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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권력피해구조연맹의 발자취
재판 혹은 개판, 그 짜고 치는 ■고스톱■의 청산을 위해
사법개혁국민연대 기사입력  2004/08/16 [13:00]

 

▲     ©

 

 

 

 

 

 

 

 

 

 

 

 

 

 

 

 

 

 


길은 좁고 시련은 넓다.

"뭉쳐야 삽니다"는 기치를 내걸고 출범한 공권력피해구조연맹이 창
립된지도 어느새 9년째에 접어들고 있다.

처음에는 부정부패추방시민연합 산하 "백만시민감시단"이라는 명칭으 로 시작했으나, 거기 모인 시민들 대부분이 사법피해자들이라 그에 걸 맞는 이름을 찿기 위해 임원 진들이 논의를 거듭한 끝에 "공권력에 짓 밟힌 피해자들의 구조"라는 틀을 잡고, 여기에 범시민적 의미를 더하여 "전국공권력피해자연맹"이라는 이름을 얻었다. 그 후 1998. 6. 26. 프레스센터에서 공식적으로 "전국공권력피해자연맹"으로의 재 창립 대회를 겸한 사법피해자 진상폭로 기자회견을 가지면서 보다 본격적인 활동을 시작하였다.

돌이켜 보면, 계란으로 바윗돌을 깨는 일처럼 재 창립 대회를 갖기 까지 아니 공권력피해자연맹이라는 이름을 얻기까지도 쉬운 길만 걸은 게 아니었다. 당시 단체 대표는 "판· 검사, 경찰관, 행정공무원 등등의 비리고발 기자회견"을 반대하였고, 백만 감시단 회원들은 "부정부패 사 실을 고발해 주겠다고 하여 회원이 되고 비리사안을 제보하였는데 이를 묵살한다면 단체의 문을 닫아야 된다"며 2개월이나 대립하였다. 이에 부추련 집행부에서는 감시단 단장인 나를 제명해야 된다고 하여 대립을 심화시켰다.

 
설상가상으로, 당시 많은 회원이 해직 당한 교수였는데 우리 단체 대표 또한 해직교수 출신으로, 그분이 재정이 열악한 단 체의 운영비를 조달하다보니 해직 당한 교수들은 이러 지도 저러 지도 못하는 형편이었다. 그러나 나는 비리사실의 폭로를 회피하는 대표에 맞서 감시단 긴급총회를 소집해 결연한 의지를 다지는 한편, 백만시민 감시단을 규합하여 전국공권력피해자연맹으로 재 창립 대회를 열었다. 그리고 곧 비리 판· 검사들을 고발하는 기자회견을 가졌다.

이러한 행사에 힘입어 전국에서 법조피해 회원들이 몰려와 5천명에 달하는 회원들이 가입하였고, 이때부터 피해자 회원들이 십시일반 뜻 을 모아 작으나마 운영비도 지원하게 되었다.

그러나 이도 잠시뿐, 당시 전·노 대통령과 김현철 비리로 나라가 온통 시끄러운 속에 전공련이 개최하려는 부정 축재 금 환수를 촉구하는 집회 개최를 둘러싼 또 다른 문제가 야기돼 다시 단장을 제명해야 된다고 법석댔다.

하지만 용기 있는 집회를 감행한 이유로 단장을 제명하기에는 명분 이 없다보니, 이제는 열악한 재정의 살림까지 책임져야 했던 단장의 비리를 캐기 시작했다.

그 후 벌어진 이전추구의 다툼과. 이런 저런 사정이야 가슴속에 묻는다. 다만, 어려운 시절에 열악하기 짝이 없는 살림살이를 도맡아 근근히 생명들을 키워 온 우리네 어미의 마음을 헤아린다면, 나의 순수한 열정은 이해될까? 이 열정의 죄가, 죄가 되어 송사에 휘말리기도 했으니 돌아보면 미련스럽기도 하고, 그 심정이 스스로 아련하기도 하다.

결국 이런 저런 소용들이 속에 우리 전공련은 1999. 2. 28. 독립단체로 새 출발을 한 것이다.

그래도, 그렇다!! 가슴에 묻어도 지워지지 않는 기억은 있다. 고소 당한 사건으로 해서 형사 피의자로 1년여 조사를 받았고, 당시 누구도 나서지 않는 공권력 비리를 캐는 "독립군단장"을 잡으려던 자들에 의 해 경찰서 유치장까지 갔는데, 그 날이 마침 서울대 법대 생들과 힘을 합쳐 "사법피해자 사례집" 을 발간하게 되어 그 소식이 저녁 9시 뉴스로 나오자 극적으로 해방을 맞았던 그 순간의 희비.

그런 보람으로 장장 5년 동안 "변호사법 위반" 혐의로 형사재판을 받으면서도 나는 오늘날까지 단체를 유지해 오고 있는지도 모른다. 이런 유죄 상태에서도 이 책을 내기로 결심하게 된 이유는 사심 없이 비리를 폭로하고, 힘없는 피해자들과 함께 한 순수한 어깨동무가 "변호사법 위반"이라는 진정 유배라도 당해야 할, 그만큼 커다란 죄인지? 그걸 되묻고 싶은 생각 때문인지도 모른다.

누구나 감방에 들어갔다가 와야 영예의 별을 따고, 그 별을 훈장처 럼 가슴에 달아야 순조로이 여의도에 입성한다는데 나는 그저 억울하게 피해 당한 사람들과 부대끼며, 지금도 그들을 짓밟고 있는 위대한 공권력들이 쉬 임 없이 눈에 밟혀 차라리 자청하여 감옥에라도 끌려가 이 피곤한 정신과 몸을 쉬고 싶은 소망뿐인데, 그 소박한 열정이 얼마나 큰 죄인지, 그걸 물어보고 싶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지난해에는 고영준 변호사가 명예훼손으로 고소하자 대질조사도 없이 기소되어 1년여 가까이 재판을 받았다. 심리 결과 고영준 상대로 집회한 것이 사실이라면 공소기각이 되지만 그렇지 않다면 내가 처벌을 받아야 된다는 것이기에 고 변호사를 증인으로 신청하여 증인재판 까지 하였다. 그러나 고 변호사의 위증으로 무죄가 될 수 없어 허위 진술서를 작성한 검찰계장을 증인으로 신청하기도 했으나. 이 또한 법원에서 묵살하고 검찰은 3년의 징역을 구형, 선고 날짜가 지정되었다.

그때는 고민 고민 끝에, 우선은 억울하고 분했지만 가족과 단체를 위해 고 변호사한테 사과하고 취하 장을 받아 형사재판은 공소 기각된 바 있다.

그러나 고 변호사의 고소 덕택에, 고 변호사가 변론한 사건을 모두 "문서송부촉탁"신청으로 입수할 수 있어 이를 검토한 바, 그가 사기 변론한 증거들을 입증한 수 있었고, 이를 토대로 단체에서 다시 고발을 하게 되었다. 결국 피해자도 알지 못한 새로운 증거에 의해 민사소송을 제기하는 결과를 가져온 것은 고 변호사의 자업자득이라고나 할 것인가 ?

개인적인 얘기 같기도 하고, 사족 같기도 한 것이지만 가정을 돌보지 못하고 단체에만 매달렸던 내 죄는 가족에게도 크다. 제대로 돌봐 주지 못하고 키운 아들마저 이제 미국으로 떠난다. 연세대 때문에 정신우울증과 고혈압, 신증후근 등등의 합병으로 시름시름 하던 남편이 그나마 병원에 입원하게 되어 나는 이제 비로소 감옥에 들어간다 해도 마음을 놓게 되었다. 아니, 차라리 그곳에라도 들어가 쉬고 싶고 잊고도 싶다.

다만, 이왕 감방에 가서 단련을 받을 바에야 진정 억울한 사람을 단 한 명이라도 더 구조하다 그들을 대신해서 가야겠다는 생각이다. 이것이 어쩌면 스스로 시련을 자초하는 나의 속마음, 비리 변호사들의 사례들을 실명으로 출판하는 나의 전략이기도하다. 그래야 그들이나를 고소할 것이고, 언론은 신이 나서 보도하고 그러면 피해를 당하고도 누구에게 제대로 알려 보지도 못한 억울한 민초들의 가슴앓이라도 덜어줄 수 있지 않겠는가?

또한 변호사법 위반이라는 올가미로 억울한 피해자를 외면하게 하는 권력들을 타파하고자 하는 나의 전략을 위해 "전국공권력피해자연맹 (이하 전공련)"을 "공권력피해 구조연맹(이하 공구련)"으로 개명하였다.


그래서 전문 법조인도 아닌 법조 피해자들이 비리 법조인을 감시 고발하고 올바른 판결을 할 수 있도록 감시하는 단체로 성장하여 공신력을 인정받고, 난마처럼 얽히고 설킨 어려운 피해 사안들을 구제하여 부끄럽지만 그래도 가장 인정받고 있는 단체가 되었다고 자부한다.

이와 아주 작정을 하고 출발한 길이기에, 내가 걸어온 길을 되돌아 보며 그것이 고난과 형극 뿐이었다고 말하지는 않겠다. 길은 좁았고 시련은 곳곳에 넓었으나 그 또한 억울한 피해자들과 함께 걸었기에 지쳐도 쓰러질 수는 없었다.

다만, 아직도 신음하는 피해자들과 지금도 싹트고 있는 음모들을 밝혀 더 이상의 신음소리를 줄이고자 하는 소망으로 오늘 우리가 서 있는 이 자리를 다수 출발선으로 삼으며, 더 굳센 각오를 다진다.

공권력피해구조연맹
구조단장 조  남숙

 

 
기사입력: 2004/08/16 [13:00]  최종편집: ⓒ yeslaw.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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