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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내부고발자는 영원한 주홍글씨
그 내부고발자는 영원한 주홍글씨
사법연대 기사입력  2019/03/10 [10:41]

JTBC 드라마 '미스 함무라비'의 수많은 에피소드 중에서도 내 뼈를 때린 건 공익신고자 이야기였다. 부장의 성희롱을 증언한 김다인이 내부고발자로 찍혀 해고되고, 청탁을 받은 선배를 고발한 박차오름은 모두의 손가락질을 받는다. 현실의 군상들과 드라마 속 인물들은 엄연히 다른지라, 김다인은 기자가 되어 정의를 구현하고 박차오름의 징계도 철회되는 훈훈한 결말을 맞이하긴 한다.

 

드라마 엔딩처럼 현실도 아름다우면 좋겠지만, 한국은 여전히 공익신고자들의 무덤이다.

 

2011년 민간부문의 공익침해행위를 규제하기 위해 ‘공익신고자 보호법’이 제정되긴 했다. 해당 법에 따르면 국민권익위원회(이하 권익위)는 공익신고자를 보호하기 위한 다양한 조치를 이행해야 한다. 그러나 아직은 역부족이다. 최순실 국정농단 사건이 수면위로 드러나는 동안 단 한 건의 공익신고도 없었다는 사실이 이를 증명한다. 작은 용기마저도 사그러뜨릴만큼 보복조치는 매섭고 거세다.

 

이런 문제의식을 기반으로 문재인 정부는 2017년 6월 27일, 공익신고자 보호 강화 방안을 발표했고, 8월 22일에는 안민석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개정안을 발의하기도 했다. 그 결과물의 집합이 2017년 9월 28일 국회 본회의를 통과된 공익신고자 보호법 개정안이다. 그렇다면 해당 개정안으로 공익신고자들은 얼마나 보호받을수 있게 될까.

 

#1. 너, 이름이 뭐니?

공익신고를 결심할 때 가장 처음 넘어야 할 산이 바로 실명 원칙이다. 공익신고자 보호법 8조 1항에 따르면 이름, 주민등록번호, 주소 및 연락처 등 인적사항을 적어야만 공익신고가 가능하다. 문제는 조사 과정에서 신변이 고스란히 노출된다는 점이다. 2013년, 영훈국제중학교 부정입학 비리를 제보한 학부모는 수사 조서를 쓰면서부터 실명이 공개됐다. 판사 역시 재판을 비공개로 해주겠다는 약속을 지키지 않았다. 재판 당사자인 학교 측 관계자들이 법정에 들어와 그녀의 얼굴을 똑똑히 확인했다. 피해는 고스란히 학교에 다니고 있던 딸에게 돌아갔다.

 

신분 노출에 대한 처벌 조항은 있다. 수위도 생각보다 높다. 공익신고자 보호법 30조 1항은 “피신고자의 인적사항 등을 포함한 신고내용을 공개한 자를 3년 이하의 징역과 3천만 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라고 규정하고 있다. 해당 조항은 이번 개정안에 포함돼 3년에서 5년 이하의 징역으로, 3천만 원에서 5천만 원 이하의 벌금으로 상향 조정됐다. 문제는 영훈국제중학교 사례처럼 고의적으로 신분을 노출한 사람이 없는 경우다. 현행 시스템에서는 단 한 사람만 신분을 노출해도 모두가 알 수밖에 없다. 비밀유지를 위해선 사실상 익명제보가 가능해져야 한다.

 

2017년 11월 14일, 참여연대 공익제보지원센터와 더불어민주당 이학영 국회의원의 주최로 ‘공익제보자 보호 강화를 위한 입법 방안 모색 정책토론회’가 열렸다. 토론회에 참여한 참여연대 이상희 변호사는 신분 보호를 위해 8조(공익신고 방법) 4항 신설을 제안했다. 변호사를 통한 대리 제보를 허용해 공익신고자가 전면에 나서지 않고도 소송을 진행할 수 있는 방안이다.

 

8조 4항 신설안
“신분보호를 위해 익명을 원할 경우, 변호사가 신고자를 익명으로 대리할 수 있다. 신고받은 자 또는 기관은 공익신고자에 대한 별도의 조사가 필요한 경우를 제외하면 변호사와 논의하여야 한다”


변호사를 선임할 여력이 없는 이들은 어떻게 할까. 취재원을 보호해 줄 언론사를 찾아 제보하면 된다. 하지만 여기까지다. 현행법상 공익신고가 가능한 기관에 언론사는 포함되지 않는다. 즉, 공익신고자 보호법안에 명시된 보호조치를 받을 수 없다는 얘기다.

 

게다가 “공익신고의 내용이 언론매체 등을 통하여 공개된 내용에 해당하고 공개된 내용 외에 새로운 증거가 없는 경우(10조 5항)”에는 조사를 하지 않거나 중단하고 끝낼 수 있다. 현대차의 엔진 결함 은폐의혹을 제기한 김 씨도 공익신고자로 인정받기 위해 국토교통부와 국민권익위원회에 결함 의심 사안 32건을 따로 제보했다. 공익신고의 수월성을 높이려면 공익신고자 보호법 8조 1항에 명시된 공익신고기관에 언론사도 포함하는 개정안을 고민해야 한다.

 

#2. 골리앗이랑 어떻게 싸울래?

공익신고 잔혹사는 이제부터 시작이다. 공익신고자들의 신분이 노출되면 남은 건 보복이다. 권익위는 징계나 해고 등에 대해 면제를 요구함으로써 신고자를 보호한다. 이에 맞서는 골리앗의 무기는 바로 ‘소송'이다. 권익위의 보호조치 결정에 불복해 지루한 소송을 이어가면서 내부고발자들의 에너지를 소진시킨다.

 

KT 직원이었던 이 씨의 이야길 들어보자. 때는 2012년. KT가 '제주 세계 7대 자연경관 전화투표'를 진행했을 때다. KT는 당시 해외 전화망에 접속하지 않았음에도 소비자들에게 국제전화 요금을 청구했다. 이 씨는 해당 사실을 세상에 알렸지만, 회사는 무단결근과 근무지 무단이탈을 이유로 이 씨를 해임하기에 이른다. 권익위도 가만히 있진 않았다. KT에 이 씨의 해임 취소를 요구했다. KT는 이에 불복해 사건을 대법원까지 끌고 갔다. 대법원은 1심, 2심처럼 해고 처분을 취소한다는 원심을 확정해 이 씨의 손을 들어줬다. 현대차의 결함을 제보한 김 씨도 행정소송과 보호조치 미흡 등으로 복직 한 달 만에 퇴사하고 말았다.

 


‘공익신고->보복->침묵->사고’라는 사이클이 반복되지 않으려면 내부제보만 전담하는 기관을 신설해 사건을 빠르게 처리할 필요가 있다. 내부제보실천운동 백찬홍 상임대표에 따르면 캐나다는 고참급 법관 7~8명이 사안을 신속하게 처리한다고 한다. 호루라기 재단 이지문 이사 역시 “캐나다처럼 내부고발자 전담 법원을 만들어 신속 구제를 제도적으로 뒷받침할 필요가 있다”고 밝힌 바 있다.

 

#3. 뭐 먹고살라고?

소송하다 보면 먹고살 길이 막막해진다. 호루라기 재단이 발행한 ‘내부공익신고자 인권실태 조사보고서에 따르면 대다수 공익신고자가 소송이나 해고 등으로 실직 기간이 길어지면서 가족과 갈등을 겪는다고 한다. 안정적으로 삶을 이어가기 위해선 현실적인 액수의 구조금이 지급되어야 하지만 상황은 여의치 않다.

 

구조금 제도가 시행된 2011년부터 2017년 2월까지 공익신고자에 대한 구조금 지급은 고작 4건, 그것도 총 102만 4800원에 그쳤다. 한 사람당 25만 원꼴에 불과하다. 월급은커녕 한 달 용돈도 안 되는 금액이다. 누가 회사를 뛰쳐나올 각오로 공익신고를 하겠는가.

 

 

구조금 지급 여건이 나아졌으니 그나마 다행이라고 해야 할까. 통과된 개정안은 “긴급한 필요가 인정되는 경우에는 보상심의위원회의 심의·의결 이전에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바에 따라 구조금을 우선 지급할 수 있다”고 명문화했다. 복잡한 절차가 진행되는 동안 생계에 어려움을 겪지 않게 하겠다는 취지다. 생계가 어려워진 이들에게 25만 원이 얼마나 큰 도움이 될지는 미지수지만 말이다.

 

오히려 민간 재단의 도움을 받는 게 수월할지도 모르겠다. 참여연대 공익신고지원센터는 공익신고자 지원 기금인 '의인 기금'을 조성해 운영하고 있으며, 호루라기 재단은 생계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 공익신고자에게 매년 2000만 원 이내의 생활지원금을 지급하고 있다. 적어도 이러한 민간 기금보다는 정부의 지원이 더 든든하게 느껴져야 할 텐데 현재 상황은 정반대다.

 

#4. 해도 그만, 안 해도 그만 아냐?

공익신고자들은 안정적인 일자리를, 평온했던 삶을 깨뜨리면서까지 공익신고를 결심한 사람들이다. 정부도, 기업도, 국민도 이들로 인해 직, 간접적인 이익을 얻는다. 이들로 인해 증진된 공공의 이익은 돈으로 환산하기 힘든 가치를 지닌다. 그만큼 적절한 보상금과 포상은 필수다. 결정적으로 예비 공익신고자들의 신고를 이끌어내는 중요한 요인이 될 수도 있다. 현재 권익위가 제시한 보상기준은 다음과 같다.

공익신고자가 100억 단위의 입찰 담합을 신고한 경우 국가는 10% 정도인 10억 원가량을 환수할 수 있다. (공정거래법상 담합 기간에 발생한 매출액의 10%까지 과징금으로 부과하고 사정에 따라 조정할 수 있다) 이를 신고한 공익신고자는 얼마의 보상금을 받게 될까. 1억 2000만 원 남짓이다. 공익신고자로 낙인찍히고, 직장에서 쫓겨나는 대가 치고는 소소한 액수다. 비리를 묵과하고 직장을 계속 다니며 만들 수 있는 미래 수익이 더 크기 때문이다.

 

미국은 어떠한가. 2009년 글로벌 제약회사인 화이자의 부정행위를 고발한 공익신고자는 6년에 걸친 법정 다툼 끝에 약 638억 원의 보상금을 받게 됐다. 화이자의 벌금이 2조에 달한 탓도 있지만 그 가운데 30%를 공익신고자의 몫으로 인정한 미국 정부의 공이 컸다.

 

2017년 9월, 서울시는 조례를 개정해 공익신고로 인해 재정이 회복되거나 증가될 경우 해당 금액의 30%를 한도 없이 보상금으로 지급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나아가 권익위에는 20억으로 제한된 보상액 한도를 폐지하자는 제안을 하기도 했다. 국가 차원에서도 서울시의 조례를 반면교사 삼을 필요가 있다.

 

#5. 풀은 바람보다 먼저 일어난다

 

(사진 출처=영화 ‘더 킹’)

 

쓴소리 만렙 검사를 기억하는가. 10여 년 간 검찰 비판글을 꾸준히 게재한 임은정 서울 북부지검 부부장 검사 말이다. 일명 도가니 검사로 유명해진 그는 영화 ‘더킹’에 등장한 안희연 검사 역의 실존 인물이기도 하다. 성추행이나 각종 부정부패 등 검사들의 추악한 비행에 대해 자정을 요구하기도 했고, 소신대로 사건을 처리했다가 퇴출 후보 검사 리스트에 오르기도 했다. 검사라는 특수성만 제외한다면 직장에서 쫓겨나지 않고 버티고 있는 ‘공익신고자'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녀는 최근 한겨레와의 인터뷰(임은정 “괴물 잡겠다고 검사됐는데 우리가 괴물이더라”)를 통해 ‘너무 힘듭니다, 견디겠습니다만, 너무 힘듭니다’ 하고 신에게 하소연했던 사실을 털어놓았다. 친한 동료들마저 자신과 연락하길 주저한다는 이야길 들을 때는 정말 외로웠다는 이야기와 함께.

 

현직 검사의 이야길 길게 덧붙인 이유는 하나다. 법에 빠삭한 검사도 쉽지 않은 일을 결심한 공익신고자들의 분투에 박수를 보내기 위해서다. 조직 안팎에서 도덕적 저항을 멈추지 않는 이들에게 임은정 검사의 말을 전한다. “풀숲에서 몸을 일으키는 동료들의 소리가 들린다. 바람이 일기 시작했다.” 세상의 바람이 바뀌고 있다. 2017년 10월 31일, 대법원은 임은정 검사에 대한 정직 처분이 부당하다는 판결을 내렸다.

 

참고   

공익신고자 보호법 및 부패방지법 내 공익신고자 보호조항 개정을 위한 정책토론회 자료집 (20131004)
[갈 길 먼 공익제보] 익명으로는 제보 불가능… 구조금 쥐꼬
[인터뷰] “리콜 은폐 고발, 현대차 위한 결정” 

 
기사입력: 2019/03/10 [10:41]  최종편집: ⓒ yeslaw.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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