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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나긴 싸움의 시작(스승이 제자의 인권을 유린하는 법, 제자가 정의봉으로 응징하는 법)
(스승이 제자의 인권을 유린하는 법, 제자가 정의봉으로 응징하는 법)
사법연대 기사입력  2021/07/03 [12:44]
▲     © 사법연대


○남편의 꿈과 살아온 길

남편은 우수한 성적으로 공주고등학교를 졸업 했으며 축구선수를 했었다. 친구 세명 중 한 사람은 법조인, 한 사람은 의사, 한 사람은 교수가 되기로 약속을 했다고 한다. 결국, 친구들은 약속한 데로  한 친구는 삼성병원 의사가 되었으며, 한 친구는 공주사대 교수가 되었으며, 법조인이 되겠다던 남편만 이행을 못 했다.

남편은 서울대 법대를 가지 않으면 사법고시에 합격 할 수 없다는 판단에 서울대만 4년 응시했으나 낙방했다. 당시 국방부차관이셨던 이민우 사촌 형님은 차라리 연세대나 고대라도 가라고 했다고 한다. 그것도 힘써 줄 것이니 낮은 대학이라도 가라고 했으나 남편은 부정한 방법으로 갈 수는 없다면서 거절하고 서울대만 고집하다. 시골로 낙향하게 되었다.


고향 공주에서 3만평 밤 농장을 관리하다 행정병으로 군 제대 후, 농사짓는 법도 배워야 된다는 생각에서 연세대학교 농업개발원(이하 농개원)에 입학하게 되었으며, 남편은 낙농학과와 원예학을 각각 수석으로 졸업 했으며 그것도 장학금까지 받으며 장학생으로 졸업을 했다.        


○훌륭한 스승과 나쁜 스승의 만남


원예학 담당교수이자 일산삼애실습농장의 농장장이던 원세호교수님은 장차 농개원 원장으로 임명받을 위치에 있었던 관계로 남편에게 모교를 발전시켜 보자고 하면서 실습조교 업무와 삼애과수원예 농장을 관리해 달라고 하자, 남편은 모교를 위해 스승의 부탁을 거절할 수 없어 밤 농장을 형님한테 물려주고( 현시가 50억원) 학교에 77년 3월경부터 과수원예 책임자 겸 실습조교 업무를 하면서 근무하게 되었다. 원 교수님은 남편과 함께 6천평 과수원예 농장에 대대적 토지평탄을 작업을 한 후 전국에 있는 갖가지 유실수 과수나무를 모아다 남편과 같이 심기 시작한 결과 4년 만에 우리나라 최초로 과수원예실습농장으로 인정받게 되었다.


당시 농개원 신영오원장은 연세우유 활성화로 낙농학과 학생들을 대거 입학하도록 했으며, 숭실대학교재단 이사장까지 역임한바 있는 고 배민수목사 유족들로부터 당시 2천억대 일산삼애전수학교를 기증하도록 했으며, 홍은동에 있는 원예농장도 고 김주황선생으로부터 농개원에 기증하도록 했다. 과천원지동 임야 십만 평도 농개원에 기증 하도록 하는데 기여를 했다


그러나 조선일보 대표였던 고 방우영은 80년경 연세재단 이사로 있으면서 농개원은 폐지하고 원주대학에 낙농학과신설을 추진하고 있었다. 그런 계획 하에서 원세호교수를 농개원 원장으로 임명하는 것이 아닌 생물학과 교수인 강영희교수를 농개원 원장으로 발령했다. 강 원장이 부임한 후 임시직원으로 있던 직원들에게 박 선생은 농장사무장으로, 정 선생은 덕소농장 사무장으로, 남편은 삼애농장 부사무장으로 각각 발령했다. 남편은 삼애농장 부사무장으로 임명으로 농장 부사무장 업무, 정 선생이 하던 목장장 업무, 과수원예농장관리, 학생들 실습강의 등 1인4역의 근로를 하도록 강요했다.


당연히 삼애농장 사무장으로 승진시켜 주겠다고 해서 강 원장 말을 믿고 열심히 근로를 제공했다. 그러나 3년이 지나서 갑자기 덕소농장 사무장으로 발령할 것이니 우선 전근가라고 회유하였으며, 강제로 전근을 가야만 했다. 강 원장은 그 즉시 삼애과수원예 6천평 농장에 갖가지 과실수들을 전부 벌목한 후 축구장으로 만들어 버렸다.


89년경 농개원은 폐원하기로 하고 전 직원들에게 인사발령을 했으며, 남편은 12년 만에 행정직급에서 기능직 초봉으로 발령하는 반면 가짜 실습조고였던 정씨는 2년 만에 행정직 16호봉으로 발령했다. 정씨는 돈쓰고 빽 써서 정식 직원이 됐다고 자랑하고 다녔다. 결국, 남편은 강 원장에게 김말이를 못 해서 전직 발령을 받은 것이라면서 동료직원들은 남편이 강 원장에게 당한 것이라면서 자기들이 더 답답해했다.

▲     © 사법연대


○임시직 제도는 주인 없는 연세대학이 원조
주인 없는 연세대학교는 우선 임시직으로 채용한 후, 다시 기관장 상신에 의해 재 채용하는 것이 인사 관행이었다. 그러나 대부분 2~3년 만에 정식직원으로 발령했다. 그러나 남편은 1981. 3. 1. 부사무장으로 발령받던 날 다른 동료직원 3명은 정식 사무직원으로 발령을 했음에도 남편만 형식상 부사무장으로 발령을 했을 뿐, 강원장은 학교에 정식직원 상신을 남편만 하지 않아 정식직원으로 재 채용이 되지 아니했다. 이때까지만 해도 기독교 대학이, 스승인 강원장이 배신하리라 생각을 못하고 늘상 학교가 어렵다고 하면서 조금만 참아 달라고 하여, 강 원장 말만 믿고 정식직원이 되길 손꼽아 기다린 결과 12년 동안이나 방치한 뒤 도리어 직책을 강등한 부당한 인사발령을 했다.


소송을 통해 알고 보니 남편의 인사고과를 일용잡급직 근무를 하고 있다고 허위 상신을 한 결과 학교는 단순노무직 용원직(경비)으로 발령했고, 가짜 실습조교는 실습조교 업무를 하고 있었다고 거짓상신한 결과 2년 만에 정식기술직 16호봉으로 승진발령을 받았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한편 남편의 부당한 인사발령을 받게 된 1989. 4. 경 시부모님이 사주신 일산 방송국 앞 도로 옆에 위치했던 일산농장을 담보로 대출받아 생활을 해오다가 마침내 더 이상 버틸 능력이 없어 700평 중 절반을 매도했다. 그러나 부당한 인사 발령쇼크로 법무사만 믿고 인감증명서를 준 것이 화근이 되어 법무사는 매수자에게 청탁받고 부동산 전체에 대한 매매예약 가등기를 한 결과 절반의 농지마저 아무런 재산권행사를 할 수 없게 만들었다. 결국 절반의 토지를 반환 받는 데는 소송을 통해 5년이라는 긴 세월이 흘러야 했으며, 필자는 남편 사건도 투쟁해야만 하고, 부동산 사건도 서울에서 의정부법원까지 오가면 농장 찿는 일에 매달려야만 했으나, 2007년 남편의 사고와 2008. 2. 학교의 사기소취하로 경제적으로 버틸 능력이 없어 남은 절반의 농장마저 강제경매로 인해 2000년경 공동소유자 유 씨가 차지하고 말았다.


○ 참 스승의 조언으로 사법개혁 운동가가 되는 법


너무나 어처구니없는 발령에 자살하고 싶었지만 스승이고 상관이셨던 신영오교수님은 근무하면서 투쟁을 해야만 한다고 위로해 주셔서 근무하면서 투쟁하기 시작했다. 필자는 투쟁 방법을 알기 위해 경실련, 참여연대, 흥사단을 다니면서 법적투쟁 방법을 배우기 시작했으며, 연세춘추에 투고한 결과, “남편을 제자리에” 라는 제목으로 보도를 해주었다. 그러나 남편은 근무 중 정신적 쇼크로 실신하여 입원을 해야만 했다.


남편의 사건 기사를 보고 학교 직원노동조합은 임시직은 폐지하고, 공개채용을 하겠다고 선언하기에 이르렀고, 고 송장 전 총장은 95년경 근로기준법 위반으로 벌금 100만원을 받았으며, 학교는 노동지방사무소에 93년도 취업규칙을 신고한 것만 보더라도 학교마저도 인사규정은 있으나 주먹구구식으로 기관장들의 인사 청탁에 의해 좌지우지 운영을 하다 보니 남편과 같은 사건이 발생했다. 그러나 사무직급을 아무런 이유 없이 최하 용원직으로 강등 발령한 사례는 없었다고 한다.

학교 총무처는 남편이 입원을 하자 재 발령하겠다고 하면서 쉬면서 기다리라고 하여 기다린 결과 1년6개월 만에 용원직을 기능직으로 명칭만 변경하여 재 발령 했다. 이에 항의하자 총무처장은 다시 재 발령할 것이니 기다려 보라고 하여 기다린 결과 서울지방노동위원회에 전직발령에 대한 진정할 3년의 시효를 넘겨버렸다는 것을 알게 되었으며, 93년 9월경에서야 법원에 소장을 제출하게 되었다.


그러나 학교는 인사고과를 허위로 작성한 공범자 황규복과장을 증인으로 내세워 위증하자 패소했고, 항소심은 강영희 원장의 처조카 김용담이 재판장은 농개원 위임전결규정을 오판하는 방법으로 판결문을 조작해 패소판결을 했다.


그러나 고대 법대교수로 퇴직한 고령의 노 교수님을 소개받아 상담한 결과 “안방에 가면 시어머니 말이 맞고, 부엌에 가면 며느리 말이 맞다.” 라고 하면서 재단이사장 방우영, 송자 총장, 강영희원장 등을 피고로 하여 “임명장에 기한 행정직 확인” 소장을 작성해 주셨다.


원고는 다시 소장을 제출하자, 연세대 소송대리인 최종백변호사는 원고가 직원들과 동등하게 근무했었다는 사실과 대학 전임강사로 예우하여 강사료로 지급한 사실을 숨기기 위해 인사카드의 비고란에 기재된 “ 직원이라기보다는 강사 (364일 직원들과 똑같이 근무하지만 강사료로 지급)” 라는 내용을 고의적으로 삭제한 후 복사된 인사카드를 법원에 제출했다. 필자는 나홀로 소송을 하다가 마지막 변호사를 선임해 대응한 결과 서울서부지원 최춘근 재판장은 “ 피고 학교는 원고에게 행정직급, 32호봉으로 발령하라” 라는 강제조정결정문을 1998. 2. 20. 받아내는데 성공했다.


그러나 학교는 강제조정결정에 응하지 않았다. 재판장은 강제조정에 응하지 않자 농업개발원 강원장과 총무처장들을 강제구인까지 하였다. 그러자 연세대는 “원고에게 소 취하를 하면 합의를 해주겠다.”고 교목실장 박명철목사를 앞세워 회유했다. 필자는 박명철 목사를 믿고 소 취하를 하였으나, 학교는 약속을 지키지 않아 원고는 다시 소송을 할 수밖에 없었다.


1996가합 5834 임명장에기한 사무직확인의 소
1998 2. 20. 강제직권조정, 서부지원 최춘근 재판장
조정문 :피고는 원고에게 행정직 32호봉에 위자료 1천만원을 지급하라.


원고는 10년 전에 제출했던 소장을 다시 제출해야만 했고, 당연히 강영희원장이 1981. 3. 2. ‘일산 삼애농장 부사무장’으로 발령한 발령장 근거로 다시 지위확인 소송을 시도해보았으나 법원은 오직 김용담이 판결한 판결이유로 부당하게 기각을 했다.


  98가합8073임명장에 기한 사무직이행등  재판장 소순무
  99나188833 임명장에기한사무직이행 등  서울고법 재판장 이우근
  2001 다 29381 임명장에기한사무직이행 등  2002. 11. 8. 기각
  재판장 윤재식, 송진훈, 변재승, 이규홍


원고는 다시 2003.경 강영희 원장이 원고에 대한 인사고과를 허위보고한 것을 터 잡아 공동불법행위로 인한 손해배상을 청구해 보았으나 이 역시 김용담이 판결한 판결 이유로 기각을 당했다.


 2003가합 1953손해배상(기)2004.7.30.기각 재판장 임치용
 2004나 62742 손해배상(기) 2007. 6. 5. 기각 재판장 이성보
 2007다 44729 손해배상(기) 2008. 11. 13. 기각 주심 박일환


원고는 김용담이 농업개발원 위임전결규정의 직제규정과 다른 판결을 했다는 사실을 2010. 7. 경 우연히 알게 된 후, 김용담과 강원장을 피고로 2010. 12. 23. 소를 제기한 결과 (2011가합 21766 ) 학교가 법원의 문서제출명령에 의해 2012. 7. 제출한 학교정관의 직인규정 제9조(직인의 사용)에 의해 피고 학교가 소송사기로 승소하였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학교가 제출한 준비서면에 보면, “원고의 고용형태는 정식직원이 아닌 피고법인산하 단위기관장의 재량에 의하여 채용된 임시직의 형태였으며, 잡급직에 해당하는 것이었다.” 라고 변론과 원고의 인사카드를 변조하여 제출하였으며, 위증한 황규복의 증인신문조서를 증거로 제출하여 승소했다.

           그러나 연세대학교 직인규정에 보면,


1) 직인은 소정의 결제과정이 통제가 끝난 문서에 한하여 사용하여야 한다.
2) 직인관수 책임자는 별표 1의 직인 사용대장에 날인할 문서의 관계사항을 기입하여야 한다. 다만, 문서 발송대장 및 제 증명서 발급대장에 기록한 것은 이에 갈음할 수 있다.


그러나 학교는 위 정관의 직인규정에 의하여 농개원 원장이 총장 허락 없이 직인을 사용할 수도, 발령해서도 아니 되는 것이었다. 그럼에도 학교는 장장 20년 동안 “강영희 원장은 원고 이장우에게 사기를 진작시킬 목적으로 강영희 원장이 멋대로 부사무장이라는 명칭을 사용 한 것으로 보인다. ” 라고 사기 변론을 하여 학교가 승소판결을 받았다는 사실을 2012. 7. 알게 되었다.


또한 대법원 판례를 본다면,
"임명장에 확인을 구하는 것은 일종의 법인체 문서이므로 법률행위로써 해석은 당사자가 표시 항에 부여한 객관적 의미를 명백하게 하는 것으로써 즉 (삼애농장 부사무장에 명함)
당사자 간 표시한 문헌에 의하여 그 객관적 의미가 명확하게 들어나지 않는 경우에는 그 문헌의 내용과 법률행위 이루어진 동기 및 경위 당사자 간 그 법률행위에 의하여 달성하려고 하는 목적과 진정한 의사거래의 관행 등을 종합적으로 고찰하여 사회정의와 형평이념에 맞도록 논리와 경험의 법칙 그리고 사회일반의 상식과 거래의 통념에 따라 합리적으로 해석해야 한다고 대법원 판례 1994. 4. 29. 제3부 판결 94다 1142를 볼 적에, 원고는 피고 강영희가 평범한 사무직급에서 부사무장으로 승진시키는 것이라 해서 피고들이 원하는 목적당성에 임하고자 휴가, 휴일도 없이 1인3역의 업무를 충실히 하였으므로 본권 청구는 위 내용과 같이 그 의미가 있으므로 원고는 피고 학교의 사무직원임이 분명합니다. “라고 변론

 

▲     © 사법연대

한 바대로 법률과 대법원 판례에 의해 원고는 이미 학교 승인을 받아 강원장이 부사무장으로 보직발령을 했음으로 최소한 1981. 3. 경부터 정직 사무직원이면 임시직 경력을 승봉해 16호봉으로 급여를 지급해야만 되는 것이었다. 그러나 위 사건 역시 김용담이 판결한 판결문에 의해 기각당하고 말았다.

 

그러나 이럴 경우,
남편의 인사고과를 허위보고한 과실에 대해 손해배상 청구를 했던“ 2007다 44729 손해배상(기) ” 의 사건은 2008. 11. 13. 원고 패소로 확정되었음으로 이 사건을 문제 삼아 다시 손해배상청구를 해야만 했다. 이렇게 확실한 무기 있는데도 불구하고 필자는 학교가 너무나 무섭고 두려워, 남편의 업무상재해만 합의를 해달라고 요구했으나, 끝끝내 학교가 업무상재해마저 거절해 할 수 없이 10년의 시효가 지나가기 전 2018. 9. 경 학교가 소송사기로 승소했다는 이유로 다시 소장을 제출해 서울중앙지법에서 진행 중에 있다.


○ 허위로 작성한 응급진료 한 장으로 학교가 승소하는 법


남편은 근무 중 1997. 9. 16. 추석날 중앙도서관 체크포인트 계단에서 내려오다가 굴러 떨어지는 추락사고로 뇌출혈이 발생하자, 직무상요양신청을 했으나 부당하게 반려했다. 그러나 95부터~ 98년도까지 강영희원장은 학교 부총장으로, 황규복과장은 입학관라처장으로 이충일과장은 총무처장으로 근무하고 있는 반면, 필자는 93년부터 소송을 시작해 계속 진행 중에 있다 보니, 자신들 비리를 파헤치고 있는 남편에게 업무상재해로 인정해 줄 수가 없었다. 즉 재해로 인정할 경우, 남편은 편안하게 병원에서 치료도 받고 정상적인 급여도 받게 된다. 더더욱 추후 악화될 경우, 평생 가족들까지 보장 해는 주는 급여만도 월 500만원이상이다.


이러한 이유로 이충일 총무처장은 사학연금공단에 지급해 주는 직무상요양급여 신청에 승인만 해주면 되는 일도 해 주지 않아 필자는 할 수 없이 2001년 3월경 업무상재해로 인한 손해배상 청구를 했으나, 학교는 세브란스병원의 허위 진단서 및 술 먹고 넘어져 다쳤다고 기록된 응급진료기록을 증거로 제출한 결과 1심에서 패소하였으며, 항소심에서는 최은수 재판장은 증인신문조서에도 없는 말을 만들어 2005. 2. 2. 사기 판결한 결과 2005. 6. 24. 패소로 확정되었다.


최은수재판장이 작성한 2003나24743 판결문 5쪽에 보면,
“ 을18호증의 응급진료기록 기재 및 당심증인 정준섭의 증언만으로는 원고의 위 주장사실을 인정하기에 부족하고 달리 이를 인정할 만한 증거가 없다( 다만, 갑제51호증의 2, 을 18호증의 기재 및 위 정준섭의 증언에 의하면, 위 이장우는 그 당시 음주상태로 체크포인트 옆에 쓰러져 있었는데, 쓰러진 원인은 알 수 없다는 점만 인정될 뿐이다).


판결문에는 오직 “이장우가 체크포인트에서 떨어져 사고를 당했다” 라는 목격자가 없다는 이유로 패소했으므로 세브란스병원에서 급성경막하혈종이라는 진단서만 있었으면 필자가 승소할 수 있었다. 그러나 정준섭 증인은 “술 먹고 넘어진 것은 모른다” 라고 증언을 하였음에도 불구하고 최은수 재판장은 “정준섭 증언에 의하면 원고는 음주상태로 체크포인트 옆에 쓰러져 있었다 ” 라고 판결문마저 조작해 판결을 했다.


2003나24743손해배상(기)2005. 2. 1. 기각 서울고법 재판장 최은수
2005다 19385 손해배상(기)2005. 6. 24. 심리불 속행 기각
 대법관 이강국, 주심 유지담, 대법관 배기원, 김용담
 2007재나 804 손해배상(기) 선고 2009. 9. 10. 기각


원고는 학교가 최은수 판사 앞세워 사기판결을 받았다는 이유로 장여급여 청구했으나 연세대는 2007. 10. 24. 반려를 했으며, 원고는 재차 2009. 5. 경 장애급여청구를 했으나 학교는 다시 반려했다. 그러나 만약 2009. 5. 경이라도  학교가 승인만 했다면 故이장우 그나마 행복한 삶을 살았을 것이고, 유가족들 역시 정상적인 삶을 살았을 것이다. 

결국 최은수 전 재판장은 근무 중 사고는 무조건 업무상재해인데도 불구하고 죽어가는 환자 사건마저 증인신문조서에 없는 말을 만들어 판결문마저 위조해 기각한 결과 남편은 억울하게 사망하게 되었다.


○ 학교가 서울대병원과, 중앙대병원의 허위 감정서로 승소하는 법


원고는 할 수 없이 허위진단서를 작성한 신경외과 하윤의사와 김동석의사를 상대로
2007년 7월경 소송을 하게 되었으며, 이때서야 사고당시 필름을 감정한 결과 서울대학
병원 영상학과 손철호의사는
“ 이 부위는 경막하 혈종의 원인으로 외상이 많은 경우를 차지하고 있다. 다만 확실한 외상과
과거력이 있다면 외상으로 인한 출혈의 가능성이 높다고 하겠다. ”
라고 감정을 하자, 학교측 변호사는 서울대병원은 과거력이 있었다면 외상에 의한 뇌출혈이라
고 하였으며, 중앙대학교병원 감정은 “외상인지, 자발성인지 구별이 어렵다 ” 라고 했음으로
남편은 추락 사고에 의한 뇌출혈이 있었던 것이 아니다 라고 변론하자, 원고가 패소했다


○ 최은수 부장판사 상대로 소송했다가 증거 찿는 법&
            남편이 증거를 찿아 주고 저세상 사람이 되는 법


남편의 웬수를 갚기 위해 사기 판결한 최은수 전 부장판사 상대로 2012. 3. 경부터 소송을  하고 있던 중, 남편은 정신과병원에 입원해 있다가 갑자기 병실에서 넘어지는 사고로 정형외과에 입원하고 있었다. 우연히 의료사고 경험이 있는 사피자를 만나게 되었으며, 이 피해자는 박용의사가 바르게 감정을 잘해준다고 하면서 소개해 주었다. 그 즉시 박용의사가 운영하는 병원으로 남편을 입원 시킨 후, 사고당시 CT필름을 감정한 결과 외상에 의한 뇌출혈이라고 했으며, 이렇게 쉬운 사건을 15년이 걸려야 했냐면서 이해가 안 간다고 했다.


이때부터 CT필름만이 남편의 사고를 입증 할 수 있다는 판단에 대한의사협회와 서울에 있는 대학병원 5개 곳에 억울하게 업무상재해도 인정받지 못해 장장 15년 동안 소송을 하고 있는 남편을 살려달라는 진정서와 함께 CT필름 감정 부탁한다는 공문을 발송했으며, 의사협회까지 달려가 애원을 했다. 이어 고려대 안암병원에 가서도 1인시위로 하면서 감정을 부탁하자, 신경외과 정용구 교수님이 감정을 해주겠다고 했으며, 진단 결과 남편은 외상에 의한 뇌출혈이 있었다는 진단서를 2014. 4. 경 해주었다.


이러한 진단서를 가지고 세월호 사건이 발생된 날, 서울대학병원 응급실을 통해 남편을 204. 4. 16. 입원시켜 놓고 살려내라고 하였다. 그러나 서울대병원은 아무런 잘 못이 없다고 우겨 할 수 없이 소송을 해야만 했고, 이러한 진단서에 의해 학교측에 사죄와 함께 최소한의 피해를 배상하라고 요구했으나 끝내 학교는 거절했다. 결국 남편은 최은수 부장판사가 2005. 2. 2. 사기판결 한 10년이 되는 날 남편은 2015. 2. 2. 사망하게 되었다.   

▲     © 사법연대


그 후 서부지방법원은 신촌세브란스병원에서 작성한 1997. 9. 16. 같은 해 9. 23. 검사한 진단방사선 진료기록 및 CT감정 결과 고려대 안암병원 신경외과 정용구교수, 인제대학교서울백병원 윤상원교수, 박용신경외과의원 박용원장 모두 “급성경막하혈종, 뇌좌상” 이라는 진단서를 해주었다. 더더욱 박용의사 증인은 “ CT필름에서 오른쪽 앞(전두부)에 흰색의 미세한 구름모양의 음영은 출혈을 의미하며(음영증가) 신경외과 전문의사면 누구나 판독이 가능한 음영이라고 하면서 “통상적인 충격으로는 이 정도의 출혈이나 상흔은 일어나지 않으며, 최소한 1m 이상의 높은데서 떨어졌을 때 생길 수 있다”고 증언했다.

▲     © 사법연대


또한 사고 당시 세브란스병원에서 1997. 9. 23. 작성한 진단방사선 진료기록 및 CT감정을 한 결과 고려대 안암병원과 인제대학교 서울백병원, 박용신경외과의원 모두 “급성경막하혈종, 뇌좌상” 이라는 진단을 2014. 4. 경 받았다.  그럼에도 이원신 재판장은 중앙대학교병원 감정과 서울대학교병원 감정만을 증거로 채택해 남편은 근무 중 사고로 인정할 수 없다는 취지로 2018. 2 경 다시 기각판결을 했다.


그러나 돌이켜 보면 남편이 정신과병원에 입원해 있다가 넘어지는 사고로 다리에 골절이 생겨 정형외과병원에 입원했다가 박원장을 만나는 계기가 되었으며, 그 결과 CT필름을 감정하는 법을 알게 되었으니 남편 덕에 진실을 규명할 방법을 알게 되었다.  남편 덕에 이렇게 큰 소리로 “남편은 계단에서 내려오다 굴러 떨어져 다친 뇌출혈 사고다 ” 라고 목소리 높여 외칠 수 있게 되었다.

○ 중앙대학교병원 상대로 소송 하는 법& 확정된 판결을 뒤집는 법


한편, 필자는 이미 중앙대병원의 허위감정으로 2005. 7. 5. 패소로 확정된 사실을 알고 10년이 지나기 전 소장을 제출했으며, 감정채택은 되었으나 채택된 병원마다 감정을 못하겠다고 하여, 할 수 없이 대한의사협회 감정 신청한 결과 채택이 되었다.


그러나 의사협회만 믿고 있을 수가 없고, 최고로 높은 분한테 감정을 받아야 법원이 인정을 해 줄 것 같아, 고 장준하선생도 정의화 전국회의장이 타살이라고 양심 선언하므로 진실이 밝혀졌던 것을 의지하면서, 필자는 정의화 전 국회의장님한테 편지로 호소를 했다. 문서를 보낸 후 부산으로 내려가 가장먼저 정의화 전 국회의장의 기념관을 찿아가 담당자하고 인사를 한 후, 프랑을 들고 호소를 했다. 그런 후 김원묵기념봉생병원으로 달려갔다. 너무나 떨려 눈물짓고 있는 필자를 함께한 임원진들이 필자를 안아주면서 2018. 3. 경 CT감정을 신청한 결과 동 병원 신경외과 이상준 과장은 “이렇게 큰 사고가 있었는데 수술을 안했느냐” 라고 하면서 그 즉시 감정을 해주셨다. 이처럼 하루 만에 감정이 나오는데도 불구하고 대한의사협회는 1년여 동안 고민 끝에 2019. 4. 경 남편은 높은데서 떨어지면서 다친 사고라고 감정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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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에도 중앙대병원에서 감정한 진료기록 감정이 필요하다는 판단에 감정을 신청한 결과 고려대안암병원은 “외상에 의한 뇌출혈” 이라고 2020. 11. 20. 감정이 나왔다.

○ 법 좋아하면 집안 망하는 법 & 하늘은 스스로 돕는 자를 돕는다. 


결국 하늘은 스스로 돕는 자를 돕는다고 하였듯이, 남편의 근무 중 사고에 대해서 의로운 박용신경외과 원장님, 정용구교수님, 윤상원교수님, 이상운의사님 도움으로 술도 못하는 남편에게 술 먹고 넘어진 사고라고 누명 씌워 사망하게 한 학교와 나쁜 스승 강영희 원장을 응징할 수 있게 되었다.


더더욱 남편의 직위 확인 사건도 학교가 자기들 손으로 제출한 직인규정에 의해 학교가 사기변론으로 승소했다는 것을 입증할 수 있게 되었다.


그러나 해마루 법무법인의 사무장 말대로 호봉만 더 받고 94년도에 포기를 했드라면 32년 동안 소송전쟁을 하는 일은 없었다고 내내 후회를 했다. 그리고 왜 사무장이 그런 말을 했는지 10년이 지나서 이해하게 되었다. 그 뿐인가 2001년 9월경 서울고법 이우근재판장은 조정을 권유했다. 노동법상 형식상 임시직으로 채용하였드라도 정식직원과 동등한 근로를 제공했다면 정식 직에 준한 호봉으로 급여를 지급하도록 법률이 정해져 있고 보니, 이우근 재판장은 용원직급을 인정하고 호봉만 정상적으로 받아도 급여가 월 300만원 이상이므로 남편의 직위는 포기하고 합의를 하라고 했다.


그러나 이때도 법이 있는 줄 알고, 남편의 직위는 명예요, 사회적 명예인데 어떻게 직위를 포기할 수 있냐, 진실을 어떻게 포기할 수 있냐! 라고 항의 하면서 거절한 결과 이렇게 긴 싸움을 하게 되었으나, 이때도 조정을 하는 것이 백번 유리했다. 미지급 임금만 3억원 이상이 되었음으로 그 돈으로 집을 샀드라면 돈 걱정 없이, 아이들이 편안한 마음으로 학업에만 열중하였을 것이다. 


아들은 “엄마 내가 얼마나 울었는지 알어, 백번도 더 울었어” 라고 몇 년 전에서야 처음으로 고백했다. 그럼에도 학교는 남편이 사망하자, 이젠 아들과 필자를 잡겠다고 남편 병원비용 4천만원에 대해 아들이 거래하는 은행마다 압류하고, 신용불량자로 등재하자 아들 카드는 중지되고, 신용등급은 하락하여 월 500만원 한도였던 것이 월 50만원으로 추락했다. 그것도 국제결혼까지 하면서 딸이 사준 문산 집에 근저당설정을 해주고서야 풀어주었다. 이젠 달달 30만원씩 납부하지 않는다고 강제경매를 신청해 현재 진행 중에 있다. 이처럼 수단과 방법을 안 가리고 필자 가족들이 스스로 자살하도록 자살테러를 하고 있다.


선생님으로 근무했다는 증거들이 넘쳐 나지만 95%의 진실이 5%의 가짜가 돈 쓰고 빽쓰면 승소하는 것이 사법부 현주소이고 보니 이렇게 단순한 사건도 학교 손으로 설립한 전문지도자 양성교육기관을 수료하고 모교에서 12년을 근무했는데도 판사들은 법을 위반해 모두 김용담 사기판결문만 앞세워 기각했다. 필자의 사건을 통해 판사들이 얼마나 멋대로 판결하는지 보여 주고 싶었다.


32년 동안 패소에 패소를 거듭하고 있는 것을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 진리와 자유를 지켜내야 할 최고의 명문사학이 허위문서 제출과 황당하기 짝이 없는 위증이 “재판의 기술”이 될 수 있다는 반증이다. 담당판사는 법을 위반해 사기판결 해주면 된다.


결국 32년 동안 소송전쟁을 한 결과 나의 삶과 가정은 연세대학의 불법과 횡포에 풍비박산이 났으며, 피폐해질 대로 피폐해졌다. 그렇지만 나는 골리앗의 불의에 무릎을 끓을 수 없어 진실 싸움을 계속하였고, 2021년 현재에도 그 싸움은 여전히 진행 중이다.


다만, 얻어진 것은 “소송사기로 승소하는 법”을 온 국민들에게 자랑할 수 있게 되었다. 내 머리도 못 깎는 주제에 변호사도 아닌 주제에 대법원까지 확정된 사피자를 구조한다고 잘 난 척( 나는 허가 난 깡패 총짱이다. “아무도 못 잡는 시민단체 단장” ) 하다가 옥살이한 덕에 판결문을 해석할만한 실력을 갖추게 한 것 역시, 그들이(공권력)이 날 잡으려 했기 때문에 실력을 쌓게 되었다고 본다.


본문 중에 나오는 이야기를 통해, 기독교 정신을 바탕으로 진리와 자유의 뜻을 따라 겨레와 인류에 이바지할 사람을 가르치기 위해 세워진 진리의 전당 배움터에서, 그것도 “널리 은혜를 베풀어 대중을 구조한다” 는 박시제중의 세브란스 정신마저 유린한 체, 병들어 죽어가는 모교출신 교직원을 갔다버리는 만행을 서슴치 않았던 스승과 세브란스병원 의사들의 단합된 집단폭행으로 사망하도록 한 가해자 연세대학교 집행부처럼, 나쁜 스승 강영희원장처럼, 김용담 전 대법관이자 새문안교회 장로처럼 사악하고 파렴치한자들이 이 땅에 더 이상 버티지 못하도록 시민들이 응징해 주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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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21/07/03 [12:44]  최종편집: ⓒ yeslaw.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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