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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보다 더 억울할 수 있을까
사법정의국민연대 기사입력  2007/04/03 [19:19]

사회]이보다 더 억울할 수 있을까
2007 03/20   뉴스메이커 716호

시민단체 사법 관련 피해사례집 발간… 문서·진술서 위조, 무고, 허위감정 등 환기
사법정의연대 회원들이 사기범에 대한 처벌을 강조하고 있다. <김정근 기자>

2000년 초 발생한 74세노파의 쓸쓸한 죽음에 대해 최근 재조명해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되고 있다. 우리 사회에 적지 않은 의혹과 아쉬움을 남겼던 이른바 ‘원할머니 사건’에 대해 한 시민단체가 더 늦기 전에 진실을 밝혀야 한다고 나선 것이다.

사법정의국민연대가 ‘20억원대 사기 사건 의혹’으로 기록하고 있는 이 사건은 기나긴 법정 공방 끝에 2000년 대법원의 원고 패소 확정판결로 일단락됐지만, 이제라도 의혹을 해소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 사건은 당시 사회적으로 큰 관심사였다. 그러나 당사자인 원영숙(가명) 할머니가 위암으로 세상을 떠나면서 결국 이 사건은 의혹만 남긴 채 시민단체의 ‘사기 사건 의혹 자료’에 기록되는 것으로 만족해야 했다.

사법정의국민연대 조관순 위원장은 “그동안 다양한 형태의 사건을 접했지만 원 할머니 사건만큼 아쉽고 의혹이 많은 사건은 없었다”면서 “시간이 많이 지난 사건이지만 언젠가는 할머니의 한을 풀어줘야 한다”고 말했다. 조 위원장은 “최근 이와 같은 의혹 사건을 묶어 자료집을 냈다”면서 “이제라도 진실을 밝혀야 한다”고 덧붙였다.

사라진 20억 “예금주 인출 안 했다”

원 할머니 사건의 발단은 1992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원 할머니는 남편과 사별한 후 어렵게 모은 돈 20억을 한 지인에게 맡겨 관리하게 했다. 원 할머니는 한 지방은행지점장에게 예금을 맡겼다. 실적을 올릴 수 있게 예금을 예치해 달라는 지점장의 부탁 때문이었다. 물론 지점장이 타지점으로 갈 때도 예금통장은 따라 옮겼다.

그러던 중 무심히 돈을 찾기 위해 은행을 방문한 원 할머니는 소스라치게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그동안 모아 두었던 돈이 모두 자신도 모르게 인출되었기 때문이다. 해당 은행은 모두 당사자(원 할머니)가 인출했다고 주장했고, 원 할머니는 돈을 찾은 적이 없다고 맞섰다. 은행 측은 인출 당시 인감이 찍힌 인출 영수증을 보여줬지만 원 할머니는 “인감을 찍고 인출한 적이 없다”고 버텼고 결국 이 싸움은 법정공방으로 번졌다. 인감 위조를 의심한 원 할머니는 5개 사설감정원과 8명의 감정사들의 의견을 모아 ‘위조’라고 주장했지만 국과수와 법원은 원 할머니의 손을 들어주지 않았다. 사라진 20억원의 진실은 그렇게 묻혔다.

또 어느 청년이 당한 불의의 교통사고도 안타까운 사건의 대표적인 유형으로 언급되고 있다. 사건 발생 후 9년 만에 진실이 우연히 밝혀졌지만 가해자와 피해자가 영원히 뒤바뀔 뻔했던 사건이다. 이 사고로 아들을 잃은 손모씨(54)는 “9년 동안의 진실찾기는 고난투성이 그 자체였다”고 밝혔다.

사건은 1996년 5월 일어났다. 군 입대를 앞둔 손모씨 등 일행 3명이 음주운전을 하던 중 마주 오던 트럭과 정면 충돌해 손모씨가 숨졌다. 사고 직후 아들 친구 김모씨를 운전자로 지목했던 경찰관이 갑자기 태도를 바꿔 아들을 운전자로 처리한 후 사건을 종결처리했다. 아들을 잃은 손씨는 당시 아들 친구 김모씨의 아버지가 해당 경찰서 교통계장과 절친한 사이라는 점을 의심해 지속적인 진실찾기에 나섰다. 결국 검찰의 재조사 과정을 거친 후 경찰이 증거를 조작했다는 사실도 밝혀졌다.

비양심적 법조인·공권력 피해 많아

금융감독원 관계자가 교통사고 사건을 조사하고 있다.
최근 사법 관련 시민단체인 사법정의국민연대가 ‘사기치는 법, 사기 당하는 법’이라는 제목의 사법 관련 피해 사례집을 발간해 큰 관심을 끌고 있다. 사법정의연대는 피해자들의 주장을 묶은 사례집에 문서 위조나 교통사고 진술서 위조로 인한 피해, 가해자의 무고로 억울하게 옥살이한 경우, 정부기관의 허위감정으로 피해를 입었다고 주장하는 사건 등 29개 사례를 담았다.

사례집 작성에 주도적인 역할을 한 조 위원장은 “사례집에 포함된 사건 상당수가 비양심적인 판·검사, 경찰관, 공무원 등 공권력에 의해 시민이 재판에서 피해를 입은 경우”라며 “피해자들은 부당한 수사와 재판으로 수년째 고통을 겪고 있거나 목숨을 버리기까지 했다”라고 말했다.

조 위원장은 “사기치는 법(또는 사기범)을 알면 사기를 당하지 않는다는 생각에 사례집을 만들게 됐다”면서 “억울한 사람이 더 이상 나오지 않는 사회가 되는 날까지 다양한 형태의 활동을 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진화하는 ‘사기의 기술’

2006년 4월 말, 한 대기업 비서팀에 비상이 걸렸다.

“대검 중수부장입니다. 사장님 연결 부탁합니다” 라는 한 중년 남성 전화 때문이었다. 비서팀 박모 차장은(42)은 “당시 사장님이 외출 중이어서 연락을 취하느라 비서팀에 초비상이 걸렸었다” 면서 “전화를 받고 놀란 팀원 모두가 몇 시간 동안 제정신이 아니었다” 라고 회상했다. 당시 재계에는 정의선 기아차 사장 등 대기업 총수 일가의 잇단 검찰 소환으로 냉기가 흐르고 있었다. 결국 이 대기업사장이 직접 나서 검찰에 확인한 결과, “그런 일 없다” 는 말을 검찰로부터 들어야 했다. 당시 박영수 대검 중수부장은 한 언론과 인터뷰에서 “나느 그런 전화를 건 적이 없다. 도대체 누가 그런 전화를 건 거냐” 라고 했다. 검찰은 “중수부장이나 기획관이 직접 기업에 전화를 거는 경우는 없으니 피해를 보는 기업이 없기를 바란다” 고 공식적으로 밝히기도 했다.

이같이 웃지 못할 에피소드는 군사정권 시절에도 적지 않았다. 한 원로기업인은 “70~80년대에는 고위층을 사칭한 사기 미수 사건이 적지 않았다” 면서 “사칭하는 사기꾼도 문제였지만 그런 일을 당하고도 쉬쉬하는 사회적 분위기도 큰 문제였다” 고 회고했다.

이 원로 기업은은 한 사례를 들어 당시 상황을 설명했다.
“한 기업인 친구가 다급하게 (제게) 전화를 걸어왔어요. ‘청와대에서 자기를 만나러 온다는 전화를 받고 어떻게 대처해야 할지 걱정이다’ 라며 자문을 해온 거예오. 제가 아는 인맥을 총동원해 청와대에 확인해 봤는데, 그런 일이 없다는 거에요.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여비서가 ‘청와대… 쩝, 인근에 사는 후배…’ 라는 얘기를 ‘청와대’ 라고 단정짓고 전달한 거지요.” 이 원로인사는 “나중에 밝혀졌지만 청와대라고 말한 후배라는 작자는 무작위로 기업에 전화를 해 기업가에게 돈을 뜯던 사기범이었다” 면서 “상대방 말을 끝까지 들었으면 겪지 않았을 일이 당시엔 많았다” 고 말했다.

고위층 사칭 사기미수 사건은 애교스럽다고 할 정도로 최근의 사기수법은 매우 대범하고 치밀하다. 방법도 상상을 초월하고 지능적이며 지극히 현실적인 방법이 동원되는 게 특징이다. 물론 해외 거주자를 공범으로 끌어들이는 경우도 많다.

한 경찰관계자는 “최근 발생하는 사기 사건의 가장 큰 특징 중 하나는 고전적인 수법을 한 단계 업그레이드한 ‘특정직업 사칭’ 이 많이 동원된다” 면서 “특정 직업이나 기관을 사칭하는 사람에 대한 철저한 신원 확인만 해도 피해를 줄일 수 있다” 고 조언했다. 국세청·국민연금 환급 미끼 사기가 초기단계였다면 최근에는 카드대금 연체, 검찰 사칭, 등록금 예치 사기까지 다양하다. 물론 대부분 관계자를 사칭하는 방법이 동원된다.

최근 발생한 한 사건은 이 같은 사칭 사기가 어느 정도 심각한지 적나라하게 드러내 준다. 실제로 올해 초 ‘사칭 사기 수사’ 를 총괄하는 한 검찰 책임자에게 한 통의 전화가 걸려온 사건은 가히 엽기적이라 할 수 있다.

이 부서의 한 책임자는 홈쇼핑을 사칭해 주민등록번호 등을 묻는 전화를 받고 사기임을 직감해 “당신 이름이 뭐요” 라고 물었다 한다. 그러니 재중동포 말씨가 역력한 상대방이 “내 성함(?)을 왜 궁금해 합니까” 라며 시간만 끌었단다. 이 책임자는 “세상에 자기 이름을 성함이라고 칭하는 사람이 어디 있느냐” 며 추궁하자 상대방은 갑자기 “야 이 개대가리야” 라는 낯선 욕을 하며 전화를 끊었다는 것.


<김재홍 기자 atom@kyunghyang.com>

 
기사입력: 2007/04/03 [19:19]  최종편집: ⓒ yeslaw.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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