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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의 배우 시상식 (이재성)
사법연대 기사입력  2014/01/01 [11:34]
올해의 배우 시상식 (이재성)

이재성/ 인권연대 운영위원

 도무지 연말 분위기가 나지 않는 을씨년한 세밑이다. 헌법이 유린당했고, 정치는 실종됐으며, 민심은 흉흉하다. 연말 분위기를 조금이라도 내보려고 내멋대로 시상식을 마련해봤다.

 

 올해 대한민국이라는 공화국의 스크린을 암울하게 만든 최악의 조연 배우는 단연 김용판 전 서울경찰청장이다. 김 씨는 국가정보원의 대선 개입 사건에 대한 경찰 수사 발표를 거짓으로 꾸며 대선 결과에 직접적인 영향을 끼쳐 놓고도, 자유인으로 활보하며 국민을 우롱하고 있다. 국회 증언대에 서면서 당당한 척 뻔뻔한 연기를 감행했으나 거짓말이 탄로 날까 선서조차 거부하는 찌질한 모습을 연출한 점이 수상의 배경이 됐다. 법정에서의 거짓말 연기도 당대 최악이었다.

 

 아시다시피, 티케이 출신인 김 씨의 무리한 베팅은 경찰 조직에도 괴멸적 타격을 안겼다. 경찰은 이 정부 들어 오랜 숙원인 수사권 조정의 ‘ㅅ’자도 꺼내지 못하고 있다. 벼룩도 낯짝이 있기 때문이다. 경찰은 기왕에 버린 몸이라는 듯, 정권을 향한 무한 충성을 다짐하고 있다. 문제는 충성을 하고 싶어도 능력이 없어서 잘 안 된다는 점이다. 철도노조 지도부에 대한 경찰의 강경하지만 무능한 대응은 거의 블랙코미디 수준이다. 짜투리상인 ‘올해의 안습상’에 이성한 경찰청장이 뽑혔다.

 

 올해 최악의 여자 조연상은 최연혜 철도공사 사장 차지다. 철도공사의 적자가 심각하다면서 황금노선을 따로 떼어내겠다는 황당한 발상도 그렇거니와, 민영화가 아니라고 진심으로 믿는 듯한 연기가 매우 어색했다는 평이다. 권력에 눈이 멀어 평소의 소신을 저버린 사람이 얼마나 다양한 표정을 지을 수 있는지 여실히 보여줘야 했는데 매번 똑같은 얼빠진 표정만 보여줘 기대했던 관객들에게 큰 실망을 준 점이 수상에 큰 영향을 미쳤다.


좌로 부터 김용판 전 서울경찰청장, 최연혜 코레일 사장, 남재준 국가정보원장, 박근혜 대통령
사진 출처 - 뉴시스, 연합뉴스, 한겨레


 

김용판씨가 남자 주연상을 놓친 건 남재준 국가정보원 원장의 포스에 밀렸기 때문이다. 남 원장의 연기는 격이 달랐다. 군인 출신답게 어깨를 쫙 펴고 오만하게 야당 국회의원들을 쏘아보는 눈빛 연기를 감행해야 했는데 눈이 작아서 눈빛 연기가 불가능했다. 그럼에도 그 무대뽀 정신만은 거의 <람보>의 실버스타 스탤론 급이었다. ‘음지에서 일하고 양지를 지향’해야 할 국정원을 ‘양지에서 일하고 청와대를 지향’하는 조직으로 격상시켰다. 말 그대로 국정원을 이후락의 중앙정보부 시절 위상으로 올려놓았다는 평가다. 남 원장은 명실상부하게 올해 국내 정치를 주도했다고 할 수 있을 만큼 중대한 결정과 발언을 쏟아냈다. 엔엘엘(NLL) 관련 남북정상회담 대화록을 무단 공개했고, 적절한 시점에 이른바 아르오(RO) 사건을 터뜨려 국정원 대선개입 사건 진상규명 요구를 짓밟았으며, 2015년 통일을 위해 다 같이 죽자는 무식한 대사까지 뱉어냈다.

 

 대망의 올해 최악의 여자 주연상은 짐작하시다시피 박근혜 대통령이다. 남재준 원장이 아무리 큰일을 많이 했다고 해도 모두 박 대통령의 손바닥안이었다. 박 대통령이 이 정부 초강경 기조의 최후 배후라는 사실을 우리가 직접적으로 알게 된 가장 최근의 사례는 철도 노조 지도부 검거를 위한 경찰의 민주노총 본부 강제 진입 사건이다. 박 대통령은 경찰 진입 바로 다음날 비장한 표정으로 철도노조와 타협하지 않겠다는 뜻을 밝혀, 신문사 건물 침탈이 본인의 뜻임을 만천하에 확인했다.

 

그래놓고 잽싸게 어린이집을 방문해 칙칙폭폭 기차놀이 연기를 시연하려 했으나 아이들과 키가 맞지 않아 망신만 당하고 말았다. 경제민주화와 복지 공약을 모조리 말아 드시는 왕성한 ‘먹방’도 타의 추종을 불허했다. 이명박 전 대통령도 혀를 내둘렀다는 유체이탈 연기와 한복 빨리 갈아입기라는 비장의 개인기도 심사에 영향을 줬다.

 

 올해 최고의 남자주연상은 검찰의 대선 개입사건 수사를 지휘한 윤석열 여주지청장, 여자주연상은 권은희 수서경찰서 수사과장이 받았다. 별로 이견이 없을 줄 안다.


권은희 수서경찰서 수사과장, 윤석열 여주지청장
사진 출처 - 뉴시스


 이밖에 미처 상을 받지는 못했지만, 각 분야에서 접전을 벌였던 후보군을 소개하겠다. 일요일마다 검찰 수사 기밀을 빼내서 기자들에게 먼저 알려주느라 너무 고생을 해서 잘생긴 얼굴이 폭삭 삭아버린 윤상현 새누리당 의원, 청와대가 갈등을 조정할 생각은 않고 오히려 정쟁을 주도한다는 비난을 무릅쓰고 레이디 가카 보위에 혁혁한 공을 세운 이정현 청와대 대변인(아! 이정현이 입을 ‘아’하고 벌리며 악을 쓰는 ‘짤방’은 21세기 괴벨스의 출현을 알리는 신호탄처럼 보였다), 청와대 눈치 보느라 눈이 옆으로 더 째진 것 같은 황우여 새누리당 대표, 여당인지 야당인지 헷갈리게 하는 둔갑술의 천재 김한길 민주당 대표, 새정치 하겠다면서 치사하게 야당의 둥지에 알을 낳으려는 ‘뻐꾸기’ 안철수 의원 등에게 심심한 위로의 뜻을 전하며, 좀 더 분발해서 내년엔 꼭 상 하나 타시길 당부드린다.

이재성 위원은 현재 한겨레신문사에 재직중입니다.


 
 







 
기사입력: 2014/01/01 [11:34]  최종편집: ⓒ yeslaw.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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