지법의 국체(國體) 또는 국시(國是)위반으로 몰았고, 지금도 국가보안법을 통해 ‘용공·친북 빨갱이’라는 매카시즘 몰이로 간단히 처리한다는 지적이다.

한 교수는 “천하의 악법 국보법의 공과를 실사해 폐지가 눈앞에 다가오자 친일파는 나라가 망한다고 소란을 떨며 빨갱이 타령과 친북세력이라는 엉뚱한 모략중상을 한다”며 “김일성이 콩밥이 맛있다고 했는데 너도 콩밥이 영양가가 있다고 하니 똑같은 놈이라는 식의 논리”라고 비웃었다.

할 말이나 논리가 궁해지면 ‘말이 많은 놈은 빨갱이’라는 억지도 한국 뿐 아니라 미국의 매카시즘과 일본의 수구우익의 논법에서 드러난다.

일본의 우익의 이론적 대부로서 나카소네가 찬양했던 오카사키 히사히코(岡崎久彦)는 그가 쓴 ‘요시타 시게루(吉田茂)와 그의 시대(PHP文庫)’에서 루즈벨트 대통령이 2차 대전 당시 일본제국을 패전시켰다는 이유로 그를 빨갱이라고 비난했다는 것이다.

한 교수는 “일제 우익국수주의의 비위를 거스르면 루즈벨트 미국대통령도 빨갱이 내지는 그와 유착한 용공분자로 몰려버린다”고 말하고, “힘을 배경으로 한 이 논법으로 얼마나 많은 사람을 죽이고 매장하고 망신시키고 괴롭혀 왔는가”라며 한탄했다.

한 교수는 마지막으로 다음과 같은 질책과 한탄으로 말을 맺었다.

“일본제국주의 잔재청산과 일제 찬양 친일파잔당의 청소가 안됐기 때문에 온갖 궤변이 난무하면서 사람들의 올바른 정신을 흐리게 만들고 있다. 이것을 그저 친일파의 마지막 발악으로만 봐 넘기기엔 그 한도를 넘어선 것이 아닌가?”

☞ 한상범 교수의 ‘한승조 글’ 반박문 전문 보기
이기호(actsky@dailyseop.com)기자
ⓒ 2005 데일리서프라이즈 민원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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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단군(conservparty)

사람,자유,평등 단기 4338년
conservparty
조회수 67

 
기사입력: 2006/07/07 [19:16]  최종편집: ⓒ yeslaw.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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