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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이 옳은가
무엇이 옳은가
사법연대 기사입력  2017/12/30 [07:22]
 

우리는 살면서 ‘무엇이 옳은가’ 쉽게 결정할 수 없는 다양한 질문들과 마주합니다. 불임 부부를 위해 대리모 출산을 허용해야 하는가, 생명을 위협받는 난민에게 국경을 열어야 하는가, 환자가 원하면 안락사를 허용해야 하는가와 같은 물음들이 바로 그렇습니다.

 

영화 <레미제라블>의 주인공 장발장의 사연도 우리를 혼란스럽게 만듭니다. 굶주린 조카를 위해 빵 한 조각을 훔친 장발장, 그에게 내려진 19년의 노역은 정당하다고 생각하시나요?

 

 

 

 너는 영원한 24601

 

19년 만에 가석방으로 풀려난 장발장, 드디어 세상에 나왔다는 생각에 큰 희망으로 부풀었습니다. 그러나 죄수로 낙인찍힌 그를 받아준 사람은 마리엘 신부뿐이었습니다. 어려울 때 손을 내밀어준 신부의 은 워 하기는커녕, 그는 은식기를 훔쳐 달아납니다. 다시 감옥에 갈 위기에 처한 장발장, 신부는 은식기를 선물로 줬다며 장발장에게 자비를 베풉니다. 장발장 인생에 파장을 일으킨 이 사건으로 그는 마음을 고쳐먹고 새 사람이 되기로 결심합니다. 과연 그는 어두운 과거에서 벗어날 수 있었을까요?

 

몇 년 후, 장발장은 거짓말처럼 다른 모습이 되어 있었습니다. 시장이자 기업가로 성공한 그는 마들렌이라는 새로운 이름으로 새로운 삶을 시작합니다. 하지만 기쁨도 잠시, 범죄자는 반드시 처벌받아야 한다는 정의감에 불타는 자베르 경감의 등장으로 모든 게 흔들리기 시작합니다.

 

저 창녀가 나를 때렸어요

 

캄캄한 밤, 골목길을 걷던 자베르는 요란한 소리에 발길을 멈춥니다. 그곳에는 까까머리에 꾀죄죄한 모습을 하고 있는 가녀린 여자 판틴과 그녀에게 맞았다고 소리치는 건장한 남자가 있었습니다. 판틴의 말을 들어보지도 않고 자베르는 말합니다. 이 여자를 데려가 법의 심판을 받게 하겠다고. 이 말을 듣자마자 판틴은 겁에 떨며 어린 딸이 있다며 연정에 호소합니다.

 

뿌린 대로 거두는 게 주님의 뜻이다

 

감옥이 아니라 먼저 의사에게 데려가야 할 것 같소

 

다행히 그때 판틴 앞에 장발장이 나타나 여자를 병원으로 데려갑니다.

 

 

 

나는 누구인가?

 

그리고 다음날, 장발장은 충격적인 소식을 듣습니다. ‘장발장이 잡혔다!’ 그는 깊은 갈등에 빠집니다. 지금까지의 성공을 버리고 자백할 것인가, 아니면 모르는 척할 것인가?

 

내가 장발장이다

 

결국, 양심에 따라 자백을 선택했습니다. 감옥에 가기 전, 판틴이 무사한지 살펴보아야 한다는 생각에 장발장은 병원으로 자신을 잡으러 오라는 말을 남기고 법정을 떠납니다. ‘코제트를 지켜주세요’. 안타깝게도 판틴은 마지막 말을 남기고, 장발장의 품에서 숨을 거둡니다. 슬픔도 잠시, 장발장을 잡기 위해 자베르가 나타나며 장발장은 또다시 위기에 처합니다.

 

이 여자의 아이를 돌 볼 사람이 나 밖에 없어
사흘만 말미를 주게, 꼭 돌아온다고 약속 하지

 

너 같은 놈은 결코 변하지 않아

 

자신을 믿어주지 않는 자베르 때문에 장발장은 또다시 도망자 신세가 됩니다.

 

 

 

천국과 지옥, 너는 어디에서 온 자인가?

 

그로부터 8년 후, 프랑스는 극도로 혼란에 빠집니다. 왕정에 불만을 품은 사람들은 ‘6월 혁명’을 준비하고, 그러던 중 판틴이 남기고 떠난 딸 코제트는 우연히 만난 혁명군 청년 마리우스와 사랑에 빠집니다. 이 사실을 알게 된 장발장은 자베르가 또다시 나타났다는 사실에도 불구하고, 마리우스를 구하러 시위대로 몸을 돌립니다. 혁명군이 쳐 놓은 바리케이드에서는 ‘탕’ 총소리와 함께 우려했던 일이 벌어집니다. 장발장은 정부군 총에 맞아 쓰러진 마리우스를 짊어집니다. 하수구만 무사히 빠져나가면 되는 상황, 그 앞에 영원한 숙적 자베르가 나타납니다. 혁명군에게 목숨을 잃을 뻔 한 자신을 장발 구해 줬음에도 그는 여전히 장발장의 뒤를 쫓고 있었습니다.

 

자네가 올 줄 알았어. 이 청년은 죄가 없어. 빨리 병원에 데려가야 해
또 자비를 말하는 군. 정의가 먼저야!
이 청년이 죽어가고 있다고!

 

팽팽한 신경전, 장발장은 어떻게 됐을까요?

 

 

장발장은 왜 빵을 훔쳤을까?

 

장발장이 살았던 때는 그야말로 혼란의 시대였습니다. 1789년, 끝도 없이 치솟는 물가에 사람들은 끼니조차 채울 수 없었습니다. 길거리는 누더기를 걸친 부랑자들로 가득했고, 낭만의 도시 파리는 굶주림의 도시가 되어버렸습니다. 더 이상 참을 수 없었던 시민들은 ‘자유, 평등, 박애’를 외치며 프랑스혁명을 일으킵니다. 혁명 후에 모든 것이 바뀔 거라던 사람들의 꿈은 희망 사항에 불과했습니다. 사람들은 여전히 가난에 신음했고, 국내 정치는 권력을 잡으려는 사람들로 다툼이 번져나갔습니다.

 

 

당시 정권을 잡았던 로베스피에르는 물가를 잡기 위해 최고가격제를 실시했지만, 악명 높은 공포 정치로 오래 버티지 못하고 자리에서 내려옵니다. 조금 안정되나 싶었던 물가는 그가 실각한 후 다시 걷잡을 수 없을 정도로 치솟습니다. 이렇게 또다시 굶주림의 시대가 찾아왔습니다. 자신이 가진 돈으로는 빵 한 조각 사기 힘들어지자 결국 장발장은 남의 물건에 손을 댄 겁니다.

 

 

정의의 여신, 디케의 눈을 풀어라

 

이탈리아에서 현대판 장발장으로 불릴만한 사건이 있었습니다. 2011년, 이탈리아 북부에 살던 로만 오스트리아 코프 씨는 슈퍼마켓에서 4.07유로(약 5,100원)가량의 치즈와 소시지를 훔치다 걸려 경찰에 체포됐습니다. 그가 저지른 일은 명백한 절도죄로 당연히 형을 살고 벌금을 내야 했지만, 최종 판결이 나기까지 5년이 걸렸습니다. 도대체 왜 그랬을까요?

 

 

이탈리아 법원은 그가 저지른 죄가 아니라 죄를 저지른 배경에 초점을 맞췄습니다. 죄로 보면 징역 6개월과 벌금 100유로(약 127,000원)를 내야 하지만, 죄를 짓게 된 상황을 되돌아보면 그럴 수밖에 없었던 이유가 있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지난 5월, 이탈리아 대법원은 원심을 뒤집고 무죄 판결을 내렸습니다. 대법원이 무죄라고 발표한 이유는 무엇일까요?

 

“노숙자가 영양 섭취라는 필수 욕구를 충족하기 위해 소량의 음식을 훔친 것은 범죄에 해당하지 않는다. 먹지 않으면 생명을 유지할 수 없을 정도였던 만큼, 피고의 행위엔 불가피성이 있었다

 

굶주린 자가 음식을 훔친 것은 죄가 아니라는 이탈리아 대법원. 재산권보다 생존권이 우선이라는 가치를 보여줬습니다. 만약 장발장이 우리나라에서 빵을 훔쳤다면 어떻게 됐을까요?

 

불이 꺼진 분식집, 배가 고픈 남자는 몰래 가게 문을 엽니다. 일단 라면 2개를 끓여 배를 채우고, 2만 원 상당의 동전 뭉치와 라면 10개를 훔쳤습니다. 또 다른 사람은 너무나 배가 고픈 나머지 다른 사람의 배추밭에 들어가 배추 2포기를 뽑았습니다.

 

이 두 절도범, 어떻게 됐을까요? 법원은 두 명 모두에게 징역 3년 6개월이라는 중형을 선고했습니다. 이들의 형량이 이렇게까지 가혹했던 이유는 상습 절도를 저지른 사람을 중형에 처하도록 한 특정범죄가중처벌법 때문입니다. 이 법에 따르면 비록 라면 2개일뿐이라도 두 번 이상 절도로 붙잡힐경우, 최소 6년 이상 실형을 받게 됩니다. 징역 5년 이상인 살인죄보다도 생계형 절도 범죄의 형량이 높아지는 셈입니다. 이 때문에 지은 죄에 비해 형량이 가혹하다 하여 한국의 ‘장발장 법’이라고 불립니다. 우리의 상식을 벗어나는 ‘장발장 법’, 2015년 인간의 존엄성과 가치를 보장하는 헌법의 기본 원리에 위배된다는 헌법재판소의 판결 35년 만에 사라졌습니다.

 

하지만 생계형 범죄라 하더라도 이탈리아처럼 무죄를 받을 수 있는 건 아닙니다. 가중처벌이 사라졌을 뿐, 여전히 형사처벌을 받아야 하기 때문입니다. 형법 329조에 따르면 절도는 6년 이하의 징역 또는 1천 만원 이하의 벌금을 내도록 되어 있습니다. 다행히 올해부터 우리나라도 현대판 장발장을 막기 위해, 경찰서에 경미범죄위원회를 열어 생계형 범죄일 경우 사안에 따라 훈방조치로 끝낼 수 있도록 하고 있습니다.

 

타락한 자들은 반드시 대가를 치러야만 해

 

자베르 경감이라면 이러한 상황을 도저히 용납하지 못할 것입니다. 그에게 법이란 절대적인 삶의 지침이자, 세상을 유지하는 믿음이었기 때문입니다. 법은 우리 삶 전체에 영향을 미칩니다. 하지만 법이 곧 절대적인 정의라고 말할 수 있을까요? 도서 <법의 지도>의 저자 최승필 교수는 말합니다.

 

공정함을 위해서 정의의 여신 디케가 눈을 가렸지만,
그러다 보니 기계적인 정의가 되어버렸다. 우리가 맞닥뜨리는 현실의 삶은 기계가 고려하지 못하는 감정과 정서와 같은 요소들이 많다.
오히려 우리의 삶을 판단하기 위해서는 이제 디케의 천을 풀어야 한다

 

법은 우리가 합의한 사회의 가치를 실현시키기 위한 도구입니다. 시대에 따라 가치가 변한다면, 법 역시 변해야 한다는 의미입니다.

 

 

결국 레미제라블은 자베르다

 

다시 영화로 돌아와 봅시다. 목숨을 걸고 끝까지 마리우스를 살려 내려는 장발장 앞에 결국 자베르는 무너져 내립니다. 법이 절대적이라고 믿었던 자베르는 생명을 우선시하는 장발장의 모습에 신념이 흔들리기 시작했고, 결국 다리 아래로 몸을 던집니다.

 

 

불쌍한 사람이라는 의미의 ‘레미제라블’. 당신은 누가 가장 불쌍하다고 생각합니까? 이어령 교수는 말합니다.

 

모두들 코제트나 판틴이라 생각하지만, 알고 보면 법 아니면 아무것도 모르던,
융통성이라곤 전혀 없던 자베르도 불쌍한 사람 아닌가

 

법의 노예였던 자베르, 죽기 전에서야 자신의 신념이 옳았는가에 대해 자문합니다. 법이 삶에 절대적인 기준이 아니었다는 것을 알았더라면, 법이 무엇을 위해 있어야 하는지 생각했었더라면, 자베르의 삶은 랐을까요?


 
기사입력: 2017/12/30 [07:22]  최종편집: ⓒ yeslaw.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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