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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윗이 골리앗'방우영'양심에 제2의 석궁 겨눴다
사법연대 기사입력  2012/02/24 [07:19]
 
 도둑넘은 법보다 몽둥이가 약

 신임 정갑영총장을 면담하려고 하였으나, 정총장은 면담을 거절하고, 총무처 직원이 나와서 '법대로 하라' 라고, 그럴것을 계산해 흥분한 다윗은 계란을 정문 창문을 향해  던졌다,
 
그리고 유리창문을 몽둥이로 깨부수려고 하였으나 저지 당해 했다. 그러나 2차 작전으로 이젠 연세대 전신인 '제중원' 을 향해, ' 제중원' 에 누워 있는 남편을 구조하기 위해
'연세인들은 깨어나라' 를 외칠 것이라고.............
 


법대로 하라고 외치는 골리앗 똘만이, 다윗은 어떤 무기로 '몽둥이 법' 을 통과 할지 귀추가 주목되고 있다.
 
자우지간 다윗은 도둑넘 조선일보 방우영과는 지금은 전쟁 중.. 
▲     © 사법연대
 
대화도 못하는 정총장을 향해 정보과 형사는 너무 한다고 생각했는지 연세대 총장 공관을 향해 쬐려보고 있다. 독립군들도 어이가 없어 멍하니 바라 보아야 했다. 철부지 신이입생 아이들은 도둑넘에게 집 뺏긴 줄도 모르고 손잡고 놀고 있다.


시민단체 대표 '방우영' 양심 향해 제2의 석궁 겨눴다! 
 
세브란스 병원에 누워있는 남편을 대신해 '석궁' 들겠다고 하는 사연
 
 
인터넷뉴스 신문고 추광규 기자 
 
 
"확실하게 죽여주시던지, 아니면 다시금 갔다 버려 주던지, 아니면 그동안의 만행을 온 국민들에게 사죄하고 남편을 살려 주던지, 귀 대학이 선택해 주길 바랍니다.”
 

한 시민단체 대표가 지난 2월 16일(목) 연세대학교 재단과 대학, 병원에 마지막으로 보낸 최후 통고서에 담겨진 내용의 일부이다. 주인공은 공권력피해자연맹 공동대표이자, 사법정의국민연대 조남숙 집행위원장.
 
조남숙 공동대표와 연세대와의 악연은 어떻게 시작 되었나!
 
조남숙 공권력피해자연맹 공동대표와 연세대와의 악연은 1989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조 대표와 지난 1977년 결혼한 그의 남편 이장우(63세)는 결혼과 동시에 연세대 부속농업개발원 낙농학과와 원예학과를 수석 졸업한 후 실습지도강사로 채용되어 12년 동안 실습지도 강사 겸 사무직원으로 연세대에서 근무하게 된다.  
 
▲ 연세대 방우영 이사장의 양심을 향해 제2의 석궁을 겨눴다는 조남숙 사법정의국민연대 조남숙 집행위원장     ©추광규
학교 측은 1991년 농업개발원 폐원에 앞서 구조조정의 일환으로 1989년 3월 2일 이장우 씨를 인사발령 했다. 삼애농장 부사무장을 거쳐, '덕소 농장' 사무장보로 근무하던 이장우 씨를 연세대 본교의 용원 직으로 강제전직 발령한 것.
 
이 같은 학교 측의 처사에 이 씨는 강하게 반발했다. 소송 기록 등에 따르면 당시 이장우 씨는 “나는 학생들에게 강의까지 한 정식 강사였는데, 학교 측은 용원직 신분으로 급여를 지급했다.”,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으니 더 이상 진실을 은폐하지 말고 연세대 재단은 자신들의 잘못을 인정하고 나에 대한 당시 신분을 인정 해 달라”고 요구했었다.
 
또한 남편을 대신해 조남숙 대표가 인사발령에 대한 부당성을 진정하자, 경실련과 연세춘추사가 시정을 요구하는 보도를 하기 까지에 이르렀지만, 당시 송자 총장은 “(이 씨의 신분이)교직원이 아닌 일용잡급직 이었다. 연세대는 실습지도강사와 일용잡급직을 같이 대우한다.”며 조 대표의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자, 연세대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 했었다.
 
소송과 관련해 조 대표는 “학교 측은 법대 동문회장인 최종백 변호사를 선임한 후 남편의 직급을 허위 조작한 사람을 증인으로 내세워 위증토록 하였고, 인사카드를 변조하여 제출하는 등의 수법으로 승소판결을 받아냈다. 이에 인사카드 변조에 대해 고소를 하자 검찰은 인사카드가 변조된 것은 사실이나 변조한 자가 누구인지 알 수 없다며 무혐의 처분을 내렸다. 그리고 법원 또한 최종 상고심까지 학교 측의 손을 들어줬다.”고 주장하고 있다.
 
학교에서 근무 중 다쳤는데도 업무상 재해 인정하지 않은 것은
 
소송이 진행되던 도중 남편 이장우 씨는 1997년 9월 16일 연세대 중앙도서관에서 체크포인트에 올라갔다가 계단에서 굴러 떨어져 세브란스병원 응급실에 실려 가는 사고가 발생했다. 당시 뇌진탕을 일으켰던 것인데, 병원 측은 수술을 하지 않고 3개월 동안 약물치료만 하다가 퇴원시켰다. 
 
이상이 없어 퇴원 시켰다는 세브란스 병원 의사의 말과는 달리 두통이 계속되자 그는 연희정신과의원에 2달 동안 입원해 요양했지만 차도가 없었다. 이에 ‘동서 한방병원’으로 옮겼고 검사를 다시 실시하면서 병명이 확진되었다. ‘외상에 의한 뇌진탕’으로 인해 두통이 계속되었다는 것. 
 
병원 측은 “뇌 수술할 환자를 왜 수술도 안하고 퇴원 했느냐”라면서 오히려 환자와 그 가족들을 나무라기까지 했다고. 하지만 당시 확진에도 불구하고 수술은 병원비 때문에 뒤로 미뤄져야만 했다. 
 
조남숙 대표는 당시 상황과 관련해 “그 후 부당전직에 대한 소송을 다시 진행, 1998년 2월 20일 법원으로부터 승소 판결을 받았다. 그러자 연세대는 박명철 교목실장을 통해 남편의 복직과 부당 전직에 대한 합의를 약속하며 소송 취하를 회유 했다. 만약 소송을 취하하지 않으면 남편을 해직시켜 버리겠다고 협박했다. 당시 저는 명색이 교목실장이 거짓말을 하지는 않을 것이라 믿고 소송을 취하했지만 학교 측은 당초 약속과는 달리 그 같은 합의 내용을 이행하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상황이 이렇게 전개되자 1998년 조 대표는 불공정한 법원의 판결과 계속되는 연세대의 탄압을 경험으로 ‘나처럼 공권력에 의해 탄압을 받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겠는가!’라고 생각되어 이들 피해자들의 힘을 모아 공권력에 대항하겠다는 취지로 ‘전국공권력피해자연맹’을 창립 했다고.
 
남편 이 씨의 상태는 더욱 나빠져 뇌출혈로 인한 후유증으로 인해 갑자기 졸도하기에 까지 이르렀다. 상태가 나빠지자 다시 세브란스병원에 입원한 후 검사를 한 결과 1999년 2월 1일 이번에는 병명이 ‘간질’이라는 진단을 받게 된다. 
 
한편 이처럼 이장우 씨가 처절하게 투병중인 상황에서도 그를 징계 처리하는 상황이 벌어졌다. 연세대측은 이장우 씨가 1999년 2월 14일 부터 27일까지만 결근계를 제출한 것으로 기재한 후 1999년 2월 1일 부터 1999년 2월 12일 까지는 무단결근을 한 것으로 처리한 후 3개월 정직과 2/3 감봉처분을 했던 것.
 
1999년 이장우 씨의 학교 측의 징계와 관련 조 대표는 “총무처 이 아무개 처장은 자신이 남편의 인사고과를 허위보고를 한 사실이 있어 만약 내가 승소할 경우 자신과 부총장 강영희는 징계를 당해야만 할 처지에 있어 이 같이 허위로 서류를 조작해 징계를 강행 처리 했다.”고 주장하고 있다. 
 
또 이 같은 부당 징계의 충격으로 자신의 남편은 다시금 뇌출혈이 발생해 긴급히 1999년 11월 19일 세브란스병원에 입원해 검사한 결과 ‘지주막하출혈’이라는 병명으로 뇌수술을 받아야만 했으나, 병원 측은 입원비를 내지 않는다는 이유를 들어 입원 40여일 만인 같은 해 12월 29일 조 대표의 숙소로 휠체어 탄 이 씨를 그대로 내다 버렸다는 것.
 
 
▲ 지난 1999년 12월 29일 입원중이던 이장우씨에 대해 세브란스 병원측은 병원비들이 밀렸다는 이유로 수술이 불가피 함에도 강제로 퇴원시킨 후 응급차를 이용해 조남숙 대표 사무실에 휠체어 탄 이 씨를 내려놓고 가버렸다. 이미지는 그 직후 무렵의 사진이다.    © 조남숙 대표 제공    


소송할 때 마다 패소 했던 데는 이유가 있었다
 

조남숙 대표는 연세대의 부당한 인사발령에 대해 소송을 제기 해 보았지만, 당시 부총장이자 이 씨의 스승인 강영희 농업개발원 원장의 처조카인 전 대법관 김용담이 서울고법 부장판사로서 이 사건을 담당했으며, 김용담은 고의적으로 농업개발원 위임전결규정 제2장 직제 제4조의 3항의 규정 즉, “각 실습농장에는 1인의 사무자 외에 목부, 잡부 등 필요한 인원을 둘 수 있다.”는 내용 중에서, ‘사무자’라는 부분에 동그라미를 하나 덧붙여 ‘사무장’이라고 위조판결을 했다는 것.
 
위의 규정을 있는 그대로 해석할 경우, 이장우는 이미 사무자로 채용되어 사무직급의 직원으로 재직하고 있었으며, 그로 인해 일산 삼애농장 부사무장으로 보직 발령을 받게 된 것이기에 원고의 청구를 기각시킬 수 없었다는 것.
 
또한, 이장우 씨의 신분과 관련해 가장 핵심적인 증거물중의 하나인 1996년 4. 경 농업개발원 ‘위임전결 규정’을 연세대측이 고의적으로 변조해 제출함으로서 패소한 사건이 있는데 이는 당시 사건 재판부와 밀접한 관계에 있던 김용담 전 대법관의 영향력 때문 이었다는 게 그 주장의 핵심중 하나다.  
 
조남숙 대표는 이 같은 친인척 관계에 대해 지난 2010년 6월 경 알게 되었다며, 사건이 불거진 지 17년 만인 지난 2010년 12월경 연세대와 김용담 전대법관 상대로 소장을 제출했었다. 이 재판에서 조 대표는 피고 연세대를 상대로 농업개발원 ‘위임전결 규정’을 제출하도록 요구해 지난해 9월경 제출된 결과 조 대표의 주장이 사실로 밝혀지기도 했다. 
 
연세대는 황 아무개 인사관리처장을 증인으로 내세워 ‘이장우가 사무직원이 아니라 단순잡급직으로 근무했다’고 증언한바 있으나 이는 명백한 허위라는 게 조 대표의 주장이다.
 
즉 남편 이 씨의 인사카드를 살펴보면 이장우 씨의 인사카드의 비고란에 “직원이라기 보다는 강사. (365일 직원들과 똑같이 근무하지만 강사료로 지급)”란 문구에서 알 수 있듯이 정직원이었다는 것. 하지만 연세대는 소송 증거물로 이 씨의 인사카드를 제출한바 있는데 당시 학교 측은 이 같은 내용을 삭제한 인사카드를 법원에 제출하여 재판부를 기망하였다며 학교 측이 소송사기를 한 것 이라고 억울함을 호소하고 있는 것.
 
조 대표는 “연세대는 남편을 ‘삼애실습농장 부사무장’으로 임명한 것은 농업개발원 강영희 원장 멋대로 발령한 것이라 학교책임이 없다는 주장과 관련해 피고인 연세대 측에 대해 ‘직제규정을 제출하라’고 신청했고 법원이 이를 받아들여 제출명령까지 했으나 아직까지 직제규정을 제출하지 못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즉 그동안 연세대는 이장우 씨의 인사권을 행사하지 않았다고 주장함으로서 책임을 회피했지만 사실은 ‘직제규정’에 적시되어 있는바 처럼 ‘농업개발원’에서 단독으로 인사권을 가지고 있지 않았고 연세대가  농업개발원 원장에게 위임해 강영희 원장 명의로 1981. 3. 2. 부사무장 임명받은 이때부터 ‘정직원’이라는 점이 인정 되어야만 한다는 것이다. 
 
▲  연세대는 소송 증거물로 우측의 사본을 제출했다. 좌측의 원본에는 하단 비고란에 이장우씨의 정직원 여부를 가늠할 수 있는 문구가 적혀 있었음에도 이를 고의적으로 삭제한 후 재판부에 제출한바 있다.  © 조남숙 대표 제공


실제 이장우 씨를 직접 채용했던 농업개발원 3대 원장 신영오 교수는 매 사건마다 증인으로 출석해 ‘원고를 실습지도 강사 겸 행정직원을 채용했다’고 증언하고 있다. 이 뿐 아니라 동료 직원 3명도 같은 취지의 증언을 했다. 
 
조남숙 대표는 남편에 대한 부당한 처분의 단초에 대해 “방우영 이사장이 연세대를 사유화하기 위하여 자신의 사람으로 교직원을 갈아 치우는 과정에서 발생한 일이며, 재단 내 인사와 관련 자신의 사람으로 교체하는 과정에서 남편을 희생양으로 삼은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실제 방우영 이사장은 지난해 10월 27일 연세대 정관을 개정한바 있다. 이 같은 정관 개정에 대해 교육과학기술부는 신청한지 불과 4일 만에 이를 승인했다. 이와 관련 기독교계는 물론 연세대 창립자의 증손자인 피터 A 언더우드(한국명 원한석)씨까지 정관 개정 반대에 대한 성명서를 발표한바 있다. 재단 사유화에 대한 우려 때문이었다.
 
30년 만에 연세대 농업개발원 동문회가 발족되면서 이장우 씨에 대한 대학 측의 탄압 사실이 알려지자 동문회에서 지난 1월 10일 이장우 씨 구명운동에 나서 학교 측에 청원서를 제출하기도 했다.
 
동문회는 이 청원서에서 “농업개발원 수석졸업자이자 23년 동안 장기근속을 하였으며 더더욱 근무하다 다친 사고로 장기간 정신과병원에 입원해 있는 점 등을 널리 살피시어 법 이전에 귀 모교 설립정신에 입각해 원만한 합의가 있어주길 거듭 부탁드린다”며 자신들의 견해를 밝혔다. 
 
한편 조남숙 대표는 "지난 2010년 또 다시 소장을 제출했음에도 법원이 나서서 조정을 하도록 하지 않고 방관하고 있음은 물로 재해 사건에 대해 다시금 엉터리로 기각해  더 이상 법원을 믿을 수가 없다고 판단"했다"면서, "방 이사장을 상대로 직접 전쟁을 함으로서 사법부 부패와 방 이사장의 파렴치함을 알리기 위한 목적으로 남편을 14년 만에 다시금 세브란스병원에 입원시킨 것"이라고 설명했다.
 
조 대표는 그런 와중에 방 이사장이 날치기 이사회 결의로 재선임이 되었다면서 남편을 대신해 자신이 석궁을 들고 방 이사장 심장을 향해 정 조준 하는데 탄력을 받게 되었다고 주장 하기도 했다.
 
조남숙 대표는 끝으로 “부디 남편을 확실하게 죽여주시던지, 아니면 또 다시 갔다 버려 주던지, 그게 아니라면 그동안의 만행을 온 국민들에게 사죄하고 남편을 살려 주던지, 귀 대학이 선택해 주길 바랍니다.”며 학교 측에 지난 2월 16일(목)자로 최후 통고서를 보냈던 것.
 
조남숙 대표는 “만약 또 다시 학교 측에서 사무실 한편에 마련된 숙소로 남편을 내다버릴 경우에는 더 이상 선택의 여지가 없이 누군가 한 사람은 죽어야 해결될 일.”이라면서, “휠체어 탄 남편을 앞세워 연세대와 조선일보 앞에서 시위를 벌인 뒤 투신자살을 하겠다”고 말하는 등 극단적인 발언까지 서슴지 않고 있다. 
 
 

 

- 국내최초 평생교육원..'연세대 부설 교육기관'
  ‘농업개발원’은 어떻게 해서 사라졌나! 
 
지난 1991년 폐원된 연세대부설 1년제 ‘농업개발원’은 지난 67년 설립된 국내 유일의 농업전문 평생교육원으로 고졸이상의 학력소지자를 대상으로 낙농원예학 이론을 가르쳐 왔었다.

 
이에 앞서 연세대학 농학부는 1917년 연희전문학교 부설로 출범하여 1959년 연희동에 34,000평의 임야를 구입하고 박대선 박사가 4, 5, 6대 총장으로 재임하던 시절 서울특별시 교육위원회로부터 1967년 연세대학교 부‘농업개발원’을 인가받았다.
 
또 연세우유는 1962년 캐나다로부터 젖소 10마리를 기증 받아 신촌캠퍼스에서 작은 목장으로 출발한 것을 계기로 출발한 후 1967년 3월 연세대학교 농업개발원 부속 실습장으로 우유가공장을 개설해 본격적인 우유 생산에 들어가 연세대 재단 공헌금의 상당부분을 감당했었다. 
 
자신의 전재산을 농업개발원에 기부했던 김주항-애그니스 데이비스 김 부부. 김주항 교수는 1986년 87세로 데이비스 여사는 3년 뒤인 1989년 89세로 세상을 떠났다. 이들 부부는 이승만 프란체스카  부부에 앞서 국내 최초의 서양인 신부를 맞아들인 국제결혼 1호였다. 김 교수가 1927년 도미해 미국 드루대학 유학당시 인연을 맺었던 것.
 
또 데이비스 여사는 유언에서 '내몸의 타고남은 재는 나의 조국이나 다름없이 사랑한 이 땅의 내 시어머니와 남편의 산소(서대문구 홍등동 소재)에 묻어 달라'는 유언을 남기기도 했다. 후손은 양자로 들인 김 모씨 뿐이었다.
 
특히 연세대학이 농업개발원을 설립한 목적은 기독교 정신으로 땅을 사랑하며 우리나라 식생활 향상을 통한 생활개선과 농촌 문화 개발을 위한 농업경영의 이론과 실사를 과학적 방법으로 연구 교수하고 이에 대한 인재를 양성하기 위함이었다.
 
이 같은 농업개발원에 대해 농업발전에 뜻을 가졌던 많은 사람들은 사랑을 퍼부었다. 우리나라 농촌 발전을 위해 헌신한 배민수(1896∼1968년) 목사의 유족들이 지난 1976년 연세대에 기증한 경기도 고양시 중산동 일대 5만6000여 평 부지 위에 있던 삼애농장을 기증했다.
 
또, 1934년 국내 최초로 국제결혼을 했고 평생을 농업발전에 헌신했던 서울여자대학 농학과 고 김주항 교수도 농업개발원 발전에 사용해 달라며 서대문구 홍은동 농장과 과천임야 약 14,000여 평을(1980년 시가 6억원 상당) 1976년 12월경 기증한 바 있다.
 
하지만 이 같은 농업개발원에 대해 연세대 경영논리로만 이를 다뤘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농업개발원 동문들이 지난 1월 10일 이장우씨 사건과 관련 연세대에 보낸 탄원서를 살펴보면 “농업개발원 25년의 200쪽에 보면 학생지도 및 학생활동에도 처리장의 이익금은 전부 농업개발원 실습을 위해 사용한다고 약속 하였으나 귀 대학은 그 이익금의 한 푼도 농업개발원을 위해 지원해준바 없다”고 주장했다.
 
실제 방우영 씨가 연세대 이사로 합류 하면서 부터 연세대는 설립이념보다는 경영논리에 매달린 흔적이 뚜렷하다. 연세우유처리장을 1978. 3. 강제 이관한 것과 관련해 이에 반발하는 농업개발원 학생들에게 연세우유 수익금 전액을 농업개발원을 위해 사용하겠다고 약속했으나, 한 푼도 농업개발원 지원해 주지 않았기 때문.
 
연세대는 농업개발원을 1991년부터 폐원한바 있다. 당시 폐원을 결정하면서 연세대 재단 이사회 측은 최근 4~5년 사이 지원학생이 크게 줄어 현재 340명 정원에 70여명만이 등록해 재정적자가 누적되고 있으며 농업의 대규모화 추세 속에서 1년제 교육이 큰 실효성이 없다는 이유를 들어 폐원 했던 것.
 
이 같은 연세대 측의 결정에 당시 재학생과 동문들은 크게 반발한바 있다. 이들 재학생과 동문들은 ‘지원자의 감소 현상은 정부의 농정실책 때문’이라고 주장하며 반대서명운동을 펼쳐 5,000여명의 서명을 받기도 했었다.
 
이장우 씨의 사건은 바로 이 농업개발원의 폐원과 밀접한 관계가 있다. 원주 캠퍼스에 낙농학과가 신설되므로 인해 농업개발원도 1990년 12월 경 폐원을 하기에 이르렀다. 이 과정에서 이장우 씨는 당초 연세대 정식직원으로 재 채용 되어야만 했으나 대학 측은 이장우 씨에 대해 행정직급에서 관리직급으로 강등발령과 함께 초임호봉을 적용해 발령함으로서 문제가 발생했던 것.
 
조남숙 대표는 그동안 남편의 부당한 인사발령에 항의 하는 과정에서 연세우유처리장 강제 이관과 기증자 뜻을 배신하고 축구장을 만든 일산삼애농장의 비리를 지속적으로 문제 삼은바 있다. 
 
▲고 배민수 목사 부부       
즉 고 배민수 목사는 삼애농장을 기증하면서 우리나라 농업발전을 위해서라는 목적으로 기증 했음에도 방우영 이사장은 자신이 이사로 취임한 뒤 업적을 쌓기 위해 이 같은 기증 취지를 무시하고 6만여 평을 ‘목장’으로 사용하다 축구장으로 만드는 등 오로지 자신의 치적 쌓기에만 골몰했고 이러한 자신의 치부를 가리기 위해 산증인인 자신의 남편 이장우를 제거 하려고 했다는 게 그 주장의 핵심이기도 하다. 
 
이와 관련 조남숙 대표는 “연대이사회가 진실로 연세대 학풍인 ‘진리가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를 지킬 목적이라면 원주캠퍼스에 낙농학과가 신설 되었다 하더라도 농업개발원에 남아 있는 원예학( 채소, 화예, 과수원예)과에 연세우유 수익금 최소한 일부라도 지원해 농업개발원을 운영을 했더라면 식량을 무기로 전쟁을 하고 국제전쟁에서 보다 체계적인 기술습득으로 과실과 원예에 종사하는 분들을 위한 교육의 터전과 농촌발전에 큰 이바지할 기회를 연세대 이사회가 져버린 것”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또한 “결국 백낙준 박사의 농업정신도 기독교정신도 모두 배신한 결과 조 대표가 연세대를 바로 세우겠다는 뜻으로 도전한 결과 23년이 지난 오늘의 항쟁의 결과가 도래 되었다.”면서, “연세대 이사회를 장악한 방우영 재단이사장이 농업개발원 설립목적과 취지를 져버리지 않았다면 남편은 최고의 과수원예 강사로서 전문가로서 연세대에서 가장 필요한 존재가 되었을 것”이라며 자신의 심정을 말했다.

 
▲     ©사법연대
 
▲     ©사법연대
 
 

 
기사입력: 2012/02/24 [07:19]  최종편집: ⓒ yeslaw.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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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일보 손녀' 言 온도차.."MBC 홀로 조명, KBS·SBS·JTBC 조용"
'가정교육'은 필요없다? 알고보니 엘리트 코스 교육 받는 상류층 자녀…
대한의사협회에서 연세의료원 허위 진단서 20년 만에 감정합니다.
조순형 전 의원은 지금 (친일언론 사주 조선일보에 목숨을 건 이유)
특검 김경수 압수수색 놓고 특검-김, 민주-한국 정면대결
응급진료기록 한장으로 서울고법 부장판사 김동오, 최은수 전 부장판사 잡는 법
전 김용담대법관에게 놀아난 최은수 법원장 징계하라
전 행정처장 김용담 앞세워 연세대가 승소하는 법&김용담 전 대법관 28년만에 잡는 법
9년 만에 말문 연 '장자연 동료'…"검찰, 가해자 말만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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