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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문사 1호 서울 법대 최종길 교수 아들
최광준 교수 `아버지 좇아 법학자 된 사연'
사법개혁국민연대 기사입력  2004/04/14 [13:00]

마지막으로 눈물 흘리는 유가족이고 싶다

중정 직원이 가져간 아버지 수첩
간첩들의 비밀 연락망으로 둔갑



973년 10월 16일, 아버지는 잠깐 나갔다오겠다는 말 한마디를 남기고 집을 나섰다. 어머니는 집에 없었다. 맹장 수술로 병원에 입원해 있었기 때문. 저녁이 되기 전 돌아오시겠지. 그는 유난히 넓은 아버지의 등만 한 번 바라보았을 뿐 얼굴은 보지 않았다. 그게 마지막이라는 걸 알았더라면 자세히 봐 둘 것인데……

그의 나이 당시 아홉 살. 초등학교 3학년이었다. 그날 아버지는 중정 감찰실에 근무하는 삼촌 최종선씨와 함께 말로만 듣던 남산 청사에 가는 길이었다. 얼토당토않게 아버지가 간첩단 사건에 연루된 혐의를 받고 있자 삼촌이 최종선씨가 결백을 입증해 주기 위해 자신의 형을 자진 출두하게 한 것이다.

그렇게 집을 나선 아버지는 그날 어머니가 입원해 있던 인천 병원에도 들렀다. "잠깐 가서 얘기만 하면 되니까 내일 내가 데리러 오겠소" 이 말은 어머니로 하여금 언제나 내일을 기대하게 한 통곡의 유언이 되어버렸다.

사흘 뒤인 10월 18일 가정부와 그가 집에 있는데 건장한 두 아저씨가 들어왔다. 그리곤 아버지가 보내서 왔다며 편지를 내밀었다. 거기에는 책상 서랍 어디에 수첩과 통장이 있고 외국으로 보낼 편지가 있으니 찾아 주라는 말과 `동생을 잘 돌보도록 하여라'는 인사말이 적혀 있었다.

아버지가 나가서 돌아오지 않은 지 4일째 되던 날 밤. 어머니가 오류동 작은아버지 댁에 가신다며 큰어머니와 함께 집을 나섰다. 그와 여동생은 조금 있다가 출발하기로 했다. 어린 그였지만 웬지 불길한 예감이 들었다.

얼마 후 그와 여동생이 오류동 작은 집에 도착하자마자 갑자기 어머니가 두 남매를 꼭 끌어 안았다. 그리곤 `이제부터 우리끼리 살자'며 속으로 울음을 삼켰다. 어른들 분위기가 심상치 않게 돌아가자 그는 사촌들을 닥달했고, 어른들이 쉬쉬하는 가운데서도 아버지가 세상을 떠났음을 알게 되었다. 그러나 울지 않았다. 뭔가를 아는 척도 하지 않았다. 속으로 울음을 삼키는 어머니를 위해서는 그래야 할 것 같았기 때문.

그날 어머니는 중정측의 협박에 내용도 모르는 탄원서에 싸인을 했다. 훗날에야 그 탄원서의 내용을 본 어머니는 자신을 치욕스러워했다. 거기에는 아버지가 간첩임을 인정하니 아버지의 죄상을 신문에 보도하지 말고 또한 남은 가족들이 사상적 제약을 받지 않도록 해달라는 내용이 적혀 있었다는 것.

10월 21일 아침. 아버지의 유해를 영구차에 싣고 장지인 모란공원으로 향했다. 10여명의 건장한 아저씨들이 영구차 주위를 감시하며 계속 따라왔다. 그들은 정보부 직원들과 기동 경찰로 영구차가 서울대를 통과하는 건 물론 옆으로 지나가는 것조차 허용하지 않으며 장지까지 삼엄한 경계를 섰다.

하관하기 위해 아버지의 유해가 영구차에서 내려지고 어머니와 두 남매가 나란히 섰다. `저 속에 정말 아빠가 계시는 걸까' 도저히 믿기지 않아 당장이라도 열어보고 싶었다. 그러나 서슬퍼런 요원들은 가족들마저 살벌하게 통제하며 아버지의 관에 손도 못대게 했다. 누구도 울지 않은 채, 아니 올 수 없는 가운데 아버지를 그렇게 허망하게 땅에 묻었다.

그리고 얼마 후 일본 신문에 아버지의 사망기사가 보도되자 중정측은 매스컴에 간첩단 사건을 대대적으로 보도했다. 탄원서를 통해 자신들이 꾸민 약속조차 기만한 채. 그들은 아버지사인을 `간첩단의 일원임을 자백한 뒤 양심의 가책을 받아 중정 건물 7층 화장실에서 투신 자살했다'고 발표했다. 그리고 그 증거 자료로 집 다락방을 뒤져 찾아냈다는 수첩을 제시했는데 그건 그와 가정부가 있을 때 중정 직원들이 서랍에서 꺼내간 바로 그 수첩이었다. 그건 어린 그 조차도 속일 수 없는 허구이고 명백한 조작이었다.



누구보다 다정다감했던 아버지
하버드 교수로 남았더라면…



아버지가 그럴 듯 억울하게 세상을 떠난 후 그의 가족은 이리 저리 이사를 다니며 살라야 했다. 학교에 다니는 그와 동생이 행여라도 간첩의 아들이라고 손가락질 당할까 좌 어머니가 수시로 이사를 강행한 것이다.

"산부인과 의사였던 어머니는 이사할 때 절대 사람을 쓰지 않으셨어요. 혼자서 며칠씩 짐을 싸고 또 풀곤 했습니다. 그러고도 새벽이면 출근하셨고, 퇴근해서는 또 새벽까지 집안일을 혼자서 다 하곤 하셨어요."

어머니가 새벽부터 저녁까지 병원 일을 했기 때문에 낮이면 집에는 두 남매만 있었다. 그는 여동생과 아버지에 관한 행복한 기억을 떠올리고 싶어 매일 앨범을 보며 시간을 보냈다. 가족들간에 아버지 이야기는 무조건 상처였기 때문에 남매도 아버지 이야기는 절대 하지 않았다. 그냥 행복했던 시절의 사진을 보면서 아버지에 대한 그리움을 달래는 것이었다.

71년 아버지는 하버드 법대 교환 교수로 갔다. 그 때문에 1년 동안 혼자 떨어져 지내게 되었는데, 그는 그런 아버지에게 그림을 그려 보내곤 했다. 그러면 아버지는 아들의 그림을 숙소 벽에 붙여 놓고 매일 매일 아들을 보듯 감상하는 것은 물론 동료 교수들에게 자랑하기도 한다고 했다.

"아버진 어머니가 보낸 편지의 글씨가 너무 커서 매번 아쉽다고 하셨어요. 오래오래 읽었으면 좋겠는데 너무 빨리 읽게 된다는 것이었죠. 아버지는 어머니와 우리에게 그렇게 다정다감한 분이셨습니다."

72년 그의 가족은 아버지와 합류해 1년 동안 미국에서 생활했다. 그곳에서 나날이 지금은 아득한 동화 속 일들만 같다. 아버지와 둘이 찰스 강변에서 매일 축구를 했던 일, 주말마다 아버지 손을 잡고 피크닉을 갔던 일 등은 아직도 사진보다 선명한 기억으로 그의 뇌리에 암아 있다.

"교환 교수 임기가 끝났을 때 친분있는 법학자들은 아버지의 하버드 잔류를 권유하셨대요. 그런데 아버지가 돌아가서 모국의 후진 양성에 힘쓰고 싶다며 거절하셨답니다. 어머니는 두고두고 그때 하버드에 남았더라면 그렇게 억울하게 생을 달리 하진 않았을텐데, 하시면 애석해하시곤 해요."

귀국하기 전 아버지가 간 곳은 독일 퀼른대였다. 홈볼트 재단 장학생이었던 아버지는 이 대학에서 석·박사를 하셨는데 이때는 6개월 초청 교수로 간 것이었다.

독일에서 귀국하는 길에 그의 가족은 유럽을 여행했다. 그와 동생이 보는 앨범을 채운 사진들의 대부분은 이때 찍은 것들이다.



반공 감정 누구보다 많았던 사람
하늘나라에는 공소시효가 없다



그가 어렸을 때 아버지에게 가장 많이 들은 이야기는 6.25때 아버지와 큰아버지가 피난가며 겪은 일화이다,

`6.25 당시 두 사람은 남으로 피난을 가는 중이었다. 인천중학교 학생이었던 아버지는 빡빡머리에 교모를 쓴 차림이었는데 갑자기 나타난 비행기의 기총소사 탓에 교모를 잃어버렸다. 큰아버지는 `모자가 없으면 인민군으로 몰려 총살당하니 모자를 찾아보라'고 호통을 쳤다. 그러나 사상자가 뒹구는 속을 찾아갈 용기가 없어 아버지는 주저앉아 울었다. 큰아버지는 뺨을 두어 차례 때려 모자를 찾아오라고 호통쳤고 아버지는 죽기보다 가기 싫은 그곳으로 되돌아가 결국 모자를 찾아 썼다'

어린 그에게도 전달되어 울 정도로 그렇게 반공 감정이 깊었던 아버지가 어떻게 간첩일 수 있단 말인가. 그가 생각하기에 아버지는 유신 반대 운동을 막기 위한 희생양이었음이 분명하다. 당시 서울대 법대 시위를 도화선으로 유신 반대 운동이 확산될 조짐이 보이자 이를 막아 보려 평소 유신에 비판적이었던 아버지를 희생타로 삼은 것이다.

"한창 열정적으로 학문과 강의와 벗에 흥겹게 심취해 있었던 그때, 최교수의 죽음이 왔다. 나도 울고, 학생들도 울었다."

황적인 서울 법대 교수의 아버지에 대한 회고이다. 아들 자신도 아버지의 길을 따라 법대 교수가 되었지만 10년 만에 60편이 넘는 논문을 써낸다는 것은 엄청난 학문 열정이 아니고서는 불가능한 일이다. 웬만한 교수라면 평생 작업해도 불가능할 정도.

그런 아버지의 꿈은 60년에 완성되어 일본 민법의 아류나 다름없는 한국 민법을 독일, 미국 등에 법률 원서를 통해 연구해 우리 것으로 새롭게 제정하는 것이었다. 그 꿈을 이루지 못하고 가신 것이어서 그는 어렸을 때부터 자신이 그 길을 이어가리라 결심했다.

"독일 문화재단의 도움으로 고등학교 졸업 후 곧 바로 아버지가 다니셨던 퀼른대에 진학했습니다. 전공도 아버지와 같은 입법과 국제사법을 했지요. 아버지를 특별한 제자로 아끼셨던 케겔 교수라는 분은 아직도 학교에 몸담고 계셔서 저도 그분의 제자가 되었습니다."

아버지의 유업을 받들어 민법학자가 된 최교수는 현재 일산에서 어머니 백경자 여사와 함께 살고 있다. 남편의 명예회복과 진상규념을 위한 일념으로 평생을 살아온 그의 어머니는 아직도 유신 정권만 생각하면 치가 떨리는 듯 논란이 되었던 박정희 기념관 건립문제에 대해 비판의 열변을 토했다. 그런 어머니는 `하나님의 나라에는 공소시효가 없다' 는 말로 의문사가 유가족들의 정신적인 피해가 아직도 계속되고 있음을 외치기도 했다.

아버지가 간첩 누명을 썼다는 증거는 의문사 이후 중정 직원들이 그의 가족을 상대로 돈을 주고 협상을 하려 했던 점, 중정 감찰실에 있던 삼촌 최종선씨를 친형제임에도 그 후로도 오랫동안 그대로 두었다는 점 등 이루 헤아릴 수 없이 많다. 또한 타살의 흔적도 이번에 진상규명위원회가 밝힌 것 말고도 손으로 꼽을 수 없을 정도다.

"이전 진상규명위원회의가 많은 진상을 밝혀낸 건 사실입니다. 하지만 관련자에 대한 강제수사권이 없기 때문에 더 이상의 진실 규명에는 한계가 많아요. 저는 저희 아버지뿐만 아니라 앞으로 다른 많은 의문사 사건의 진상이 제대로 규명되기 위해서는 정부 차원의 지원이 필요하다고 봅니다. 사실 정부에 의해 저질러진 일이니 정부가 해결해야하지 않겠습니다."

그는 아버지의 의문사 진상을 끝까지 밝혀 자신이 마지막으로 눈물을 흘리는 유가족이 되겠다고 했다.

 
기사입력: 2004/04/14 [13:00]  최종편집: ⓒ yeslaw.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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