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엠비씨를 정정보도하라 !( 생태계 사랑)
사법연대 기사입력  2009/12/17 [20:24]

겁쟁이며 사람을 가장 무서워하는 야생동물이다.
어미 배속에서 새로 나온 갓난 새끼들은 매우 예쁘고 귀여운데 놀랄 만큼 겁이 많아서 지극히 작은 소리 또는 나무 부러지는 소리에도 놀라거나 어미에게 달려가 보호를 청하며 무성한 잡초와 넌출 속으로 숨으며 항상 어미 배 밑으로 모여 서로 엉덩이를 맞대고 주둥이를 팔방으로 향한다.”

1965년 문교부가 펴낸 <한국동식물도감 포유류 편>에서 이토록 귀엽게 묘사한 동물은 다름 아닌 ‘멧돼지’. 최근 도심에 자주 나타나 시민을 놀라게 하고 시골에서는 농민이 애써 가꾼 논밭을 망쳐 ‘공공의 적’이 된 동물이다.

   
ⓒ한국사진기자회 제공
지난 10월26일 부산의 한 아파트 단지 앞에서 총에 맞은 멧돼지 한 마리가 달아나고 있다.

해마다 가을·겨울이면 먹이를 찾아 인간이 사는 마을로 내려와 방송 뉴스를 장식하던 멧돼지가 올 연말에는 더 뜨거운 화제로 떠올랐다. 12월6일 첫 방송된 MBC 예능 프로그램 <일요일 일요일 밤에>의 새 코너 ‘헌터스’ 때문이다. ‘헌터스’는 이휘재·김현중·구하라 같은 연예인들이 전문 사냥꾼과 함께 산속의 멧돼지를 잡으러 나서는 프로그램이다. ‘양심 냉장고’와 <느낌표>를 만들어 ‘쌀집 아저씨’로 유명한 MBC 김영희 PD가 총책임을 맡았다. 김 PD는 한 언론 인터뷰에서 “멧돼지를 잡으러 가면서 누가 앞장설지 게임으로 정하고, 멧돼지 포획을 위한 체력 훈련 모습을 보여주면서 예능적인 재미를 줄 거다”라고 프로그램 내용을 밝혔다.

‘헌터스’ 방송 계획이 알려지자 반발이 만만치 않았다. 환경운동연합과 동물보호시민단체 카라, 풀꽃세상을위한모임과 불교환경연대, 한국여성민우회 등 19개 환경·동물보호·생명·불교·여성 단체가 공동대책위원회(공대위)를 꾸리고 ‘헌터스’ 제작·방송을 중단하라고 요구했다. “인간과 동물의 공존에 대한 진지한 고민 없이 만든 텔레비전 프로그램이 ‘피해를 끼친 생명은 죽여도 된다’라는 생명 경시 풍조를 낳을 수 있다”라는 것이다. ‘헌터스’ 제작팀은 “멧돼지를 필두로 생태계 파괴에 대해 경고하고 멧돼지 피해를 입은 농민의 애환을 달래준다”라는 기획 취지를 내세우고 코너명 앞에 ‘생태 구조단’이라는 단어까지 붙였지만, 공대위는 ‘헌터스’가 사실상 “생명을 죽이는 행위를 오락화하는 사냥놀이 프로그램”이라며 비판했다. 

“귀한 동물도 아닌데 살려둘 필요 없다”

멧돼지 개체 수를 줄이기 위해 수렵을 확대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한국야생동식물보호관리협회 문태국 본부장도 ‘헌터스’ 방영에 반대했다. “뉴스나 시사 프로그램이라면 몰라도 오락 프로그램에서 멧돼지 피해를 노리갯감으로 삼아선 안 된다. 더구나 멧돼지는 2km 밖에서도 사람 냄새를 맡으면 도망가는 동물인데, 연예인과 제작 스태프가 몰려가서 멧돼지를 잡는다는 건 연출로 이뤄질 수밖에 없다.”

쏟아지는 비판에 대해 김 PD는 “많은 것이 오해에서 비롯됐다. 일단 방송을 보고 나서 판단해달라”라고 말했다. 또 김 PD는 “멧돼지를 잡긴 하되 죽이진 않으며, 제목으로 쓰인 ‘헌터스’ 또한 ‘사냥꾼’이라는 뜻보다는 ‘무엇인가를 찾아다니는 사람’의 뜻으로 이해해야 한다”라고 말했다.

   
12월3일 환경·동물보호·생명·불교·여성 단체가 MBC 앞에서 ‘헌터스’ 방송 계획 폐기를 요구하고 있다.

멧돼지로 인한 피해가 심각한 건 사실이다. 지난 10월 22일 강원도 춘천시 한복판에 멧돼지가 돌아다녀 시민을 놀라게 했고, 23일에는 경기도 광주시 한 국도에서 멧돼지와 승합차가 충돌했다. 11월17일에는 굶주린 멧돼지가 대전 시내 식당으로 돌진했고, 25일에는 경기도 양주시에서 성묘를 다녀오던 마을 주민이 멧돼지에게 허벅지와 엉덩이를 물렸다. 도시보다 더 심각한 곳은 농촌이다. 고구마·감자·옥수수·콩 같은 농작물을 다 좋아하는 멧돼지가 지난 한 해에만 56억여 원(환경부 추산)에 이르는 재산상 피해를 농가에 입혔다.

곳곳에서 민원이 제기되자 환경부는 지난 11월6일 멧돼지 대책을 발표했다. 골자는 멧돼지 개체 수 줄이기. 전국 19개 시·군 수렵장(합법적으로 야생동물 사냥을 할 수 있는 곳)에서 멧돼지 포획 개체 수를 당초 8063마리에서 2만 마리로 두 배 이상 늘렸다. “멧돼지의 적정 서식 밀도는 1㎢당 1.1마리인데(2007년 기준) 3.8마리로 정상 범위를 크게 넘어섰다”라는 국립환경과학원의 연구 결과를 반영한 것이다.

하지만 환경·동물 보호단체는 멧돼지 문제에 단순하게 접근해서는 안 된다고 말한다. 이들은 멧돼지가 산에서 자꾸 내려오는 이유가 단순히 개체 수가 늘었기 때문만은 아니라고 분석한다. 서식지가 도로·도시 확장으로 단절돼 파편화되고, 산이 키 작은 식물들로 빽빽해지면서 먹이 활동이 불편해지고, 먹이인 도토리·칡을 사람들이 자꾸 빼앗아 먹어 멧돼지가 ‘울며 겨자 먹기’로 마을을 기웃거릴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농촌의 멧돼지 피해도 다른 방식으로 풀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일요일 일요일밤>의 시청률을 끌어올리기 위해 긴급 투입된 쌀집아저씨 김영희 PD.
프랑스에서는 산에 방목한 양떼를 잡아먹는 늑대가 양치기들의 생계를 위협하자, 정부가 피해 목장 보상금으로 6년간 83만5300달러를 쓰고 방목장 주변에 특수견을 배치했다. 우리나라에서도 각 지자체가 야생동물 피해 조례안을 만들어 멧돼지 피해를 보상해주고 있기는 하지만 “피해 면적 330㎡, 피해액 20만 원 이상”과 같은 최소 보상 기준 때문에 작은 텃밭을 일궈 생계를 꾸리는 시골 노인들은 가슴만 치고 앉아 있을 수밖에 없다.

“멧돼지로 인한 농가의 피해를 살펴보고 농민의 애환을 직접 들어본다”라고 밝힌 만큼 ‘헌터스’가 바로 이 같은 영세 농민을 도와주려 나섰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들의 의도와는 다르게 몇몇 농민 단체는 농민의 애환을 멧돼지 하나로 설명하려는 방송사의 행태에 대해 대단히 화가 나 있으며, 곧 비판 성명을 발표할 것으로 알려졌다. 대전의 한 식당에 멧돼지가 출몰한 지난 11월17일은 쌀값 폭락에 항의하는 1만5000명 농민의 상경 시위가 벌어진 날이기도 하다. 그날 저녁 방송 3사의 뉴스에서 멧돼지 출몰 사건은 주요 뉴스로 보도된 반면, 농민들의 시위 소식은 1분 내외 단신으로 처리됐다.  

 멧돼지는 예부터 사람에게 해를 끼치는 짐승이었다. <조선왕조실록>에 따르면 내구마(임금이 거동할 때 쓰던 말)를 들이받아 죽이고(세종 14년), 평안도 여러 고을의 곡식을 다 먹어치워 버리고(성종 24년), 예종의 원비 장순왕후 한씨의 무덤인 공릉을 파헤쳤다(중종 13년). 다만 지금과 다른 것은 당시에는 곰·호랑이·표범도 사람을 해치는 말썽꾼 짐승으로 멧돼지와 나란히 기록되었다는 점이다.

지난 2005년 서울 시내에 나타난 멧돼지를 사살한 경찰관은 “귀한 동물도 아닌데 멧돼지를 살려둘 필요가 없다”라고 말했다. 멧돼지와 함께 난동을 부리던 곰·호랑이·표범 따위 짐승들은 일제강점기 시절 조선총독부의 유해 조수 구제(驅除) 정책에 의해 거의 멸종해 이제 '귀한 동물'이 됐다. 이제 멧돼지가 남았다.


 
기사입력: 2009/12/17 [20:24]  최종편집: ⓒ yeslaw.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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