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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무신&물들인 군복...사도 판사'김홍섭'
사형선고 받은 죄인들도 판결 승복하고 눈물 흘리게…
사법연대 기사입력  2015/03/06 [21:08]

 

고무신&물들인 군복...사도 판사'김홍섭'

 
[변호사 열전]"길이면 모든 길이 남이 간다 따를 것이 대도라고 방심 말고"
 
김영주 기자
 
 
 
김홍섭 대법원 판사는 고무신을 신고 골덴 바지 차림이나 물감 들인 군복을 입고 덕수궁 돌담길을 걸어 대법원에 출근했습니다. 법원 마크가 달린 관용차를 타지도 않았습니다. 그때 대법원 판사는 몇 명되지 않은 시절 이였습니다.
 
그만큼 청렴하게 살았습니다. 여덟 자매를 공부시키고 ‘사형수의 아버지’로서 죄수들을 위한 종교서적을 사는데 그의 월급을 거의 써 버렸습니다. 그러니 점심 한 끼 사먹지 못하고 날마다 단무지 반찬의 도시락을 들고 다닐 수 밖에 없었습니다.
 

 
최근 16세 지적장애인 여성에 대한 성폭력 대상자가 집행유예 된 사건을 두고 판사의 실명을 거론하며 비판하는 등 논란이 되고 있다. 법사위에 대한 국정감사 기간 중 검찰, 대법원의 피해를 주장하는 사람들에 대해 귀를 기울이기는커녕 국회의원들은 ‘왜 그냥 놔두냐’는 말을 한다.
 
한 고소인이 대법관을 가만두지 않겠다는 협박에 체포조가 결성돼 6개월간 수사를 펼쳤다는 얘기 등 ‘법의 공정성’이 근본부터 흔들리고 있다. 그래도 재판취재를 할라치면 부장판사가 들어설 때 참관인들에게 “모두 일어서세요”라는 구령에 따라 자리에 일어섰다 앉게 하는 것을 보면 아직 ‘사법부의 권위’(?)는 자못 살아있는가 싶다.
 
월간 투데이로우를 창간하면서 ‘이 시대의 변호사’의 코너를 맡아 취재를 하려고 했지만, 여간 어려운 게 아니다. 판단은 주관적이어서, 대상자를 선정하는 게 쉽지 않았다. 그래서 거슬러 올라가기로 했다. 
 
▶  자료사진.  김홍섭 판사  © 편집부
한 시대에 존경받았던 법조인이 있었을까. 그러던 차에 1965년 임종한 지 43년이 되었지만, 법을 공부하는 이에게, 또 종교인이 되려는 이에게, 여러 소시민들에게 기억되고 있는 서울고등법원장을 지낸 김홍섭 판사(1915-1965)를 찾았다. 사람들은 그를 이렇게 표현한다.
 
‘고무신을 신고, 군복물 들인 옷에 도시락을 옆에 끼고 법원에 출근할 정도로 검소한 사도법관’- 수많은 일화들과 철학이 여전히 존경할 수밖에 없는 이유를 일깨운다.
 
김홍섭 판사는 1915년 전북 김제군 원평, 아주 가난한 가정에서 출생하여 원평보통학교를 졸업한 뒤 상점 점원으로 일을 하다가 독학으로 공부를 시작, 1940년 조선변호사시험에 합격했다.
 
이어 해방되던 해, 1945년 10월 서울지방검찰청 검사로 임관했다가 1946년 2월 판사로 자리를 옮겨 서울고등법원 판사 및 부장판사, 광주고등법원장, 서울고등법원장 등을 역임했다.
 
 "내 자신이 법률이란 이름으로 과연 남을 단죄할 수 있겠는가. 남을 단죄하기 위해서는 보다 높은 안목과 지식, 인간에 대한 연구가 있어야 한다"는 종교적 사상을 바탕으로 인간에 대한 사랑과 그것에 기초한 재판철학을 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또 '사람이 사람을 재판할 수 있는지' '재판은 어떤 근거에 의하여 하는지' 근원적인 질문을 본인에게 던지며, 재판하기 전 공정한 재판이 되길 기원했다.그는 판결 후 피고인들에게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부덕한 제가 여러분들에게 이런 판결을 내린 것을 무척 죄송하게 생각합니다. 인간으로 태어나 인간의 한계를 극복하지 못한 제가 여러분들에게 판결을 내리는 것이 합당한지 모르겠습니다. 판결에 불만이 있으시다면 무척 죄송하게 생각하고 용서를 빌겠습니다."이 정도로 인간적으로 대하니 참석한 피고인과 가족들도 김홍섭 판사가 ‘얼마나 양심적으로 재판에 임하는지 피부로 느끼며 감명했다’고 한다.
 
판사의 판결에 따라 어떻게 보면, 사람의 생명 줄이 달려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니, 인간이 인간의 죄를 판단하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지 늘 신중했다. 그래서 관련 일화 중 가장 많이 회자되는 것이 사형수와의 대화이다.
 
판사였던 김홍섭은 어느 해 사형을 언도할 수밖에 없는 죄인을 만난다. 김 판사는 정말 불가피하게 그 죄인에게 사형을 선고한다. 그러나 며칠 후 감옥에 갇혀 있는 사형수를 찾아가서, “미안합니다. 내가 당신의 생명을 빼앗을 권리는 없으나, 법률이 정한 원칙에 따라 불가피하게 사형을 언도할 수밖에 없습니다”하며 사형수에게 용서를 구했다는 것이다.
 
하루는 타고 있던 버스가 불심검문을 받았다. 고무신에 허름한 복장을 한 김 판사 앞에 이른 경찰관이 다짜고짜로 “뭐하는 사람이야?” 하고 물었다. “판사입니다.” “판사는 무슨 판사야? 신분증 내놓아”하고 경찰관이 소리쳤다.
 
그는 알았다는 듯이 신분증을 꺼내 공손히 내주면서 “판사를 판사라고 그러지 뭐라고 하겠습니까?”하고 태연하게 대답했다. 그의 신분증에서 대법원 판사임을 알아본 경관은 얼굴이 사색이 되어 용서를 빌었다고 한다.
 
그래서 공직자들에 대한 비난의 화살이 쏟아질 때면 김홍섭 판사의 ‘청백리’를 떠올리며, 비교한다.1965년 3월16일 임종 시에는 그를 아버지처럼 여겼던 장기수와 사형수들은 '하늘이 무너지는 것' 같은 아픔이라고 표현했다.
 
"먼지는 제가 생겨난 땅으로 돌아가고, 영혼은 그를 주신 천주께로 돌아갈 지니라" 묘지빗돌에는 이와 같은 구절이 새겨져 있다. 또한 그는 죽기 전 의지할 데 없는 사형수들의 묘를 세워주었는데, 바로 김홍섭 판사도 자리를 함께하게 된 경기도 남양주시 별내면 천주교회이다.
 
“그들과 마지막을 함께하고 싶다”는 마지막 바람이었다.김홍섭 판사의 임종이후 많은 사람들이 그를 조문하며 ‘한국의 사도 법관’, ‘한국 법조인의 기둥’, ‘법의 속에 성의를 입은 법관’ 등 칭송을 아끼지 않았다. 또한 '우리는 판사님을 아버님이라고 생각했습니다. 판사님이 세상을 떠나셨다니 믿어지지 않습니다.
 
더 사셔야 할 분인데 이 더럽고 추한 세상에서 살지 말라고 일직 데려가신 것만 같습니다'라는 사형수들의 편지글들이 셀 수없이 전해졌다고 한다.이와 같은 행보에 많은 법조인들이 김홍섭을 그리워하며, 부끄러워하며, 정도를 걷고자 노력하며 살고 있다고 회고한다.
 
어수선한 세상살이 속에 법조계 또한 국민들의 불신과 지탄을 받고 있는 상황이지만, 그 가운데 김홍섭 같은 선자가 있는 것은 영원히 기억할만한 자랑스러움이라고. 친구들은 그가 세상을 떠난 후 "다시는 그런 사람이 나타나지 않을 것이다.
 
김 판사가 처음이자 마지막일 수밖에 없는 현실을 슬퍼해야 할지 기뻐해야 할지 모르겠다"고 술회했다.대법원은 법원조직법이 공포된 1949년 9월26일을 대한민국 사법창립일로 기념하여, 올해가 대한민국 사법 60주년 이란다. 대한민국 사법 60주년을 뒤로 하고 내년부터는 거슬러 가는 역사의 인물을 찾기보다는, 앞으로 우리가 만들어갈 역사에 김홍섭 판사의 뒤를 잇는 제2의 사도법관이 나오기를 진정 기대한다.

또한 법이 인간위에 있는 것이 아니라, 인간이 법위에 있음을 일깨우며, 자기가 옳다고 주장하는 일에는 신념을 굽히지 않는 소신, 흔들리지 않는 마음가짐, 한쪽에 치우치지 않는 중립성, 그리고 재물에 연연해하지 않는 김홍섭 판사의 삶의 청빈함 등은 법조인뿐만 아니라 모든 사람들이 깨우쳐야 할 진리라는 생각이다. 김홍섭 판사는 그가 지은 시「불혹」에서 우리가 가야할 길을 조용히 전하고 있다.

-길이면 모든 길이 남이 간다 따를 것이 대도라고 방심 말고, 협로라고 가릴 탓을 사람이 제간다 하여 저만 옳다 하더라. 천만 길 있다 하되 취할 길은 오직 하나 그 하나 찾자하되 이렁저렁 금일이라 이제서 돌아다보니 그도 한낱 길이네. 본시 길이 없었거니 가고 보면 그게 길을 길 물어 반 세월에 깨고 나니 허송이라 이후 길이니 묻고 앞만 살펴 가리라.-

-기본인권은 법 위에 있고 인류의 공동운명은 민족의 그것보다 크다고 보는 것이 법관으로서의 기본신조이다.                       - 1960.11.13 일기


    기사입력: 2008/12/05 [10:13]  최종편집: ⓒ yeslaw.org

 

 

사형선고 받은 죄인들도 판결 승복하고 눈물 흘리게…

'사도 법관' 김홍섭 탄생 100주년·서거 50주년 추모

장혜진 기자  core@lawtimes.co.kr 입력 : 2015-03-06 오전 9:55:16

글자크기 : 확대 최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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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고법(원장 심상철)은 오는 16일 '사도(使徒)법관' 김홍섭 선생의 탄생 100주년 및 서거 50주년을 맞아 '어느 법관의 삶'이란 이름의 추모행사를 연다. 법원은 이날 오전 10시 서초동 법원종합청사 1층 대회의실에서 다큐멘터리 '어느 법관의 삶-사도가 된 법관, 김홍섭'을 상영하고 최종고 서울대 법대 명예교수가 특별 강연을 할 예정이다. 12일부터 18일까지 법원청사 1층 대회의실 앞에선 선생의 사진, 법복 등 유품 전시회도 열린다. 법률신문은 김홍섭 선생 탄생 100주년을 기념해 선생을 새롭게 조명한다.


[업적]

"하느님의 눈으로 보시면 어느 편이 죄인일는지 알 수 없는 노릇입니다. 불행히 이 사람의 능력이 부족해 여러분을 죄인이라 단언하는 것이니 그 점 이해해 주시기 바랍니다."

1961년 10월, 경주호 납북미수 사건 선고공판이 열린 광주고법 대법정. 1960년 12월 승객들이 타고 있던 여객선 경주호의 선장을 위협해 납북을 기도한 희대의 사건은 국민의 관심을 끌었다. 모두가 숨죽인 조용한 법정에 재판장인 김홍섭 선생의 목소리가 울려퍼졌다. 피고인 3명에게 사형을, 나머지 피고인들에게도 중형을 선고한 그는 머리를 숙인 채 한참 동안 묵념했다. 인생 최악의 비극을 맞은 피고인들었지만 모두들 승복의 뜻으로 머리를 숙이고 눈물을 흘렸다. 재판장이 공판 내내 보여준 신뢰와 정성, 인간적인 배려 덕분이었다. 선생은 앞서 공판기일에선 "불행히 세계관이 달라서 여러분과 나는 자리를 달리하는 것입니다"라고 말한 적 있다. 당시에도 일부 피고인들은 눈물을 흘렸고, 어느 피고인은 자신의 범죄 사실을 순순히 진술했다고 한다.

고 박찬일 변호사는 1965년 법률신문에 쓴 추모글에서 "많은 법정을 다녔지만 이런 광경은 처음이었다"고 회상했다. 박 변호사는 "세상을 뒤흔들던 끔찍한 사건의 피고인들을 앞에 세워넣고 친자식에게 타이르듯 온갖 정성을 다해 그들의 입장을 이해하려 했다"며 "선고날 재판장이 목메여 말문이 막히고, 30여명의 피고인들도 숙연히 머리를 숙이고 눈물을 흘렸다"고 전했다. 중형을 선고받은 피고인들조차 그의 재판을 신뢰하고 승복한 이유다.

법관으로서의 김홍섭 선생은 "재판은 어떠한 근거에 의한 것인가?" "사람이 사람을 재판할 수 있는 것인가?" "(재판이라는) 소중한 임무에 내가 적격한가?"라는 세가지 질문을 늘 가슴에 품고 스스로에게 던졌다고 한다. 법관은 인간에 대한 깊은 이해를 가져야 한다는 것이 그의 철학이었다.

그는 법관도 사람이기 때문에 늘 오판의 위험이라는 불완전성을 벗어날 수 없다고 되새겼다. 법관은 과녁의 중심부를 명중시킬 수 없고, 다만 그 중심부를 얼마나 가깝게 맞힐 수 있을지 기대할 뿐이라는 것이다. 어느 글에서는 "법관은 조사와 판단이 본업무여야 할 것이지만, 그렇다 해서 예후에 대해 관심 갖고 조언할 기회를 갖는 것을 무용의 잡일로 돌려 배척해야 할 것인가"라고 문제를 제기하기도 했다.

'수인(囚人)들의 대부'로 불리기도 한 선생은 사형수들을 직접 찾아가거나 글을 나누며 위로하고 인간적인 교류를 맺기도 했다. 1957년 서울고법 부장판사 재직 때는 교도소에 있던 사형수 허태영과 서신을 주고 받고 그의 대부가 되어준 일화가 대표적이다. 넉넉치 않은 생활 속에서 봉급을 떼어 형편이 어려운 사형수 가족을 돕기도 하고, 형을 살고 있는 이들에게 책을 넣어주기도 했다. 평소 색이 바랜 낡은 군복바지에 장인에게서 받은 정장 윗도리를 줄곧 입고 다녔다는 그는 법관 업무 이외의 사적인 용도로는 관용봉투나 관용종이도 쓰지 않고, 자기 돈으로 산 물품을 사용했을 만큼 검소하고 청렴했다.

추모행사 준비위원장을 맡은 노태악(53·사법연수원 16기) 서울고법 부장판사는 "사도법관에게서 재판에서의 진지함과 겸손함, 사람과 사람 관계에서의 통찰력을 느꼈다"며 "재판에서의 판단은 논리적 선택의 결론 같기도 하지만 그 선택에는 사람에 대한 이해와 사랑이 가장 큰 기준이 돼야 한다는 것을 배웠다"고 말했다. 그는 "모두 판사들이 재판에서 되새기면서 잊지 말아야 할 자세"라고 강조했다.




[남긴 말]

법관이자 독실한 가톨릭 신자(세례명 바오로)인 사도법관 김홍섭 선생은 시와 자연을 사랑하는 예술가적 풍모도 지녔다. 그가 남긴 다양한 기고글과 수필, 시에는 스스로에 대한 치열한 성찰과 인간에 대한 깊은 연민이 배어 있다.

-"생은 누구에게나 대견한 것이다. 간사한 지혜를 부리다가 제 꾀에 걸려 넘어진 자에게도 밉다고만 볼 수 없는 일면이 있겠거든, 어찌할 수 없는 힘에 압도 유린 당한 패배자들 앞에 '좋은 법관'이기 전에 또는 그와 동시에 '친절하고 성실한 인간'이어야겠다고 나는 때때로 생각해 보았다." (법률신문 기고 '한 법관의 심정' 중)

-"이 꽃을 어이 버리랴, 타는 불 속, 아니면 흐르는 물 위 그도 아닌 흙을 파고 묻어보랴/ 차라리 꺾이질 말걸 바람이 유죄려냐/ 꺾이운 꽃 짓밟혔기로니 이 꽃을 차마 버리랴/ 버릴 바 없어 실에 엮어 벽에 꽂아두느라면/ 양춘 삼월 혹연 재생도 하리" (자작시 '꽃 있는 법정')

-"싸리꽃에 정이 있어 뜻이 통한다면 그의 수그러진 고개는 한층 더 수그러질 것이요. 밝은 뺨은 마침내 보랏빛으로 변해져 버릴 것이다. 꽃과 민주주의, 내가 이해하는 민주주의는 이러하다." (수필 '꽃과 민주주의' 중)

-"하루에도 몇번씩이나 '나'와 더불어 반목하고, 상종하고, 회의하고, 절망하고 또 다시 모색하고……어느 하루 '나'와의 대립을 의식함이 없이 지낸 날이 없었다." (수필집 '창세기초' 중)

-"기본인권은 법의 위에 있고 인류의 공동운명은 민족의 그것보다 더 크다고 보는 것은 나의 법관으로서의 기본신조" (1960년 11월 일기 중)
 

[프로필]


1915년 8월 28일 전북 김제군 금산면에서 가난한 농가의 외아들로 태어났다. 보통학교 졸업 뒤 전주의 변호사 사무실 등에서 일하면서 독학으로 공부했다.

 

1939년 니혼대학(日本大學)에 입학해 2년만인 1940년 조선변호사시험에 합격했다. 귀국 이후 가인 김병로 선생과 함께 서울 안국동의 변호사 사무실에서 일했다.

 

광복 뒤인 1945년 서울지검 검사로 임용됐다. 1946년 5월 조선공산당이 당비를 조달할 목적으로 위조지폐를 만들어 시중에 유통시켰다는 죄목으로 기소된 '조선정판사' 위조지폐사건을 담당했다. 같은 해 말 검사직에 회의를 느낀 그는 사임하고 뚝섬에서 농사를 지었다.

 

당시 대법원장이던 김병로의 부름으로 법조계에 복귀해 서울지방법원 판사를 시작으로 서울지방법원 부장판사, 서울고법 부장판사, 전주지법원장, 대법원 판사, 대법관 직무대리, 광주고법원장, 서울고법원장을 지냈다.

 

1965년 3월 16일 간암 투병 끝에 서울 사직동 자택에서 만 50세를 일기로 숨졌다. 저서로는 시집 '무명', 수필집 '무상을 넘어서', '창세기초' 등이 있다.

 

 

 

 


 
기사입력: 2015/03/06 [21:08]  최종편집: ⓒ yeslaw.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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