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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결혼한 딸에게 띄우는 엄마의 편지!(딸을 위한 세레나데)
사법연대 기사입력  2014/05/08 [17:19]
국제결혼한 딸에게 띄우는 엄마의 편지!
 
[특별기고] 연세대와의 끝나지 않은 '23년간의 전쟁' 다시 시작이다
 
조남숙 사법정의국민연대 집행위원장 ㅣ   기사입력  2014/05/08 [06:51]
 
 

[신문고뉴스] 조남숙  =
 
연세대를 상대로 한 우리 가족들의 전쟁이야기를 온 국민들에게 알려야만 한다고 하면서 살아 온게 어느덧 23년의 세월이 흘렀다. 오늘은 어버이날이다. 지난 23년을 되돌아보면서 어버이날에 새삼 생각되는 것은 딸 엄마가 얼마나 좋은가라는 점이다.
▲ 연세대의 양심을 향해 제2의 석궁을 겨눴다는 조남숙 사법정의국민연대 집행위원장        © 추광규


엄마들은 늙어 가면서 딸이 친구가 된다고 한다. 시간이 갈수록 그 말이 더 실감이 난다. 목욕탕에 가보면 딸 둘을 데리고 와서 목욕하는 엄마를 보면 그렇게 부러울 수가 없다.
 
작은딸은 엄마 오른쪽 등을 밀고, 큰 딸은 어마 왼쪽 어깨를 밀면서 서로보고 웃는 딸들을 보면 그보다 더 행복한 것이 없어 보인다.
 
그 뿐인가 엄마들은 딸이나 아들이 고등학생이면 엄마도 고등학생 수준이 된다. 자식들과 대화하다 보면 엄마가 배우는 것이 더 많다. 모르면 자식이기 때문에 부끄럼 없이 묻게 되고 배우게 된다. 당연히 대학에 가면 엄마 역시 대학생 수준이 된다.
 
엄마 뒷바라지 성공으로 자식이 박사가 되면 엄마도 박사가 된다. 자식친구들에 의해 당연히 엄마도 박사친구 엄마들하고 어울리게 된다. 그러한 과정을 겪기 때문일까? 부모들은 자식농사에 목숨을 건다는 것도 나는 딸을 시집보낸 후에야 알게 되었다.
 
딸을 앞세워 엄마의 꿈을 이룬다고 하는데 나는 여자이기 때문에 제약을 받았던 여성 시민운동가 내지는 여성정치인이 되길 희망했으나 그런 나의 꿈은 몇 사람 때문에 이루어질 수 없었다. 다만 그 같은 엄마의 희망 때문인지 딸은 동대문 야간 시장에서 점원 일을 하면서 대학을 다녔다. 이후 조교로 근무하면서 열심히 대학을 잘 다녔다.
 

그런 꿈과 자랑으로 우리 가족들은 당당히 200평 대저택에 살면서 아이들은 월 100만원씩이 렌스비가 드는 쇼트랙선수 훈련을 받으면서 살았음에도 같은 동네 지하 월세방에서 살았다.
지하방이었던 관계로 장맛비에 홍수 피해를 입어 온갖 살림살이에 곰팡이가 피어 엉망진창 이었다. 그해에 서울시로부터 보상금 50만원을 받았는데, 지금도 그 돈이 얼마나 고맙고 요긴하게 썼는지 모른다. 이때문에 당시 서울시장이었던 고건 이라는 이름을 지금도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다.
 
그래도 법은 있으려니 하고, 멀지 않은 시기에 나의 진실이 인정받게 되려니 하고 아무런 부끄럼 없이 연세대 옆 연희동에서 살았다. 그뿐인가 도둑을 잡으려면 도둑 소굴에 들어가야만 된다고 하면서 연세대 사회교육원 자원봉사학과 1기생으로 입학을 했었다. 입학을 하고 보니 남편과 함께 근무했던 선생님이 과장으로 근무하고 있었다.
 
그런 분위기 속에서도 당당하게 공부를 하고 무사히 졸업까지 했다. 나의 이런 행동에 연세대 사무처는 우려도 하면서 한편으로 즐기고 있는 듯 했다. 그러나 그때까지만 해도 재정적 능력이 있었기 때문에 연세대를 상대로 법적소송을 하면서도 학교 앞마당에서 공부를 하기도 하고 어느 정도 마음의 여유를 가지고 있었다. 
 
남편은 방통대 농대에 입학했지만 병 때문에 여의치 않아 3년여 동안 내가 대신 학교를 다녀야만 했다. 이 때문에 방통대 동문들은 열녀문을 세워줘야 한다고 말했다. 실의에 빠져있는 아빠의 기를 세워주기 위해 자식들을 방통대 행사 때마다 데리고 다니면서 아빠의 실패에 대해 아이들이 크게 걱정하지 않게 하려 했다.
 
그러나 부동산을 담보대출 받아 생계를 꾸려가면서 10년동안 투쟁을 하다보니 점점 위축되고 2000년도에는 결국 지하방에서 살아야 하는 형편이 되고 말았다. 그런 환경 탓에 1998. 2. 20. 승소결정문을 받게 되는 기회가 왔으나, 경제적 어려움 때문에 그만 적당히 합의를 보는 쪽으로 가다보니 다시 연세대에게 사기를 당하는 피해를 보게 되었다.
 
 

 아이들은 대학을 가야할 형편에 있는데 재산마저 다 경매로 넘어가고 지하 월세방에서 살다보니 딸은 더 이상 엄마도 믿을 수 없다고 판단했는지, 엄마에게 의논도 없이 국제결혼을 하기로 했다고 한다.
 
말리는 엄마에게 딸은 “엄마는 절대 못이겨요. 그래서 우리 집안을 위해 내가 국제결혼을 하는 겁니다” 라는 딸의 당당한 말에 나는 한말을 잃어버렸다. 어쩌면 딸의 말이 맞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고, 엄마가 확실하게 승소하니까 믿으라고 하기에는 이미 10년의 세월동안 패소한 내가 더 이상 뭐라고 할 말이 없었다.
 
남편은 뇌수술까지 해서 병원에 입원해 있고, 딸은 결혼을 한다고 하고, 재판은 사기를 당해 10년 전에 제출했던 소장을 다시 제출했으나 패소했고, 항소심에서 종결 직전에 있었으나 승소한다는 보장이 없어 아무 말도 못하고 결혼식을 하기로 했으나, 결혼식 할 돈이 부족해 결혼식으로 했다가 약혼식으로 변경해 적당히 식을 2001년 10월 27일 치뤘다.
 
그런 후 한달만에 서울고법에서 합의가 들어 왔다. 즉 미지급 임금만 받고 그만 하자는 거였다. 그러나 나는 이젠 딸마저 미국 갔는데 돈만 받을 수는 없다고 우겨, 준다는 돈도 거절하고, 남편의 명예를 지킨 결과 남편의 명예도 미지급 임금까지도 2002년 2월 패소했다.
 
아들은 군에 있고, 딸은 미국에, 남편은 병원에 있고 보니 나에게 엄마라고 불러주는 사람이 없었다. 길거리에서 호떡 파는 모녀만 봐도 차라리 나도 저 모녀처럼 호떡장사라도 하면 더 행복하겠다는 생각을 했다.
 
딸에게 옷을 보내기 위해 동대문 야간시장을 갔더니 점원들이 엄마 엄마라고 불러주면서 가격을 흥정하자, 나도 모르게 눈물이 핑 돌면서 나도 누가 엄마라고 불러 주면 얼마나 좋을까 하면서 딸을 그리워 했다. 나도 모르게 잠자기 전 딸을 그리며 노래를 부른다.
 
“엄마가 섬 그늘에 굴 따러 가면 애기가 혼자 남아 잠을 자다가 아가가 불러주는 자장 노래에 팔 베고 스스릇 잠이 듭니다.”
 
이 노래 가사가 나의 삶이 되었고 딸의 삶이 되었다. 어제도 너무나 딸이 보고 싶어 전화를 했다. 그러나 막상 하면 할말이 없다. 할 말이 없다보니 늘상 재판 잘하고 있다고 한다. 그러나 딸은 그 얘기도 들은 지가 20년이 넘어서인지 잘 된다는 애기는 그만하라고 한다. 아니 제발 빨리 좀 끝장 보라고 한다.
 
딸의 타박에 나도 모르게 섭섭해 적당히 핑계 되고 짧게 끊었다. 끊고 보니 딸도 지금쯤 울고 있을 것 같았다. 얼마나 엄마가 보고 싶겠는가, 집에 오고 싶어도 잠잘 곳도 없어서 고국에 오지 못하는 딸의 아픔만 깊게 새겨져 온다.
 
 
 
연세대를 상대로 한 우리 가족들의 전쟁이야기를...
 
당연히 세월호 학생들처럼 나는 법을 믿었고, 법대로 되는 세상인줄 알았다. 그들만을 위한 법인줄 알았다면 차라리 소송을 하지 않고, 학교가 요구 하는데로 적당히 근무하다 퇴직하였다면 있는 재산은 날리지 않았을 것이고, 아이들도 아무런 아품 없이 아이들 꿈대로 행복하게 잘 자랐을 것이다.
 
딸의 투정에 더 이상 나도 참을 수가 없어 삭발도 해보고, 남편을 세브란스병원에 갖다 버리기도 하고, 석궁교수 사건의 법정에서 계란을 던져 영화 ‘부러진 화살’로 재탄생 되도록 하는데도 다소나마 기여를 했지만 아직도 나의 도둑 넘들은 꿈쩍을 안한다. 도리 없이 나의 마음을 팔아서라도 도둑 넘들을 잡기로 했다.
 
그런 나의 전쟁을 아직 끝장을 보지 못했는데 미국에 간 딸아이는 어느새 13년이 되었고, 벌써 대령이라는 별을 달고 한국으로 입성한다고 한다. 과연 엄마의 딸이 엄마를 구조해 줄지, 아니면 엄마의 힘으로 그들을 꺾어 널길지 두고 봐야 할 것 같다.
 
 
 
다만 나의 자랑스런 딸이 13년간의 고통의 강을 지나 당당히 멋진 사위와 손자, 손녀2명을 데리고 미국 국적에 육군대령의 별을 달고 인천공항에 입성한다는 것이 엄마를 너무나 행복하게 한다. 
 
그러나 친정 엄마는 내가 분명 성공하리라 기대는 했을 것이나, 가장 어렵게 사는 나를 보고 엄마는 언제나 욕심 부리지 말고 적당히 살라고 하시던 엄마는 지난해 2월달에 저 세상으로 가셨다. 나의 성공을 보여 주지 못했고 무엇 때문에 23년 동안 소송을 해야만 했는지에 대해 이해도 못시켰는데 엄마를 보내고 말았다.
 
더더욱 세월호 유가족을 생각하니 유가족 엄마들 역시 동대문 시장에 갖다가는 나처럼 펑펑 눈물을 흘린 것이 뻔 할 것이고, 호떡장사를 하는 모녀만 봐도 분명 차라리 저렇게 호떡장사를 하면서 살망정 딸이 옆에 있었으면... 딸하고 웃으면서 밥을 먹을 수만 있다면... 하면서 남은 세월을 그렇게 보낼 것은 생각하니 가슴이 저여 온다.
 
세월호 사건이 터져서야 그 안에 감춰져 있던 부정부패가 적나라하게 드러나듯이, 나의 전쟁 이야기를 누가 다 이해를 하겠는가, 지금의 절망에서, 자식들의 희생으로 온통 썩어빠진 이 사회를 바로 세울 수 있도록 하는 희망 닺을 올리는 기회가 된다면 그것만이 가장 큰 위로가 될 것이다.  
 
유가족들에게 무어라고 위로의 글을 드려야 할지 막막하지만 나의 자랑스런 딸이 유가족들의 아품을 조금이라도 위로가 되어 주는 딸이 되도록 노력해 보려고 한다.


 


 
기사입력: 2014/05/08 [17:19]  최종편집: ⓒ yeslaw.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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