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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자의 인사카드 위조로 연세재단 이사장이 되는 법
연세대학교의 직원 인사카드 위조로 임금과 직위를 강탈당한 이장우 사건
사법정의국민연대 기사입력  2007/03/31 [12:43]

Ⅴ. 문서 위조 피해사례

1. 이장우 씨의 경우

연세대학교의 직원 인사카드 위조로 임금과 직위를 강탈당한 이장우 사건

1. 연세재단 이사장이 제자의 인사카드를  위조하여 소송사기를 해야만 되는 이유 

  가. 연세대학교는 왜 제자인 이장우의 인사카드를 위조 했을까? 이장우 문서위조 피해사례는 이 사회의 고질병인 사학재단 비리와도 관련이 깊은데, 당시 재단이사였던 방우영 이사(현 재단이사장)가 재단이사장이 되기 위해 연세재단을 부흥시키는 수단과 계기가 필요 했었다.

그로인해 연세대학교 재단은 가난한 농촌의 발전을 위해 부설로 인가 받은 농업개발원과 연세우유처리장, 그리고 기증 재산을 강탈하여 연세재단에 강제로 편입시켰다. 방우영이사장은 농업개발원이 개발한‘연세우유’사업이 많은 흑자를 내게 되자 마땅히 농업발전을 위해 쓰여 져야 할 이익금을 연세재단을 위해 쓰이도록 강탈한 것이다.

  나. 그 과정에서 농업개발원 출신이면서 농업개발원 때문에 연세대학교에 삼애농장을 기증한 고 배민수 목사의 유지를 이어받아 계승할 제자 이장우를 희생시키게 되는데, 농업개발원을 수석으로 졸업하고 농업개발원 부사무장으로 있으면서 농업개발원 실습지도 강의를 담당한 어엿한 선생님인 이장우의 인사카드를 위조하여 일용잡급직이란 이름으로 매장시켰던 것이다.(‘연대 역사 왜곡하고 제자 상대로 소송사기 일삼는 재단 이사장  방우영을 몰아내어 진리, 자유 연세전당 바로잡자! 참조)

 

 

  2.  연세대학의 역사 

  연세대학의 전신인 연세세브란스의과대학은 1885년 궁정어의(宮廷御醫)였던 H.N.앨런(미국 북장로회 선교사)이 고종의 명으로 설립한 제중원(濟衆院:초기의 이름은 廣惠院)을 모체로 하여 1899년 한국 최초의 의학교인 제중원의 학교로 출범하였고 1904년 L.H.세브란스에게 기증받은 기부금으로 근대식 세브란스병원을 준공하고 의학교육기관으로서의 체제를 갖추었다. 1909년 세브란스의학교, 1913년 세브란스연합 의학교로 개칭하였으며, 1917년 전문학교 설립인가를 얻어 1922년 세브란스의학전문학교로 개편하였다. 1942년 일제의 강요로 교명을 아사히[旭]의학전문학교로 변경하였다가 1945년 세브란스연합의학전문학교로 복귀하였으며, 1947년 세브란스의과대학(6년제)으로 개편하였다.


  한편, 연희대학교는 1915년 미국 북장로교, 남북감리교, 캐나다 장로교 등 선교부 연합위원회에서 서울 YMCA 내 조선기독교대학으로 개교하였다. 1917년 사립 연희전문학교로 발족되어 3년제 농학부도 개설되었는데, 1923년 신 교육령에 따라 교명을 연희전문학교로 변경하였다. 1944년 대학의 재산을 적산이라는 명목으로 몰수한 총독부가 교명을 경성공업경영전문학교로 고쳤으나, 1945년 광복 이후 연희전문학교로 복귀하고 1946년 연희대학교로 승격하였다(초대 총장 白樂濬 박사). 1957년 세브란스의과대학과 통합, 연세대학교로 새롭게 발족하였고 1977년 원주에 분교를 설립하였다.


  백 박사는 해방 직 후 한국교육심의회에서 신생 한국의 교육이념과 제도전반에 관하여 심의할 때 '홍익인간(Maximum Service Humanity)'을 교육이념으로 제안하였는데, 이는 [대학]의 수기치인(修己治人)과 일치하고, 실학의 이용후생에 상응하며, 기독교의 횡적인 봉사와도 상통하기 때문이다. 그 영향으로 '홍익인간' 이념은 1949년 대한민국 정부가 수립되면서 교육법의 기초가 되어 많은 대학들이 창립되었다.
3.  농업개발원의 역사
  연세대학 농학부는 1917년 연희전문학교 부설로 출범하여 1959년 연희동에 34,000평의 임야를 구입하고 박대선 박사가 4, 5, 6대 총장으로 재임하던 시절 서울특별시 교육위원회로부터 1967년 연세대학교 부‘농업개발원’을 인가받았다.


  연세대학이 농업개발원을 설립한 목적은 기독교정신으로 땅을 사랑하며 우리나라 식생활 향상을 통한 생활개선과 농촌 문화 개발을 위한 농업경영의 이론과 실사를 과학적 방법으로 연구 교수하고 이에 대한 인재를 양성하기 위함이었다. 이와 같이 용재 백낙준 박사와 박대선 박사의 연세농업교육에 쏟은 노력과 정성은 오늘날 연세의 터전이 되었고 연세우유의 발전으로 농업개발원 재정은 많은 흑자를 내게 되었다.


  농업개발원의 발전은 고 배민수 목사가 설립한 삼애학원 등 당시 농촌지도자를 육성하던 교육기관의 취지와 부합되어 그 사업을 승계시킬 목적으로 1976. 9. 일산삼애농장 6만평이 연세대학에 기증되고, 1975. 12. 홍은동 농장(1600평), 1981. 원지동 임야 16,650평도 연세대학에 기증되어 그 기초가 된 농업개발원은 여러 농촌지도자 육성기관의 뜻을 계승하게 되었다. 



 2. 피해자 이장우가 소송을 하게된 이유

가. 피해자 이장우는 1977년 3월 농업개발원 낙농학과와 원예학과를 각 각 수석으로 졸업하면서

그 실력을 인정받아 실습지도 강사로 발탁되여 실습 조교 및 사무직원으로 채용되었다.

당시 농업개발원에서는 채용 후 2~3년간은 임시직원으로 분류했다가 정식직원으로 발령하는 것이 관례로 되어 있었다. 게다가 학교에 채무가 많아 정직 직원채용이 늦어지는 것이라며 기다리라는 스승의 말을 믿었던 이장우는 부사무장 임명까지 받고 근무하던 중 12년만에 일용잡급직이라는 강등발령을 받고 분개 하지 않을 수가 없게 되었던 것이다.

나.실습강의까지 맡아 학생들을 가르치면서 농업개발원을 위해 타고난 성품에 헌신적으로 일했던 이장우를 일일잡부나 다름없던 일용잡급직으로 강등 발령한 배경에는 농업개발원을 강탈한 연세재단이 있었던 것이다.

스승이고 모교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 할 수 없어 3년 6개월간 인간적인 호소로 잘못된 발령을 되돌려 보려 했지만 여의치 않자,

 이장우는 시민단체인 경실련에 진정하게 되고, 이에 당시 연세대학교 송자총장은 이장우가 청소원 이었다고 경실련에 거짓답변을 하였다.


 연세대학교에 의해 강탈당한 농업개발원은 청소원에게 학생들의 강의를 맡길 만큼 그렇게 허술한 교육기관은 아니었다.

 라. 결국 이장우는 연세대학교를 상대로 소송을 하고 보니, 스승이었고 상관이던 강영희 원장과 황규복 과장, 이충일 총무처장등이 피해자 이장우의 인사고과를 거짓으로 보고하여 강등 발령이 되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연세대교는 어떻게 12년이 넘도록 실습 강사 겸 사무직원을  청소원과 구분도 못하는 어리석은 일을 저 질럴 수 있었다는 것인가.

마. 어쨌든 이 일이 성실과 근면을 생활기조로 살아온 홍익인간 이장우의 성실했던 12년과 함께 미래에 대한 희망도 함께 앗아 갔다. 방우영 재단이사장이 개발원을 강탈했듯이 이장우의 청춘과 미래도 강탈했던 것만은 분명했다.


1980년도 농업개발원 졸업앨범 중에서 발췌

-붉은 선 표시 안에 이장우 선생님이란 사진과 글씨가 보인다.

3. 다윗과 골리앗의 싸움 (1차 전쟁)

< 연세대학교를 상대로 한 ‘전직발령 무효 확인 소송’>

“이장우의 인사카드 위조행사 및 이장우의 인사고과를 허위 보고한 자 앞세워 연대가 승소하는 법."

가. 이장우의 인사카드 비고란에는 ‘직원들과 똑같이 근무하지만 강사료지급’ 이라는 대목이 기록되어 있어 청소부가 아님이 분명히 명시되어 있었음은 물론 사무직원들과 똑 같이 근무했다는 사실이 있기 때문에  연세대학교는 이를 삭제하여 재판부에 제출했으며 문서를 위조한 관련자를 앞세워 위증하도록 유도한 결과 이장우는 패소했다.

재판에 임했던 이장우의 진실 된 호소는 위조된 인사카드 앞에서 눈물만 흘렸다. 스승을 믿었고 학교를 믿었기에 12년 넘는 세월을 기다렸던 그였기에 배신의 상처가 더욱 깊었고 가족을 볼 낯이 서질 않았다. 하지만 그의 아내 조남숙은 포기하지 않고 길을 찾고자 노력한 결과 인사카드 위조 사실은 소송 15년만에 전문 문서감정사에 의해 변조된 사실이 입증되었다.



다. 힘의 논리, 가진 자의 특권으로 하루아침에 선생이자 부사무장이었던 이장우를 일용잡급직 청소원으로 매장한 연세대학교는 문서위조를 통해서 승소 했었고 이장우와 부인인 조남숙의 피 눈물 나는 노력도 허사로 돌아 가고 말았다.

라. 스승과 상관이던 과장을 위증 및 사문서 위조죄로 고소를 해보았으나 검찰은 이장우를 사무직원 겸 실습지도강사로 직접 채용했던 스승이면 원장이던 연세대 교수가 청소원이 아니었다는 진술을 하였음에도 검사는 무혐의 처분을 했다. 결국 검사의 부당한 무혐의 처분으로 15년 동안 소송을 하게된 이유가 되었다.   


4. 다윗과 골리앗의 싸움 (2차 전쟁)

<삼애농장 부사무장 임명장에 기한 사무직 확인의 소송 >

성직자 앞세워 사기 치는 법”

 가. 앞선 소송에 승복할 수 없었던 이장우와 조 남숙은 ‘삼애농장(고 배민수 목사에 의해 농업개발원에 기증되어 농업개발원 발전에 기여함) 부사무장에 기한 사무직 확 인 소송’을 시민단체의 지원을 받으며 시도하고, 그 결과로 1998년 2월 20일 서부지원으로부터  ‘원고(이장우)는 사무직 32호봉으로 발령을 인정 한다’는 승소결정문을 받게 되었다.



법원으로부터 승소결정문을 받기까지 10년동안 피말리는 고통을 감내해야 했던 이장우는 지칠만큼 지쳐있었다.

  이를 틈타 연세대학교는 교목실장을 맡은 성직자를 통해 기독교 신앙을 가지고 있던 이장우에게 거짓된 약속을 하며 ‘소 취하(소송취소)를 해야 합의도 되고 복직도 된다.’고 압박했다.

하지만 연 세대학교는 이장우가 소송을 취하하자 만나주지도 않았고 승소 결정문은 물거품이 되어버렸다. 속았다는 생각이 들었을 때는 이미 늦었던 것이다.

다. 연세대학교와의 10년간의 법정싸움은 다시 처음으로 돌아갔지만 억울함은 그전보다 더한 고통을 주었기에 다시 법을 통한 지루한 고통의 싸움을 시작하게 되었다.

5. 다윗과 골리앗의 싸움 (3차 전쟁)

<주위적 :삼애농장 부사무장 임명장에 기한 사무직이행의소

 예비적 : 용원직급에 기한 미 지급 임금 >

 “판사 앞세워 엉터리 판결하는 법
< 직급도 보직도 모르는 판사>”

가. 피해자 이장우가 일용잡급직이 아닌 사무직임을 인정하는 강제조 정결정문을 받았으며 그 업무 또한 실습지도 강사등 사무직 직원만이 할 수 있는 일을 해 왔음에도 불구하고 서부지원 손 순무 재판장은 단지“부사무장” 임명장이 직제 표에 없다는 이유로 패소판결 한 후 법복을 벗고 변호사 개업을 해버렸다 . 대한민국 일류대학교인 연세대학교가 일용 잡급 직원에게 학생의 실습강의를 맡길 만큼 허술한 대학이었는지 묻고 또 묻고 싶을 정도로 이해가 되지 않는 판결이었다.

나. 서울고등법원 이우근 판사는 이장우를 사무직으로 채용했다는 신영오교수의 증언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예비적으로 청구한 용원직 임금만이라도 받으라는 재판장 권유에 이장우의 처는 이미 사무직급으로 승소결정문을 받은 사실이 있기 때문에 판사의 권유를 마다한 후 보다 양심적인 판결을 받고자 예비적 청구한 임금부분(약 3억원)은 취하를 해버렸다. 즉 이장우가 오랫동안 소송을 하는 이유는 돈이 아닌 명예가 소중했고, 또한 진실을 밝히기 위해 소송을 하고 있음을 재판장에게 각인 시킬 목적으로 준다는 미지급임금도 받지 않겠다고 자발적으로‘소 취하’를 하였다고 한다.

다. 그러나 재판장은 1심 판결문대로 기각 판결을 하였으며, 단지 원고에게 삼애농장 부사무장으로 발령하므로 사무직급으로 오인한 과실이 있다고 인정된다며 금 2,000만원을 배상하라는 판 결을 이르렀고 더 이상 이장우가 도전을 하지 못하게 하는 이를 태면 족쇄 같은 판결문이었다고 한다.

라. 과연 일용잡급직 직원을 12년간이나 착각 속에 여러가지 사무직과 겸행해서 실습강의를 맡겼다는 사실은 또한번 이해가 가 지 않는 판결이다.

 생각해 보라! 동네 학원에서도 청소원에게 학생들 강의를 맡기지는 않는다. 하물며 대한 민국에서도 명문대학인 연세대학이 부설한 농업개발원이라 할지라도 12년간이나 청소부원과 선생님이자 부사무장인 사무직을 구별하지 못해 성실한 한 인간의 청춘과 미래를 매장시키는 죄를 범 할 수 있었다는 말인가!

마. 법은 상식에서 출발한다고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법원이 상식을 무시하고 위조된 종이와 글씨에 휘둘려 진실에 눈을 감아 버렸다니 어찌 통탄하지 않을 수 있을까!!! 판사의 작은 판결하나에도 한 인간의 일생에 커다란 상처와 고통이 오고 간다는 것은 누구나 공감하는 내용이다.

바. 판사라는 자리가 중요하고 존경을 받는 대상인 것이다. 사건에 대한 통찰과 법을 해석하는 데 있어서 그 판단은 사람들 사이에 있어 상식과 철학이 건전해야 한다고 본다. 인간사를 무시한 법을 위 한 법에 바탕 한 판단은 상당히 위험한 발상과 결과를 낳는다는 이야기이다. 하지만 현실은 이렇게 중요한 내용이 무시되는 사례가 많기에 억울함에 가슴 치는 무수한 사람들이 있고 탈옥한 살인자들이 ‘유전무죄  무전유죄’를 외쳤을 때 많은 국민들이 공감했었던 것이다.

6. 다윗과 골리앗의 싸움 ( 4차 전쟁 )

<부당정직 구제 신청 (행 정사건)>

 " 총무처 직원을 앞세워 병가신청 변조하는 법 ”

 가. 연세대학교는 피해자 이장우가 1997년 9월 16일 근무 중 사고를 당하여 뇌진탕으로 인한 뇌출혈로 장기간 휴직과 그 후유증으로 갑자기 졸도를 일으킨 관계로 병명을 알고자 치료를 받던 중 이었으나, 핑계가 아닌 업무상 사고로 인한 치료기간을 무단결근으로 처리해 1999 년 7월 5일 3개월 감봉 및 정직처분을 내렸다.


나.“ 의사의 양심을 저버린 가혹한 연세대학교 세브란스병원의 만행 ”

피해자 이장우는 근무 중 사고로 뇌출혈이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뇌수술환자를 정신과 병동에 입원한 후 약물치료를 하므로 서 아무런 이상이 없는 것처럼 3개월 만에 강제 퇴원한 결과 사고 2년 만에 다시금 뇌출혈을 일으켜 1999년 11월 19일. 경 뇌수술을 받게 되었으나, 연세대학교 세브란스병원에서는 한 달간의 입원 비를 내지 않았다는 이유로 환자인 이장우를 그의 처가 근무하는 시민단체의 사무실 앞에다가 버리고 가버렸다.

피해자 이장우는 남자라고 하지만 심각한 사고 후유증으로 아무도 힘을 쓸 수 없이 병원 측의 결정에 의해 치료를 거부당 하고 버려졌던 것이다. 병중의 남편이 길에 버려진 모습을 목격한 가족의 아픔은 어떤 말로도 표현 할 수 없는 슬픈 아픔 이었고 가슴치고 통곡할 일이었다.



다. 결국 피해자 이장우의 가족은 연세대학교를 상대로 정직처분에 대한 소송을 제기 하게 되었는데, 연세대는 총무처 직원인 이광환을 앞세워 병가 신청 시 병가기일인 날짜가 누락된 부분을 들어 무단결근 이라고 주장하였다.

라. 피해자 이장우의 처 조남숙은 병원에 입원해 있는 남편을 대신해 병가신청을 하였는데, 총무처 직원인 이광환은 병가기일을 적지 말라고 하여 날짜를 적지 아니 한 상태로 병가신청서를 처리하였던 것이 다.

마. 그 후 노동위원회에 소송을 제기하자 총무처 직원 이광환의 자필로 작성된 1999년 2월 1일부터 12일까지 의 병가기일이 누락된 (고의성이 엿보이는 부분이다) 병가신청서를 가지고 무단결근이라고 주장했던 것이다.

바. 그럼에도 초심 노동위원회에서는 피해자 이장우에 대한 연세대학교의 처분이‘부당한 징계’라는 판결을 내렸으나, 연세 대학교가 이의신청을 제기하자 중앙노동위원회에서는‘정당한 징계’라는 판결로 연세대학교의 손을 들어 주었다.

연세대학교가 농업개발원과 그 기증재산을 편법 갈취 하는데 걸림돌이었던 까닭에 연세대학으로부터의 억울한 고통과 압력을 받아온 피해자 이장우의 불행은 끝을 모르고 치닫고 있었다.

 허우적거리며 헤어 나오려는 이 장우와 그의 가족을 향해 핍박하는 거대한 세력(골리앗)은 약점을 노리고 보이지 않는 교묘한 폭력을 행사하고 있었 다.

 허 허, ~ 원칙을 지키는 용기보다는 힘 있는 자에게 아부할 줄 아는 융통성이 부족한 것도 죄인 것이 세상을 살아가는 지혜인 것을 모르는 이장우에게 가해지는 폭력은 당연한 것인가?

 정직하게 살기가 이렇게 도 힘이 드는 것인가.


7.  다윗과 골리앗의 싸움 (5차 전쟁)

< 신체감정의 거부로 업무상 재해로 인한 요양신청을 받을 수 없었던 절박한 사연 >

재판장 앞세워 신체감정 거부하는 법 ”

피해자 이 장우는 근무 중 다친 사고로 인한 뇌출혈과 그 후유증으로 인해 직무상 요양신청을 하였으나 연세대학교는 이를 거절했다 . 요양이 필요한 이장우가 할 수 있는 일은 업무상 재해를 인정받아야 했으므로 이를 위해 또다시 소송을 선택해야 했다 .

연세대학교는 피해자 이장우가 알코올중독자이고 음주한 상태에서 일어난 사고라고 주장했다.

나. 기록 에 의하면 피해자 이장우는 사고가 날 무렵 추석명절인 관계로 소주 반병을 마신 기록이 있다. 연대는 이 사실을 들어 알 코올중독자로 매도하면서 그로 인한 사고이므로 책임을 질 이유가 없다는 것이었다.

피해자 이장우는 알코올중독 자가 아니라는 것과 업무상재해를 입증 하기위해 신체감정을 신청했으나 이화여대부속병원은 인과관계가 없다는 감정결과 로 패소판결을 받았다.

신체 감정 후 사고로 인한 후유증의 진단서(뇌출혈, 시야장애, 간질, 선망증 등)에 의해 항소를 한 후 다시금 신체감정을 통해 업무상 재해임을 밝히고자 했으나 재판부는 거절한 후 2심에 제출했던 증거들은 심 리조차 하지 않고 이장우는 또 다시 패소하였고, 대법원 역시 수많은 판례를 무시하고 기각했다.

 라. 이장 우는 업무상 재해만큼은 승소할 수 있다는 변호사의 장담을 믿고, 계속하여 병원치료를 받아야 될 형편이나 병원비용이 없어 할 수 없이 퇴직금으로 병원비용을 충당하고자 2004. 5. 25. 자진 사퇴를 하게 되었으나, 판사들의 엉터리 판결로 피해자 이장우는 정신과 병동에서 죽어가고 있다.

요점은 이렇다.

 첫째, 일반적으로 개인 간의 작은 일에 있어서도 내 집 일을 해 주다가 다친 사람에 대해서는 먼저 심심한 위로와 함께 몸을 회복할 수 있는 시간을 주는 것은 인간적인 도리이다.

하물며 연세대학교같이 대한민국의 내 노라 하는 큰 교육기관에 진리를 건학이념으로 삼 고 길러 내는 기독교 교육기관에 업무상재해를 인정 안하는 것뿐만 아니라 요양마저 거부한다는 것은 법을 떠나서 인간적 으로도 이해할 수 없는 가혹한 처사인 것이다.

 이는 오래전부터 부당하게 내쫒고 싶었던 연세대학교의 흑심 과 이를 빌미로 직장에서 견딜 수 없게 하여 내쫒고자 하는 의도임을 보여주는 내용으로 보인다. 연세대학교가 농업개발 원과 그 기증재산을 편법으로 갈취하던 때부터 걸림돌이던 이장우의 직급을 인정하지 않고 청소원으로 강등하던 그 연장 선상으로 봐야 한다는 것이다.

 둘째, 이장우의 신체감정을 거절한 재판부의 판결을 부당하다고 의심하기에 앞서 신성한 재판정에서의 공정함은 재판부의 판결을 존중할 수 있는 가장 기본적인 내용인데도 불구하고 재판부가 소송 을 재기한 피해자가 스스로를 입증할 기회를 주지 않은 채 판결을 내린 것은 재판부를 인정하기 힘든 대목이 다.

21세기를 사는 현대인이 과학적인 방법에 의한 증거채택을 무시한다는 것도 이해가 되지 않는 대목이 다.

 결국 법원은 근무중 사고 이후 이장우는 알 수 없는 갖가지 질병으로 죽어가고 있는데도 불구하고 약자인 근로자편이 아닌 거대한 사용자(골리앗) 편에 서서 그것도 뇌출혈과 뇌출혈로 인한 뇌수술을 받은 환자가 아무런 인 과관계가 없다는 판결을 할 수 있다는 것은 어찌 보면 피해자 이장우의 처(다윗)가 비리공권력을 색출하는 운동을 하다 보니 고의적으로 이장우의 가족들을 모두 전멸시키고자 엉터리 판결을 한 것은 아닌지 의심이 가지 않을 수 없는 부분이다.

피해자 이장우와 그의 가족이 18년에 가까운 세월동안 소송을 포기하지 않는 이유를 이해 할 수 있는 부분이 기도 하다. 사법부마저 믿을 수 없다면 우리 소시민을 위해 울려줄 이 시대의 진정한 신문고는 어디에 있다는 말인 가.

 소위 돈 없고 빽 없는 놈은 말 할 자격이 없다는 것이 현실인 것인가!

8.  다윗과 골리앗 의 싸움(6차 전쟁 )

 < 농업개발원 원장들의 불법행위(인사고과 허위보고)로 인한 손해배상 >

“변조된 원고 이장우의 인사카드 진실을 밝히는 법”

가. 도리 없던 피해자 이장우는 1977. 3. 15. 자 이장우를 채용하였던 스승이신 신영오원장과의 맺은 근로계약을 근거로 2003. 7.경에 다시 소송을 제기하게 되었으나 1심재판부는 단한번 피고 측 이충일 총무처장이 위증한 날 결심한 뒤, 날치기 재판으로 부당하게 패소 판결하였다.

 피해자 이장우가 결백을 입증할 정당한 권리이자 기회를 또 다시 부여하지 않은 재판부의 이해 할 수없 는 판결이었다.

 나. 어찌 이를 억울하다 하지 않을까! 너무나 오랜 세월 한이되어 맺힌 사연을 풀기엔 억울함의 정도가 깊었다. 피해자 이장우는 현재 항소하여 서울고등법원에서 2007. 1. 30.선고기일로 지정 되었으며, 이장우의 처 조남숙은 선고직전에 이 책을 내어 공정한 판결을 받기 위해 그 이유를 밝혔다고 한다.

 서당 개 삼년이면 풍월을 읊는 다고 했던가.

 다. 이장우의 처(다윗)는 15년 동안 연세대학교(골리앗)와의 소송을 통 해서 법을 이용해 오히려 피해자를 만드는 소송사기를 스승(연세대학교)으로부터 배운 실력으로 원고의 퇴직금 일부를“ 재판이냐 개판이냐 짜고 치는 재판 청산을 위하여(변호사들의 사건 변론 피해사례)”라는 책자의 출판비용으로 사용하여 2004. 7. 13. 출간한 결과 많은 시민들로부터 호응을 얻게 되었으나,

이장우의 처는 검찰과 변호사들로부터 압력 을 받아 억울하게 구속되는 사건이 발생하였고 2005. 11. 4.행사비용으로 받은 것은 무죄 되는 반면, 사건해결조로 회비 와 출장비, 교통비를 주었다고 거짓 진술한 부분만 변호사법으로 유죄 되여 석방되었으나 재판장은“피해자들에게 피해를 준 것은 없다”라는 직권판단을 하므로 서 유죄사유는 다름 아닌 변호사도 아니면서 다윗이 피해자들을 구조한 것이 죄가 된다는 취지로 유죄판결을 하였던 것이다.

 라. 피해자 이장우의 처는 연세대학교와의 오랜 소송을 통해서 연세대학교의 대리인으로 선임된 변호사로부터 소송사기 수법인 피해자를 도리어 억울하게 만드는 교묘한 전략(?)인 합법 을 가장한 소송사기수법이 어떤 것이고 어떻게 대응해야 하는지도 알게 되었다고 한다.  

 마. 그 결과 연세대학교가 선임 변호사로부터 그동안 변조된 인사카드 등 소송사기로 승소했던 부분들에 대한 자백을 받아 낼 수가 있었고, 또한 법원이 인정한 전문 문서감정인을 통해서 무려 15년 만에 인사카드 변조 여부에 대하여 확인할 수 있 었다.

결국 연세대학교는 인사카드에“365일 직원들과 똑 같이 근무하지만 강사료 지급”이라고 표기된 부분을 삭제하여 법원에 행사하였던 것이며, 따라서 삭제된 내용이 진실이라면 연대는 피해자 이장우의 30년 동안의 임금과 퇴직 금을 착취한 것이 된다.


9. 아름다운 전쟁의 목적

가. 피해자 이장우를 연세대학교가 희생시켜야 했던 이유는 당시 재단이사였던 방우영이 재단이사장이 되기 위한 수단으로 부설 농업개발원과 연세우유처리장, 그리고 기증재산 전부를 연세재단을 위해 쓰여 지도록 만드는 일이었으나, 농업개발원에 재산을 기증한 고 배민수 목사의 유지를 이어받아 계승한 제자 이장우가 걸림돌이 되었기 때문이었다.

나. 결국 18년 동안의 전쟁 끝에 재단이사장이 농업개발원과 그 기증재산을 강제이관하고 폐관할 수밖에 없는 환경을 만들어 국력의 근간 1차 산업영역의 농업후계자들의 배움의 기회 와 발전의 여지를 원천봉쇄한 그 과정과 비리가 드러나게 되었다.

다. 일산 삼애농장을 기증자 유지와는 달리 용 도변경하기 위해서는 이장우가 문제가 될 것을 예상해 끝내 자진사퇴 시키려 했던 증거로 1996. 3. 8. 국민일보에서 보도 한 기사에 따르면 “연대는 일산 삼애농장을 기증자 유지와 달리 용도 변경함으로써 기독교재단으로부터 제소 당했다”라 는 기사에 의해 피해자 이장우가 왜 부당한 대우를 받았는지 알게 되었다.

라. 그러한 이유 때문에 제자인 이장우 의 인사카드를 변조하여 제자인 이장우를 사회적으로 매장하는데 협력한 스승이었던 원장과 과장들은 부총장과 총무처장, 입학관리 처장 등으로 화려한 별을 달아 주는 반면 연세대학교 비리의 걸림돌이었던 제자 이장우는 연세대학으로부터의 부당한 대우와 압박으로 고단한 인생을 살아야 했었던 것이다.

마. 연세 재단이사장 되는 것이 목적이었던 방우영 은 고 배민수목사로부터 삼애농장을 기증받을 당시 농촌지도자 양성과 농촌교회 설립을 목적으로 기증 받았으나 삼애농장 은 연세대학교 축구장과 야구장을 위해 쓰여 지고, 다만 기념관을 개조하여 삼애교회를 그것도 30년만인 2006년 9월 17일 신축하게 되었다.

바. 그리고 골리앗 방우영은 영원한 연세왕국을 자신의 것으로 만들기 위하여 거짓말 잘하는 전 송자총장을 앞세워 연대 홈페이지 ‘연대 발자취’에 용재 백낙준박사가 농업발전을 위해 심혈을 기우려온 업적을 고의적 으로 누락한 체, 연대 역사마저 왜곡하여 허위로 기재하였다가 다윗의 항의로 현재까지 역사를 정사하지 못하고 있다.

결국 제자인 이장우는 모교와 스승들의 비정한 사업계획은 모르는 체 스승을 믿고 기독교인으로서 기독교학교라 는 것을 믿었다가, 스승들에게 사기를 당해 건강했던 몸과 단란한 가정은 풍비박산이 나고, 현재 61세의 나이로 폐인이 되어 죽어가고 있는 형편이다.

그러나 다윗의 목적은 “연세 진리와 자유”를 지키기 위한 전쟁의 목적이었다고 외치며, 독립된 대한민국에서 친일언론사주이며 조선일보사 방우영 명예회장이 한 푼도 투자한바 없는 연세진리와 자유를 강탈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연세인들은 침묵하고 있음을 안타깝다고 외치고 있다.

* 사건의 쟁점 *

피해자 이장우가 연세대학교 부설 농업개발원에서 12년 동안 조교 선생님으로 근무했는지, 일용잡급직 용원 직(청소원)으로 근무했는지를 밝히면 되는 사건이다. 그러나 이러한 사소한 사건도 15년 동안 판단을 못하는 대한민국의 사법 현실이 개탄스럽기만 하다.



= 이장우 사건이 제기하는 문제점 =

 ① 이장우와 이장우의 처 조남숙은 소송이라는 지루한 싸움을 통해 이 나라의 법과 공권력이 힘 있는 자의 편이 아니라 누구에게나 공평해야하 며, 선한 의지로 공익을 위해 그 재산을 기증한 기증자의 유고는 배반되어서는 안 된다고 호소하고 있는 것이 다.

 ② 총체적 부정부패의 고리 속에 “대학” 까지 동참하는 것은 옳지 않다. 대한민국의 문제점이 “ 책 임지는 사람이 없다 ”는 것인데, 명문 사학 당국의 처세 역시 같다는 점은 이장우 부부의 불행이 아니라 대한민국의 불 행이다.

= 연세재단 이사장 방우영의 문제점 =

 연세재단 이사장 방우영은 고 배민수 목사로 부터 일산 삼애농장을 기증받으면 약속한 농촌교회 설립 이행을, 고 배민수 목사가 만들어 논 삼애과수원예실습농장을 부당하게 벌목한 후, 연대 축구장과 야구장으로 만든 다음에서야 장장 30년 만에 교회신축만 약속을 지켰다.

결국 이러한 증거들에 의해 피해자 이장우의 주장처럼 방우영은 연세재단이사장이 되기 위해 농업개발원폐원과 연세우유처리장 강제이관, 기증자 유지재산을 타 용도의 전환 목적으로 제자인 이장우를 희생양으로 삼았던 것으로 보여 진다.
 

 

 

=  연세 재단이사장 방우영의 비리 증거 = 


< 농촌이 있어야 나라가 산다!>라고 외쳤던 고 배민수 목사는 저 세상에서 축구장을 내려다보 면서 과연 무슨 생각을 할까? “ 내가 죽거든 내 재산을 소외된 농촌교회 발전을 위해 써 다오.” >

연대 고양시 고봉산에 교회 세웠다… 고 배민수 목사 기증 5만여 평에 삼애교회 창립

[국민일보 2006-08-16 18:00]



 연세대학교(총장 정창영)는 다음달 17일 오후 3시 경기도 고양시 고봉산 기슭에서 아주 특별한 예배를 준비하고 있다. 제2의 연세대학 교회를 설립하고 창립 예배를 드리는 것이다. 대학 교회는 독립 운동가이자 우리나라 농촌 발전을 위해 헌신한 배민수(1896∼1968년) 목사의 유족들이 지난 1976년 기증한 경기도 고양시 중산동 일대 5만6000여 평 부지 위에 건립된다.

 담임 박정세(59·연세대 신대 교수) 목사는 “기증 당시 이곳에 기념교회를 설립하기로 한 약속을 지키기 위해 이번에 삼애기념관을 개축해 삼애교회 창립 예 배를 드리게 됐다”고 밝혔다.

 대학이 캠퍼스 내부가 아닌 외부에 교회를 설립하는 것은 매우 드문 일이다. 전례를 찾기 힘들다 보니 비록 땅은 기증받았으나 대학측로서는 교회 설립 절차가 그리 쉽지 않았다. 연세대는 이번 교회 설립으로‘초교파 농촌 교회를 지어 달라’는 기증자와의 30년 전 약속을 늦게나마 지키고 이 정신을 후세에게 전해주게 됐다.

 교회 1층은 예배실과 친교실 사무실 등으로, 2층은 배 목사의 유품 기록 등이 소장된 삼애기념 홀과 소강당 등 200여 평이 새로 단장된다. 교회 외에도 천문대 야구장 잔디 축구장 등의 시설이 있다.

 배 목사 는 일제 강점기 때 대한예수교장로회 통합 농촌부장을 지내고 농촌 지도자 양성을 위해 농업기술학교를 설립했다. 연세대 는 기증받은 이 학교 부지를 기반으로 80년대 초 낙농학과(현재 생물자원공학과)를 창설했다. 또 삼애기념 학술강좌를 열 고 농어촌 교역자 자녀인 석·박사 과정 10명에게 장학금을 지급하고 있다.

삼애교회의 ‘삼애(三愛)’는 배 목사의 호. 이는 배 목사가 평생토록 추구해 온 ‘하나님 사랑’, ‘노동사랑’, ‘농촌 사랑’을 뜻한 다.

  삼애교회는 배 목사의 이런 정신을 이어받아 경기 북부지역의 신(新) 목회 패러다임을 추진할 계 획이다. ‘진리가 너희를 자유롭게 하리라‘(요8:32)는 연세의 건학 이념에 따라 ‘그리스도의 몸 된 교회’로 이 시대, 이 지역에 꼭 필요한 예배공동체를 만든다는 것이 목회비전이다. 특히 선교 활동으로 인근 지역의 200여 미 자립 농어촌 교회와 1만여 명의 소외된 외국인 노동자들을 돕는 사역을 준비 중이다.

  박정세 목사는 “이 지역이 최근 몇 년 새 아파트 단지로 변했지만 가난하고 소외된 이웃과 농촌을 사랑했던 배 목사의 정신은 삼애교회 설립을 통해 더욱 고양될 것”이라고 말했다.

유영대 기자 ydyoo@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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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리와 자유의 전당 연세대 역사바로세우기 촉구 대회

조선일보 이사장 방우영이 연대 재단이사장이 된 이유

지난 5월 15일 스승의 날을 맞이하여 공권력피해구조연맹(이하 공구련) 에서는“ 연세대 역사 왜곡한 재단이 사장 방우영 자진 사퇴 촉구대회를 개최하였다. 이날 공구련 연대 역사바로세우기운 동본부, 홍대 역사바로세우기운동본부, 사법개혁국민연대 등과 주관하여 연세 재단의 기금이 조선일보로 흘러갈 가능성 등에 대하여 말하였다.



성 명 서

연대 역사 왜곡하고 제자 상대로 소송사기 일삼는
재단이사장 방우영을 몰아내어 진리, 자유 연세전당 바로잡자 !


  연세대학교는 기독교 정신을 바탕으로 진리와 자유 의 뜻을 따라 겨레와 인류에 이바지할 사람을 가르치기 위하여 이 땅에 세워진 배움터이다. 연세인은 겨레의 오랜 문화 전통을 갈고 닦아 널리 펴는 민족 학문의 개척자이고, 값진 인류 문화의 이치를 캐는 세계학문의 선구자이며, 불의에 맞 서 옳은 편에서는 정의와 자유의 사람이고, 이웃을 위하여 앞장서 일하는 박애와 봉사의 사람이다.

  우리는 이 뜻이 온전한 나라와 세계를 이룩하는 밑바탕임을 믿어, 이를 힘껏 펼쳐 나아간다. 연세에서 가르치 고 배우는 우리는 창의력과 비판력을 살려 학문의 원리를 밝혀 세우고, 신앙과 양심을 갖추어 곧고 바르게 살며, 희생과 사랑의 마음으로 사회에 봉사한다. 이는 연세 학원을 세우고 일군 이들의 이상이며, 부름 받은 연세인 모두의 사명이다.




  이것이 연세대학의 이념이고 학풍이다.

  그런데 연세대는 친일언론인 사주의 양자였던 방우영이는 버젓이 조선일보 이사장이 되었고, 이에 연세 재단이사가 되었다. 방씨는 연세이사가 되자, 연세우유처리장을 강제로 재단으로 이관해갔고, 김동길 부총장과 농업개발 원 원장 신영오를 경질해버렸다. 즉 재산기증을 받는데 노력하고, 농업개발원을 애써 가꾸어온 공로자들은 한칼에 날려 버렸다.

  이어 경영전문가라는 이유로 거짓말 잘하는 송자교수를 총장으로 임명하여 연세를 발전을 위한다는 핑계 로 기부금모금운동을 펼치는 반면, 재단 측은 기증자 유지를 져버리고 삼애농장을 타 용도로 전환하여 소송을 하게 함으 로서 진리 전당 연세명예를 훼손하였는가 하면, 송자총장 역시 이중국적으로 연세 명예를 훼손한바 있다.

  이럴 듯 가식과 거짓말로 1980년대부터 2000년도까지의 연대 발자취 이었던 것이었으나, 97년도에 방씨는 재단이사장이 되었고, 송자총장은 고의적으로 용재 백낙준박사의 업적마저 왜곡 및 누락한 체 현재 연대 역사에 기록해 놓고 있다. 


  그 뿐인가 재단이사장들에 대한 그동안의 명단은 삭제한 체 오직 방씨 이름만 버젓이 기록하여 방씨가 만든 연세재단처럼 둔갑해 놓았다. 이토록 송자와 방씨가 연대역사를 왜곡하여 기록된 이유는 연대는 제자였던 이장우와 그의 한가정을 무너뜨리고 참혹하게 짓밟은 범죄사실은

  방씨는 이사장이 된 후 양심교수들에게 쫓김을 당한 송장총장은 다시금 연세 디지털 대학의 총장으로 다 시 등용되게 되었으며 버젓이 연세재단에 감사가 되어 방우영 다음으로 재단이사장이 되고자 꿈을 꾸고 있다.

  이럴 듯 진리전당이 연세대는 간교하고 거짓말 잘하는 사람들이 개혁정부에 살고 있는 이 현실에서도 존 재한다는 것은 더 이상 묵고해서는 아니 된다고 판단 되여 연대 역사바로세우기운동본부를 창립준비를 하게 되었고, 이름 하여 '연세사랑'이라고 칭하기로 했다.

 그러나 주인 없는 연세재단 연대역사 진리를 돌이켜보면

  연세대학의 전신인 연세세브란스의과대학은 1885년 궁정어의(宮廷御醫)였던 H.N.앨런이 고종의 명으로 설립한 제중원(濟衆院:초기의 이름은 廣惠院)을 모체로 하여 1899년 한국 최초의 의학교인 제중원의 학교로 출범하였고 1904년 L.H.세브란스에게 기증 받은 기부금으로 근대식 세브란스병원을 준공하고 의학교육기관으로서의 체제를 갖추었다.

   1909년 세브란스의 학교, 1913년 세브란스연합 의학교로 개칭하였으며, 1917년 전문학교 설립인가를 얻어 1922년 세 브란스의학전문학교로 개편하였다. 1942년 일제의 강요로 교명을 아사히[旭]의학전문학교로 변경하였다가 1945년 세브란 스연합의학전문학교로 복귀하였으며, 1947년 세브란스의과대학(6년제)으로 개편하였다.

  한편, 연희대학교 는 1915년 미국 북장로교, 남북감리교, 캐나다 장로교 등 선교 부 연합위원회에서 서울 YMCA 내 조선기독교대학으로 개교 하였다. 1917년 사립 연희전문학교로 발족되어 3년제 농학부도 개설되었는데, 1923년 신 교육령에 따라 교명을 연희전문 학교로 변경하였다. 1944년 대학의 재산을 적산이라는 명목으로 몰수한 총독부가 교명을 경성공업경영전문학교로 고쳤으 나, 1945년 광복 이후 연희전문학교로 복귀하고 1946년 연희대학교로 승격하였다. 1957년 세브란스의과대학과 통합, 연세 대학교로 새롭게 발족하여 초대총장에 백낙준(白樂濬)박사가 취임하였으며, 1977년 원주에 분교를 설립하였다.

  백 박사는 국운이 기울어 가던 암담한 시대에 태어났으나 나라를 다시 찾고 세우는 방도가 교육에 있음을 알 고 일평생 교육 사업에 종사하여  백 박사는 해방직후 한국교육심의회에서 신생 한국의 교육이념과 제도전반에 관하 여 심의할 때 '홍익인간(Maximum Service Humanity)'을 교육이념으로 제안하였는데, 이는 [대학]의 수기치인(修己治人)과 일치하고, 실 그 영향으로 '홍익인간' 이념은 1949년 대한민국 정부가 수립되면서 교육법의 기초가 되어 많은 대학들이 창립되었다.

농업개발원의 역사




 연세대학 농학부는 1917년 연희전문학교 부설로 출범하여 1959년 연희동에 34,000평의 임야를 구입하고 박대선 박사가 4, 5, 6대 총장으로 재임하던 시절 서울특별시 교육위원회로부터 1967년 연세대학교 부설 '

  연세대학이 농업개발원을 설립한 목적은 기독교정신으로 땅을 사랑하며 우리나라 식생활 향상을 통한 생 활개선과 농촌 문화 개발을 위한 농업경영의 이론과 실사를 과학적 방법으로 연구 교수하여 이에 대한 인재를 양성하기 위함이었다. 이와 같이 용재 백낙준 박사와 박대선 박사의 연세농업교육에 쏟은 노력과 정성은 오늘날 연세의 터전이 되 었고 연세우유의 발전으로 농업개발원 재정은 많은 흑자를 내게 되었다.

  농업개발원의 발전은 고 배민수 목사가 설립한 삼애학원 등 당시 농촌지도자를 육성하던 교육기관의 취 지와 부합되어 그 사업을 승계 시킬 목적으로 1976. 9. 일산 삼애농장 6만평이 연세대학에 기증되고, 1975. 12. 홍은동 농장(1600평), 1981. 원지동 임야 16,650평도 연세대학에 기증되어 그 기초가 된 농업개발원은 여러 농촌지도자 육성기관 의 뜻을 계승하게 되었다.

  이러한 목적과 취지에 의해 제자인 이장우는 서울법대만 4년 내리 도전했다가 실패하자, 농업개발원에 입학을 하게 되었고, 연대는 수석으로 졸업했다는 이유로 원예학 실습지도강사로 체용 되여 행정직원 겸 지도강사로 겸직하면서 12년 동안 농업개발원 및 연세재단의 발전을 위해 헌신해 왔던

  그러나 이 사악한 무리들은 방씨의 사주에 의해 연세우유처리장 뿐 만 아니라 기증된 농장과 수천억의 땅들을 재단으로 강제 이관 된 후, 이관에 동조했던 원장과 과장 등은 부총장, 총무처장, 입학관리처장 등으로 화려한 별 을 달아 주었던 것이다.

  당시 송자총장은 경실련의 시정권고에 대하여 제자 “이장우가 청소원으로 근무했었다 ” 라고 거짓 답 변을 하여 이때부터 법적 소송이 벌어졌고, 법원은 송자의 거짓 답변서 한 장에 의하여 청소원으로 둔갑된 판결만 하고 있다. 결국 송자 때문에 장장 15년 동안 소송과 이장우는 폐인이 되었고, 이장우 가정을 풍비박산 낸 장본인이 송자총장 이었던 것이다.

  연대가 선임한 연대법대 동문회장 최종백 변호사 역시 고충치리 위원장직에 있을 때 대구 미래대학의 사 건을 해결해 주는 대가로 1억 5천만 원을 받아 챙긴 협의로 처벌받은바 있는 최종백변호사는 원고 이장우의 인사카드를 “ 365일 직원들과 똑같이 근무하지만 강사료 지급 ” 이라는 인사카드의 비고 난을 삭제 및 변조한 후, 변조된 인사카드 가 정당하다고 주장 및 장장 15년 동안 법원에 행사한 결과 승소판결을 받아 낸 사실이 비로소 문서감정사의 감정서에 의 하여 입증이 되었다.

  그 뿐인가 연대 신학과 교수이며 교목실장이던 박명철목사는 목사답지 않게 “소 취하를 하지 않으면 총 무처장이 직권면직 시키겠다! 취하를 해야 합의를 할 수 있다!” 라고  소 취하를 하여 것만 만나 주기는커녕 사람 취급도 하지 않았던 박명철 목사는 사람 목숨을 구조하는 신촌 세브란스병원 원목으로 승진되어 가 있다. 삼애농장을 강 탈한 비리를 은폐시키기 위해 제자인 이장우를 희생양을 삼아 자진 사퇴 및 자살을 하도록 유도했고, 그런 제자인 이장우 는 정신쇼크로 수차 정신병원에 입원과 알코올 중독자까지 되기도 하였고, 근무 중 사고로 계단에서 굴러 떨어져 뇌출혈 로 대수술을 하였으나, 연대는 직무상 요양신청도 해주지 아니하였으며, 세브란스병원은 한 달 입원비를 내지 아니하였다 고 강제로 퇴원시켜 버렸고, 그 후 응급실에 실려 갔으나 입원을 해주지 아니하여 타 병원의 정신과 병동에 입원 중에 있다.

  농촌지도자 양성을 위해 기증하고, 땅을 사랑하는 정신을 즉 자연을 사랑하는 정신을 연세교육정신에 길이고 자 했던 용재 백낙준 박사의 정신을 져버리고 제자인 이장우가 헌신을 다해 가꾸어 놓은 우리나라 최초의 과수실습농장을 이 자들든 싹둑 잘라 버린 후 무단히 농장을 폐교한 후 체육관을 설립하기위해 용도 변경하게 되었고, 이런 비리를 폭로 할 제자를 자진사퇴 시키고자 온 갗 거짓말로 제자요 직원이던 이장우에게 정신과 육체를 학대해 거의 23여년 동안 언어진 것은 정신과 병원에 입원과 진단서 뿐이다.

  그러나 일찍이 연세비리를 침묵할 수 없었던 이장우의 처 조관순은 연세 다윗과 골리랏는 싸움이라는 소리를 들으면서 연세진리를 바로 세우고자 15년째 투쟁을 해오게 되었으며, 하나님의 은총으로 그는 이 시대의 유관순이라고 불리만큼 시민운동에 대변화를 주도해 오게 되었다. 이에 우리 연세진리 바로세우기운동본부는 더 이상 진리를 말살하고, 거짓이 판치는 세상을 만들어 버린 비양심 교육자, 비 양심 인격자가 진리전당 연세를 거짓전당을 만들지 못하도록 우리 시민과 연세구성원들이 나서서 바로잡아야 할 것이며, 역사 왜곡은 물론 인사비리로 얼룩진 연대, 소수의 사람들에 의해 좌지우지 운영되는 재정관리 투명성을 위해 시민이 참여하는 연세재단이 되도록, 진정 이 시대에 겉 맞는 진리와 자유가 존재하는 연세대학이 되도록 노력을 아끼지 않을 것임을 천명하며, 아래와 같이 연세재단에 촉구한다.



1. 연세진리 팔아먹는 재단이사장 방우영은 자진 사퇴하라.


2. 용재 백낙준박사 정신과 업적을 누락한 전 송자총장은 즉시 연세 인들에게 사과하고, 역사왜곡을 정정하라!

3. 연대 전 총장 송자는 양심이 있다면 자진하여 연세재단 감사직에서 사임하라!

4. 사기 소 취하로 한 가정을 파시킨 세브란스 원목 박명철목사는 자진하여 사퇴하라 !

5. 연대 재단은 연세발전에 기여한 농개원 출신자 및 교수들에게 즉시 포상과 재단 이사로 임명하라.

6. 검찰은 연대역사 왜곡과 교육법을 위반한 재단이사장과 전 송자총장을 즉시 기소하라.

7. 교육인적자원부장관은 설립취지와 목적을 위반한 연세재단에 즉시 사학지원금을 중지하라.

8. 한 푼도 투자한바 없고, 연세 진리와 자유만 팔아먹는 재단 이사장 방우영 퇴출 운동에 연세인들은 적극 동참하라 .

9. 연대는 제자 상대로 소송사기를 즉시 중지하고, 연세발전의 공로자이며, 28년 장기근속자 이장우에게 죽기전에 제자 이장우를 구조하라.

2004. 5. 15

 가칭) 연세대 역사바로세우기운동본부

참가단체 : 홍익대 역사바로세우기운동본부, 정신개혁시민협의회, 사법정의국민연대,

 공권력피해구조연맹. 공동체의 식개혁시민협의회,  활빈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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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세대의 도덕적 현주소, 연세인은 아는가!!

소송사기로 한 가정 무너뜨린 연세대, 무엇이 지성인가!

거짓말로 한 가정의 희망을 꺾어 버린 박명철 목사. 그는 지금도 연세대 교목실장으로 존경받는 위치에 있다.

연세대의 도덕적 현주소를 연세인은 아는가!

1. 무엇이 잘못되었는가!

연세대학교는 연세대 부속 농업개발원 낙농학과 및 원예학과를 수석 졸업한 이장우씨를 직원으로 채용하고 12년간 실 습지도강사겸 부사무장으로 임명하여 농장을 관리토록 하다가 1989년 3월 2일 갑자기 이장우씨를 부당 전직 발령하였다. 이장우씨가 사무직이 아니라, 일용직이었다는 주장을 하기 시작한 것이다.

- 임 명 장 -

1997년 9월 16일 추석날 이장우씨는 연세대 중앙도서관 체크포인트에서 경비 근무하다가 굴러 떨어져 뇌진탕이 되었 다. 그러나 연세대는 수술을 해주지도 아니하고 약물치료만 한 뒤 퇴원시켜 버렸다.

 연세세브란스병원 진단과는 달리 이장우씨의 뇌가 사고로 인해 심각한 상태였었다. 이장우씨는 다시 쓰러져 1999년 11월 19일 결국 뇌수술을 받아야 했다. 그리고 학교 측은 입원비를 내지 않는다고 이장우를 한 달 만에 강제 퇴원 시켜 버렸다.

- 강제 퇴원되어 버린 이장우씨 -

이에 이장우씨와 그의 처는 억울함을 호소하였으나 연세대가 그 조차 무시하므로 그러나 이럴 수가 있는가! 연세대는 이장우씨와 관련된 서류를 위조하여 이장우씨를 패소시키려다가 들키고, 이에 재판부는 이장우 손을 들어주었다.

 그러자, 연세대는 박명철 교목실장을 앞세워 연세대가 손해보상을 해주겠다며 박목사를 통해 소송을 취하하고 대화로 풀자고 제의해와 이장우씨가 소 취하하니 보상은커녕 대화조차 거부해 버렸다.

이장우씨 가족은 막대한 치료비 부담을 안고 서서히 무너져야만 했다.

2. 진실이 두려운 박명철 목사(연세대 교목실장)

박명철 목사가 두려워하는 진실은 무엇인가!

■ 이장우씨가 연세대 부속 농업개발원 실습지도 강사 겸 부사무장이었으나 부당 전직발령으로 용원직으로 전락시켜 버린 사실
■ 재판상 패소 결정되자 박명철 목사는 소 취하를 하지 않으면 해고시키겠다고 하더라며 이장우씨 가족을 공포에 떨게 한 사실
■ 이장우씨에게 거짓말로 충분한 합의가 될 것처럼 믿게 하여 이장우씨 가족으로 하여금 소송을 취하하게 한 사실
■ 현재 재개된 이장우씨와 연세대 사이의 소송에서 본인의 거짓말이 드러날 것이 두려워 법원 증인출석 요구를 이유 없이 회피, 마침내 강제구인 소환장을 받게 된 사실

3. 박명철 목사는 진실을 밝혀야만 한다.

박명철 목사는 거짓된 가면의 탈을 벗고 한 인간의 진실 된 모습으로 돌아가 법정에 서서 사실을 증언해야만 한다. 그렇지 않고서야 어떻게 하나님의 말씀을 전할 수 있단 말인가.

4. 연세인 여러분께 알리고 싶은 말씀

피해자 가족의 소망은 한가지뿐입니다. 재판정에서 진실이 밝혀져 명예가 회복되고 예전의 가정을 찾는 것입니 다.

연세인 여러분!

 특히 연세대학은 창립자의 취지를 받들어 자유와 정의, 진실이 지켜져야 합니다. 여러분의 시민단체인 '전국공 권력피해자연맹'은 연세인 여러분과 기독교인 여러분께 다음과 같이 호소합니다.

1. 연세대학교 교목실장인 박명 철 목사가 법정에 서서 사실 증언할 것을 촉구하여 주십시오.

1. 이 땅에 더 이상 비리와 거짓이 힘없는 자를 짓밟아서는 안 된다는 것을 외쳐 주십시오.

전국공권력피해자연맹

 

........................................................................................................................................


사법 피해자들의 호소문

 “ 법원과 검찰은 연세재단의 비리에 희생당한 제자이자 직원인 이장우 사건에 대한 실체적 진실을 규명하라 ! ” 

사건 2004나 62742 부당이득금반환
원고 이장우
피고 학교법인 연서대학교 이사장 방우영

 이장우는 연세대학교 부설 농업개발원을 우수한 성적으로 졸업하고 1977년3월 신영오 농업개발원장에 의해 농 업개발원 사무직원으로 채용되어 농촌지도자를 육성하기 위한 사무, 연구, 개발 및 실습지도 등1인4역의 근로를 성실히 제공하였다. 그러나 12년 만에 용원직으로 강등, 전직발령을 받게 되어 소송을 하게 되었습니다.

  이장우씨는 “1977년도부터 12년 동안이나 사무직으로 근무했었다는 사실을 밝히기 위해 참으로 오랫동 안 재판을 하고 있습니다. 상식적으로 판단해 보십시오! 12년 동안이나 용원으로 근무했던 자가, “ 12년 동안 사무직으 로 근무했었다고 ”라고 주장하면서 15년 이상이나 연세대학을 상대로 재판을 할 수 있는지를 !

  그를 연세대학 부설 농업개발원의 실습조교로 발탁했던 전 농업개발원 원장 신영오교수가 “ 사무직으로 근무했었다” 는 사실을 확인하는 사실 확인서를 작성하여 공증해주시는 일을 두 번이나 되풀이하였고, 그리고 직접 재판 정에 나와서 증언해 주셨는데, 재판부가 그분의 증인신문조서를 연세대학 측에 유리하도록 기록해 놓았다는 것이 이장우 측의 주장입니다.

  이장우씨가 12년 동안이나 사무직으로 근무했던 것이 사실인 이상 연세대학이 사실을 바꿀 수 없습니다. 연세대학이 승소하는 방법은 소송사기를 계속하는 방법뿐입니다.

  이장우측에서 진실을 규명하고야 말겠다고 하면서 청구취지를 바꾸어 가면서 재판을 청구하는 일을 계속 한다면, 연세대학 측에서는 소송사기를 끝도 없이 계속하는 수밖에 없습니다. 재판이 걸릴 때마다 소송사기를 계속해야, 연세대학은 이장우씨가 용원직으로 근무했었다는 판결을 받아낼 수 있는 일인데, 그러한 판결이 아장우씨의 패배와 연세 대학의 승리를 의미하는 것이며, 법원이 정당한 직무수행을 의미하는 것입니까?

  연세대학이 진실과 사실관계를 모를 리가 없는 일이라면, 연세대학이 믿고 있는 것은 도대체 무엇입니까 ?

  “대한민국의 법원이 연세대학을 위해 진실을 왜곡하는 재판을 끝도 없이 계속해줄것!” 이라는 믿음이 없다면, 연세대학이 이장우씨를 그런 식으로 대접하지는 못할 것입니다.

  이장우씨가 용원직으로 근무했는지, 사무직으로 근무했는지에 초점을 맞춰놓고 생각하면, 이장우 사건은 지극히 사소한 문제에 지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이장우 사건으로 인해, 대한민국의 법원과 명문사학이 추구하 고자 하는 것은 충분히 점칠 수 있는 일이라면, 그것은 결코 사소한 문제가 아닙니다.

  이장우씨의 고발이 그런 것이라면, 그런 음모가 더 이상 진행되기 전에 한시 바삐 바로 잡아야합니 다.

  “진실을 규명하고야 말겠다.” 는 피해자의 의자가 분명해서, 고소와 재판이 끝 질기게 계속되는 사법 비리사건에서, “사소한 문제, 대수롭지 않는 사건 ”은 결코 없습니다.

  제각각의 사법비리사건들이 모두 법원과 검찰, 그리고 대한민국 사회정의의 의지와 자세로 귀착된다는 사실을 대한민국의 사회정의가 끝끝내 간과해 버리고 말겠다고 하면 대한민국의 미래는 없습니다.

  분명히, 모든 길은 진실로 통하는 법인데, “ 사무직으로 근무했었다가 ”가 이장우씨의 진실이라면, 이 장우 사건에서 연세대학의 진실은 무엇입니까 ? 그것을 규명하지 않고 사기소송이 계속되도록 방치하는 것이야말로 대한 민국을 위하는 길입니까?

  모든 사법비리피해자들이 한 목소리가 되어, 대한민국의 법원과 검찰의 의지, 그리고 대한민국에 공감대 가 형성될 것이라고 확신합니다.

법치주의와 민주주의의 근본은 법입니다. 때문에 검찰이나 법원의 의지와 가치관은 대한민국의 가치관으로 나타날 수 밖에 없는 일입니다. 그런데도 명문사학이 법원을 믿고 사기소송을 고집(?)하는 것을 이대로 방치해야만 하는 것인지를 법원장님께 묻고 싶습니다.

  범국민적인 차원에서 지극히 사소한 문제를 갖고 검찰과 법원의 의지를 검토하는 일을 시작한다면, 대한 민국의 사법정의 사회정의는 바로 세워질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말씀드리면서 제발 법과 양심에 의해 공정한 판결을 하여 주시길 촉구합니다.


 

2006. 10.

공권력피해구조연맹
법조피해자 일동

 

 


 
기사입력: 2007/03/31 [12:43]  최종편집: ⓒ yeslaw.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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